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생활 (벌써 8년째), 셋
'일본에서 수프카레를 만드는 한국 사람'
이 문장으로 나를 소개할 수 있게 된 지도 벌써 2년 4개월.
우리 가게의 이름은 'こしかけや(코시카케야)'라고 한다.
이름의 의미 하나는,
버섯과 거북이를 좋아하는 남편이 가게 로고에 그 둘을 함께 넣을 만한 그림을 구상하다가, '등껍질에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그 나무에 버섯이 자라날 정도로 깊은 잠을 자던 거북이가 수프카레 냄새를 맡고 깨어나다'라는 스토리로 결정. 일본에서는 한국의 차가버섯, 말굽버섯처럼 나무에 자라는 버섯 종류를 'さるのこしかけ(사루노코시카케)'라고 불러서 코시카케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게를 뜻하는 や(야)를 뒤에 붙이게 되었다.
의미 둘은,
처음에 우리가 카레를 만들어 팔 때 바로 가게를 차린 것이 아니라, 친구 가게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게스트셰프로 수프카레를 내었었다. 그때는 남편도 나도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에 취미 반 느낌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하자는 생각이 있었는데, 일시적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말이 또 일본어로 'こしかけ(코시카케)'라고 해서 우리에게 딱 맞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의미 셋은,
일본어로 'こしかける(코시카케루)'라는 동사가 '허리를 편하게 두고 쉬다, 앉다'라는 의미가 있다. 'さるのこしかけ(사루노코시카케)' 버섯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원숭이의 의자'라는 뜻이 되는데, 정말로 원숭이들이 나무에 달린 버섯에 잠깐 앉아서 쉬었다 가는 모습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우리 가게에도 사람들이 편하게 앉아 쉬었다 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지었다.
그리고 시골의 작은 가게지만, 우리 가게 코시카케야에도 감사하게도 단골손님들이 생겼다.
방금 다녀 가신 남자 손님 두 분의 이야기를 기록해 보려고 한다.
오픈하고 얼마 안 되어 평일에 혼자 가게를 돌리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아도 막 허둥지둥 대던 시기에 처음 찾아와 주신 두 분. 현장일을 하시는 듯 모자를 쓰고 작업복을 입고 계셨고, 겉모습으로 보아 사십 대 후반? 오십 대 정도일까? 치킨 카레를 주문하셔서 카레의 맵기 정도를 설명드리자, 고민하시면서 '처음이니까 중간맛부터 먹어볼까?'라고 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갑자기 왜 눈물이 나려고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그다음 주 평일 점심시간, 오늘은 더 매운맛으로 먹어보겠다며 맵기를 올리신다. 한 분은 매운맛, 다른 한 분은 더 매운맛. 매워하시며 맛있게 드시는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회사 동료라 그런지 음식을 준비할 때에도, 드실 때에도 정말 거짓말 안 하고 한마디 말없이 드신다.
그리고 그다음 주 평일, 그다음 주 평일도.. 오실 때마다 다른 메뉴도 한 번씩 드셔 보시고 맵기도 가장 매운맛까지 정복을 하셨다. 어떤 날에는 메뉴도 보지 않고 주문하시기도 했다. 계산하실 때는 각자 계산 후에 늘 영수증을 챙겨 가셨다. 지금은 레지가 있지만 얼마 전까지는 손으로 직접 영수증을 써 드렸기에, 두 분 덕분에 영수증 연습도 할 수 있었다. 가끔 가게에 과일이나 과자가 있을 때는 서비스로 드리며 조금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어떤 날에는 한 분이 휴대폰을 놓고 가셔서 다시 찾으러 오시기도 했는데, 그 이후로 나는 손님들이 가시고 난 자리를 의식적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몇 개월 간 얼굴을 못 뵈었는데, 잘 계실까 생각이 나던 즈음 다시 점심을 드시러 오셨다. 반가운 마음에 잘 지내셨냐고 인사를 건네니, 교세라에서 근무하신다며 이쪽에 고객이 있어 오사카에서 출퇴근을 하신다고 했다. 전에는 민박을 잡고 며칠 지내며 일하셨다고. 두 분은 꽤 오래 함께 일하고 계신다고 했다. 그 후로 가끔씩 동료 한 분과 함께 찾아 주실 때도 있었다. 내가 뭔가 여쭈어 보거나 말을 걸면 웃으면서 말씀해 주셨는데, 동료 분들이랑 계셔도 과묵하고 조용한 식사 시간은 변함이 없었다. 그래도 마음으로 좋은 손님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새해가 밝았고, 우리는 수프카레에 토핑 메뉴를 추가했다. 두 분은 새로 업데이트된 메뉴를 보시더니 반가워하시며 토핑 메뉴를 추가하신다. 각자 좋아하는 맵기가 생겼고, 한 분은 다이어트를 시작하셔서 밥은 늘 반만 드셨다. 그러다 우리 가게는 일주년을 맞았고, 일주년 기념 스티커를 선물로 드렸다. 그 후에도 잠깐 뜸하셨다가, 또 자주 오셨다가, 어떤 날은 가게가 엄청 붐비고 어떤 날은 한가해서 이런저런 잡담도 하고, 성함을 여쭈어봤는데 부를 일이 없으니 잊어버리기도 하는 그런 날들이 지나갔다.
