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생활 (벌써 8년째), 하나
'근데 책 언제 써 줄 거야? 써 준다고 했잖아~'
'언니, 사람들이 안 보는데서 끄적이지 말고 브런치를 해 봐!'
어제는 지구 반바퀴 건너편의 나라, 아일랜드를 여행 중인 나의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하나는 초딩시절부터 죽마고우, 하나는 일본 워킹홀리데이 시절 교토에서 만난 동생이다. 작년 여름, 한국에 가서 지인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었는데, 그때 만난 둘은 쿵짝이 잘 맞는 친구가 되었다.
여행 중인 누군가에게 연락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보고 싶고, 보고 싶어 할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일랜드 땅 끝의 모허 절벽을 보러 간다는 두 사람의 말에 구글로 사진을 찾아보고, 둘이 함께 마주할 광경을 상상하니 나도 덩달아 가슴이 두근거린다.
글 써 보라는 잔소리(?)로 끝날 줄 알았는데, 전화를 끊고 나서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링크와 함께 '일본 시골마을에서 커리를 만드는 한국 여자'라는 제목까지 붙여 메시지를 보내준 동생 덕분에 (아무리 봐도 T) 아주 오랜만에 브런치를 켜 보았다.
2025년 9월, 나는 아직도 일본에서 지내고 있다.
브런치에 글을 끄적여놓은 시기가 2020년 이맘즈음이니 오 년이나 지났네.. 하면서도 남편과 내가 지나온 그 오 년이란 시간 동안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오 년을 기쁨과 화남, 슬픔과 즐거움의 끝에서 끝을 왕복하는, '희로애락 레이싱'이라 이름을 붙여 본다. 그동안 사는 곳과 직업도 바뀌었고, 삶을 대하는 가치관도 변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일들을 마주하고, 늘 남편과 함께(누구 하나 피하지 않고) 눈앞의 문제들을 해결해 왔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더 알게 되고, 대화도 자연스러워지고, 서로 화내지 않고 넘어가는 비법을 깨달았고, 롤러코스터 타던 부부관계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중에 가장 큰 변화는 남편과 나의 직업이 바뀌었다는 것.
동생이 정해준 타이틀 그대로, 나는 수프카레 가게 점장, 남편은 학교 급식센터의 조리원으로 근무하며 수프카레 가게 요리장을 겸하고 있다. 우리 가게는 '요카이치(八日市)'라는 시골마을에 있다.
2020년의 글에는 작은 가게를 하고 싶다는 소망이 '꿈' 같은 먼 이야기처럼 쓰여 있다. 사실은 대학생 때부터 작은 가게의 점장이 된 내 모습을 늘 바라고 상상해 왔다. 한국과 일본에 있는 작은 가게의 단골도 되어 보고, 작은 가게에서 일도 해 보고, 좋아하는 가게들의 좋은 점을 생각하며 지냈다.
그리고 그런 크고 작은 꿈이랄까, 언젠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겨왔다.
그리고 하나 둘 현실이 되어 왔다!
(초등학생 때 읽었던 '더 시크릿(The Secret)'이라는 책을 본 건 최고로 잘한 일이다.)
물론, 쓰는 대로 하루가 술술 잘 풀렸던 것은 아니다. 한국과는 무척 다른 일본의 삶에 적응하는 시간도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언어의 장벽으로 내 욕심만큼 결과를 내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이 낯선 세계에서 지낸 덕에 삶의 방식을 바꾸게 되었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직감에 따라 움직이고, 기회라면 무조건 잡아 그다음으로 연결해 가는 것.
계획대로 되지 않는 삶이기에,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엮어 '필연(必然)'으로 만드는 것.
지금까지는 삶에서 어떤 결과를 기대하고 그 결과에 맞추어 삶을 계획해 왔지만,
삶을 손바닥 안에 놓고 원하는 대로 굴릴 수 있다는 자만으로부터 멀어진 순간부터,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고 지나가는 대로 맞추어 가기 시작한 순간부터,
평범한 하루 속에 작은 기적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게 우연이 아니라 꼭 일어나야만 했던 일처럼 느껴진다.
뭐, 기적이 따로 있나?
기대하지 않았어도 우리에게 찾아와 준 좋은 일이 모두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