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생활 (벌써 8년째), 둘
나는 가끔씩 내가 오타쿠였으면 좋겠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 늘 할 일이 있고, 갈 곳이 있고, 심장이 두근두근거리는 날이 계속되는 오타쿠 인생. 양궁 과녁판 위에 삶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면, 고민 없이 좋아하는 그 일을 가장 안 쪽에서 가장 빛나는 10점 자리에 딱 두고, 정중앙에 화살을 쏘고 또 쏘며 나만의 내적 점수를 쌓아가는 삶. 아, 오타쿠 분들(?)보다 행복한 삶이 또 있을까?
초등학생 때부터 뭐 하나 꾸준히 한 일이 없어 꾸준함을 지닌 사람들을 늘 우러러본다. '꾸준하다'에 기준은 없지만, 나이에 비례해서 어떤 일을 몇 년 계속했는지 보면 꾸준한 사람인지 쉽게 질려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1) 서른 세 살인 나는 어렸을 때 피아노를 7년 배웠다. 33/7 = 4.71 (과거+2 = 6.71)
2) 서른 한 살인 내 동생은 인터넷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를 12년 하고 있다. 31/12 = 2.58 (현재)
3) 마흔 세 살인 시누이는 디제잉을 23년 하고 있다. 43/23 =1.86 (현재)
이런 식으로 계산을 해서 '숫자가 적을수록 꾸준도가 높은 사람' 이라는 결과를 내보는 것이다.
지금은 계속하지 않는 일이라면 +2를 해 꾸준도를 내려주고 말이다. 뭐, 빈도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꾸준히 흥미를 잃지 않은 것을 핵심으로 치면 얼추 설득력은 있다. 그리고 흥미가 있어 지속한 적이 있는 일들의 꾸준도를 계산해서 모두 더해보는 거다.
그냥 하세요! 아무 변명도 아무 생각도 말고 그냥! Just Do!
유명하고 성공한 사람들에 입을 통해 들은 말이 이제서야 좀 이해가 된다. 그래, 꾸준히 뭘 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 필요가 없다. 그날그날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그냥 하면 되는 것. '나는 쉽게 질려하는 타입이니까', '어차피 오래 못할 거니까' 라고 나를 정의하는 순간 그것은 변명이 되고 하지 못할 이유 하나를 만드는 일. 타인의 시선과 타인의 기준이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은 사실 0%. 그냥 더 하고 싶으면 더 하면 되고 하고 싶지 않으면 그만두면 된다. 나의 부족함을 들추며 쉼없이 나를 밀어붙이는 것은 결국 나다.
같은 일을 매일같이 반복한다고 해서 하루하루가 매번 똑같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날의 날씨, 그날의 기분, 그날 만난, 혹은 만났거나 만날 사람, 그날 우연히 생겨나는 일들.. 정확한 규격에 딱 맞춰 살 수는 없다. 눈을 감았다 뜨면 어제와는 다른, 새롭고 푸릇푸릇한 하루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꾸준함이란 반복이 아니라 '적응' 혹은 '망각'에 가까운 게 아닐까. 다시 찾아와 준 24시간에 주저없이 스며들어, 불필요한 경험을 잊고 다시 만들어 가는. 마치 그 시간이 내게 또다시 주어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단 것처럼.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배기 삶은 감사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결혼을 하고 나서 우리 집에 놀러온 시누이와 대화를 나누다 들은 말을 아직까지 깊이 새기고 있다.
''나도 어디에서 들었는데, 'ありがたい(감사하다)' 라는 일본어의 반대말'이 너희는 뭐라고 생각해?''
우리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이런저런 답을 했던 것 같다.
그러자 시누이가 말을 이었다.
''일본어로 고맙다는 말의 유래가 有り難い(有ることが難しい)인데, 그 의미는 '드물고 귀하다'래.
세상 모든 게 존재하는 것 그 자체가 드물고 귀해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쓰이게 됐대.
그래서 반대말이 뭐냐고 하면, 'あたりまえ(당연하다)' 라고 하더라고.''
아, 지금 다시 쓰며 곱씹어도 정말 감동적이고 깊은 깨달음을 주는 말이다. 함께 있을 때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는 시누이가 있다는 일이 또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시간을 충실하게 쓰는 힘은 내게 주어진 시간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그런 감사한 날들을 쌓아가다 보면 꾸준함과도 자연스레 가까워져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