그러다 어느 날, 작업복을 입으신 남자 네 분이 처음으로 가게를 찾아 주신 날이 있었다. 어떻게 알고 오셨냐고 여쭤보니 근처 회사인 교세라에 근무하신다고 하셨다. 그걸 기억했다가 두 분이 오셨을 때에, '지난번에 교세라 직원 분들이 가게에 와 주셨어요!'라고 말씀드리니, 누구지? 누구누구 씨인가? 잘은 모르겠다고 하시며, '우리 헬멧에 쓰여 있는 거 보고 가셨나?' 그러신다.
"무슨 헬멧이요?"
"아~ 우리 작업 헬멧에 코시카케야 스티커 붙여놨거든요. 사람들이 다들 뭐냐고 물어봐요."
"!!!!"
아, 이 무뚝뚝한 성인 남자 두 분이 붉은색과 푸른색이 섞여있는 버섯 모양의 스티커를 헬멧에 붙이고 일을 하고 계셨다니.
"다음에 헬멧 사진 찍어서 보여주세요!"
"허허허.. 사진까지야 뭐.."
아, 이렇게도 담백한 단골손님이 있다.
헬멧 스티커 사건. 살아오면서 진심으로 손에 꼽힐 정도로 웃기고 또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남편에게도 이야기를 하니 박장대소를 한다. 그리고 남편이 방학시즌일 때 두 분이 와 주셔서 소개할 기회도 있었다. 그 이후로 오실 때마다 '혹시 사진..', '아, 헬멧 사진 언제 보여 주실 거예요?' 하고 농담 삼아 말을 건네면 '아 맞다! 잊어버렸네요. 다음에..' 이렇게 대답은 하시지만, 두 분이 사진을 찍고 찍어준다니 내가 생각해도 쑥스러워서 아마 헬멧 사진은 못 받을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오늘, 점심시간이 한가해 오랜만에 오신 두 분과 식사 후에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도 밥을 반만 드신 분께 다이어트는 언제까지 하시는 건지도 괜히 여쭤보고,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사루노코시카케 버섯이 진짜냐고 물어보셔서 버섯 이야기도 했다. 한 분이 옛날에 집 창고 블록에 버섯이 있어서 그걸 가지고 한방약 가게에 간 적이 있다고 하셨다. 근데 거기에서 이걸 잘 건조해서 어디에 팔면 아주 비싸게 팔릴 거라고 해서 그 여름 내내 차에 실어 뒀다가 나중에 생각이 나서 신문지에 싸 둔 버섯을 열어 보았더니 퍽퍽하고 물렁해져서 그만두었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듣다가 사루노코시카케를 모티브로 만든 올해 스티커가 생각나서, 이 주년 스티커를 다시 선물로 드렸다. 노안이라 못 볼 뻔했다며 작게 쓰인 코시카케야 글자를 발견해 주시는 두 분.
"아 참, 이쪽 고객이 갑자기 일을 스톱했어요. 그래서 내일이 마지막 작업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꼭 수프카레 먹고 마무리해야지 해서 왔어요. 아마 다시 오는 게 내년 여름쯤이려나?"
갑자기 그 말을 듣는데 왜 울컥하던지.. 유난스럽고 오버스럽다는 생각이 커서 눈물은 안 나왔지만 벌써 그립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대답했다.
"그러셨구나! 집에서 가까우면 좋으시겠어요. 여기 진짜 머니까.."
"맞아요. 가까우면 진짜 좋을 텐데. 그래도 갑자기 또 일 시작되면 올 수도 있고 그러니까. 하하."
다른 단골손님들에 비하면 그리 많은 말을 나눈 건 아니지만 두 분과는 마음으로 정이 든 것 같다.
최근에 가게가 한가한 날이 많기도 하고, 가게 일에도 익숙해진 탓인지 이 일을 하는 의미와 감동이 희미해지는 날들에 고민하기도 했다. 잊지 말자. 이렇게 사람과 만나는 일. 반가운 얼굴과 그리운 얼굴이 하나 둘 늘어가는 일. 또 그것을 추억으로 같이 웃을 수 있는 일.
우리는 카레와 함께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
오늘도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