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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그린 북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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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윤선 Sep 29. 2021

 예당 호수에 잠긴 가을

[전윤선의 무장애 여행]

바삭바삭한 가을 햇살이 온몸으로 스며들 때 길을 나선다. 가을임에도 햇살이 그리운 건 눈치 없는 가을장마가 시도 때도 없이 내리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가을 햇살은 상한가를 친다. 모처럼 햇살 좋은 날 그냥 있음 손해 볼 것 같아 무작정 기차에 올라탔다. 이젠 장애인도 느닷없이 떠날 수 있는 무장애 여행이 가능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여행을 떠나는 장애인들이 늘어나고 원하는 곳으로의 즉흥 여행도 많아지고 있다.

짧은 가을이 속도를 낸다. 속절없이 가려는 가을을 붙잡으러 예산역에서 내렸다. 예산 여행은 오랜만이다. 친구와 함께 한 수덕사 여행이 생각났다. 이번 여행은 예산의 핫플레이스 여행지로 떠오르는 예당저수지다. 예당관광지는 출렁다리가 생기면서부터 무장애 여행지로 뜨고 있다. 예당호는 국내 최대 저수지이면서 자연 경관을 누리며 몸과 마음을 힐링 할 수 있는 곳이다.


예당관광지는 42킬로 넘는 둘레와 4만3천 평 규모의 워낙 큰 호수라서 바다인지 호수인지 헷갈릴 정도다. 엄청난 규모도 압도적이지만 호수에 놓인 7킬로미터에 달하는 국내 최장의 데크길에 다시 한 번 입이 떡 벌어진다. 그렇다 보니 예산군민뿐만 아니라 인근지역과 수도권에서도 많이 찾는 국민 관광지이다. 그에 걸맞게 장애인 주차장, 야영장, 잔디광장, 산책로 등 부대시설이 다양하게 조성되어 있어 관광약자도 편리하고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다.


예당호 조각공원에서 산책로를 따라 출렁다리 쪽으로 천천히 산책해본다. 2019년에 완공된 예당호 출렁다리는 현수교 방식으로 국내에서 가장 긴 402미터의 길이를 자랑한다. 다리를 건널 때 심장은 쫄깃하고 눈이 찔끔 감긴다. 출렁다리는 휠체어 사용자도 충분히 교차 가능한 넓이이고 64미터의 높이도 자랑거리다. 성인 3천150명이 동시에 통행할 수 있고 규모 7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내진 일등급으로 설계되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통행 가능한 규모만큼이나 웅장하다. 밤에는 화려한 조명으로 야간 여행지로도 사랑받는다. 출렁다리 앞 호수에서는 신나는 음악에 맞춰 분수가 솟구치면 어깨가 저절로 들썩인다.


출렁다리 앞에 수변 광장은 인공 폭포와 야외무대로 꾸며졌다. 예당호와 출렁다리를 직관할 수 있어 궁합 딱 맞는 연인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아이들도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고 호수를 전망하며 차를 마실 수 있는 접근 가능한 카페와 식당도 있어 분위기도 잡고 호수를 보며 물~멍하기 딱 좋다.

그림 같은 풍경의 느린 호수 길은 전국에서도 독보적이다. 예당호 수문에서 출렁다리를 거쳐 중앙생태공원까지는 호수에 사는 동식물을 관찰하면서 느릿느릿 걷기에 제격이다. 호수에 잠긴 나무 사이를 지날 때는 열대지방의 맹그로브 숲을 만나는 것 같다.


7킬로나 되는 긴 데크길은 흔치 않아 휠체어 타고 산책하기에 좋다. 수변광장흔들다리 앞 데크길로 초입 5미터 정도는 경사가 급해 이 구간은 도움이 필요하다. 데크길에 올라서면 평단길이 이어지고 예당호의 풍경이 더 넓고 깊어 보인다. 왼쪽으로 호수를 끼고 천천히 걸어본다. 호수는 투명한 가을 햇살을 가득 담아 반짝거린다. 호수가 주는 편안함에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오”가 머릿속을 맴돈다.

호수 길에서 처음 만나는 조형물은 충효각이다. 충효각은 호수를 바라보는 팔각정이다. 하지만 다섯 개의 계단 때문에 휠체어 사용자는 접근할 수 없어 아쉽다. 충효각 앞 아치형 다리도 매력적이다. 아치형 다리를 지나 경사진 길을 올라가면 쉼터다. 쉼터엔 편의점과 주차장 장애인 화장실도 잘 마련되어 있다.


데크로 끝나는 지점에는 대흥 슬로시티와 연결된다. 대흥 슬로시티는 의좋은 형제 마을로, 풍요로운 자연 생태를 보존하고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마을이어서 느린 삶을 체험할 수 있다. 슬로시티 마을에는 의좋은 형제 기념공원도 있다. 초등 교과서에 나오는 의좋은 형제는 대흥마을의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 공원입구엔 의좋은 형제 조형물이 사이좋게 서서 잘 익은 볏단을 들고 “형님먼저 아우먼저” 양보하며 지금까지도 형제애를 자랑한다. 공원엔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농산물을 판매장도 있지만 코로나로 잠시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슬로푸드 운동에서 시작한 슬로시티는 이탈리아 그레베 인 키안티에서 시작돼 정체성 없는 획일적인 도시를 지양하고 느린 도시 만들기를 지향한다. 지역이 원래 갖고 있는 고유한 자원인 자연환경, 전통산업, 문화, 음식 등을 지키면서 지역민이 주체가 되는 지역문화와 지역경제 살리기 운동이다.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대흥 슬로시티는 느림과 여유의 가치를 추구하는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국내에서는 6번째, 국제적으로는 121번째로 지정된 마을이다. 마을에는 실존인물인 의좋은 형제 이성만, 이순의 효제비가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다. 대흥향교와 6백 년이 넘은 은행나무, 천주교 박해지인 대흥옥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느린 마을이다.


대흥 슬로시티 탐방 코스는 느린 꼬부랑길이 있다. 꼬부랑길은 3개의 코스로 옛이야기길, 느림길, 사랑길이다. 이 중 사랑길은 휠체어 사용자나 보행 약자도 걷기 좋은 완만한 코스로 방문자센터, 이한직 가옥, 대흥향교, 삼신당터, 원두막까지 3.3㎞ 구간이다.


마을을 한 바퀴 걷는 동안 느린 풍경이 주는 편안함은 억압된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해 준다. 추수를 앞둔 논에는 벼가 고개 숙여 마음마저 넉넉해진다. 마을 뒤편엔 봉수산 수목원과 곤충생태관이 있고 곤충생태관과 연결된 하늘데크는 예당호수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지상 20십 미터 높이에서 내려다보면 전망은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하늘데크 전망대에서 본 예당호는 이승의 것이 아닌 것처럼 비현실적인 풍경이다. 삶은 강물처럼 흘러 바다를 만나는 여정이다. 그래서 삶은 여행이다. 여행하기 좋은 계절 예당호수로 떠나는 무장애 여행으로 짧은 가을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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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heindigo.co.kr/archives/24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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