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생활 (벌써 8년째), 일곱
카레 가게 쉬는 날에는 뭐 해?
우리 카레 가게 영업일은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주 4일. 그걸 들은 사람들에게 그럼 쉬는 날에는 어떻게 지내냐고 당연한 질문을 받는다. 지인들은 너무 많이 쉬는 거 아니야? 걱정도 해 준다.
주 3회를 쉬는 이유는,
첫 번째, 무리하지 않고 롱런을 하기 위해 주 2회는 무조건 쉬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두 번째, 카레가 메인이지만, 다양한 이벤트도 열고 싶기 때문에 여유 있게 하루 더해 3일.
세 번째, 평일 3일이 있으면 한국어 레슨을 원활하게 열 수 있기에.
네 번째,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 갈 길을 가는 개쌈마이웨이 스타일이기에(?) 는 웃자고 하는 말이다.
가게의 정식 오픈일 전에, 4일 정도 프리 오픈 기간을 가졌었다. 정말 아무것도 손에 익지 않았던 그때 중년의 부부 손님이 와 주셨었다. 서글서글한 인상을 한 아저씨께서는 가게 문을 열고 안을 보시자마자 '오! 정말 참신하다!'라고 말씀하시며 들어오셨고, 아내 분께서는 기다리시는 동안 한국어에 관심이 있으신지 진열해 둔 한국어 책을 살펴보고 계셨다.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 가게를 보시고 해 주신 '참신하다'는 말이 기분 좋기도 했고, 생기 있는 두 분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카레를 내어 드렸다. 그리고 프리 오픈이라 많이 부족하다고, 무엇이든지 말해 달라고 말씀드렸다.
카레를 다 드시고 나서 아저씨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웃으시면서 딱 하나만 조언을 해도 되겠냐고 하셨다. 나는 좀 떨리지만 기쁜 마음으로 들을 준비를 했다.
"정말 맛있었는데, 카레를 보글보글 끓는 뜨거운 상태에서 내면 훨씬 좋을 것 같아요."
엇! 눈이 번쩍 뜨이는 감사한 조언이었다. 당연한 일 같지만 그런 것도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초보였던 나. 그날 회사에서 돌아온 후에 영업 어땠냐고 묻는 남편에게, 오늘 정말 기억에 남는 손님이 계셨다고 신이 나서 말했더랬다. 그 말씀을 들은 뒤로 카레는 무조건 뜨겁게, 더해서 그릇까지 워머에 데워서 내고 있는 우리다.
그리고 한 달 정도 지나서였나? 그 아저씨께서 평일에 또 가게를 찾아 주셨다. 손님이 없는 시간이었어서 식사가 끝나신 후에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저씨는 정년퇴직을 하시고 '一心庵(잇신안)' 이라는 이름을 걸고 소바(메밀면)를 만들고 있다고 하셨다. 그것도 요리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메밀밭농사를 지어 거기서 난 메밀로 소바도 직접 뽑는다고. 그리고 사람들이 함께 모여 소바 뽑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비와호 소바 애호회'의 회장이라고도 하셨다.
일본 소바는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아저씨가 만든 소바를 꼭 먹어 보고 싶었다. 어디서 먹을 수 있냐고 여쭈어보니, 한 달에 한 번씩 지인의 가게나 오픈 키친을 빌려 팝업식으로 소바를 내고 계시다고 했다. 우리 가게에서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의 도시락 가게에서도! 아마 바로 그 다음날 예정이었던가,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예약을 했다.
아저씨는 한국에도 몇 번 여행을 가신 적이 있다고 했다. 요리 이야기를 하다가, 한국에도 메밀 요리가 있냐고 물어보셔서 내 고향 강원도의 명물인 메밀 막국수를 소개해드렸다. 어떻게 만드는 거냐고 물으셔서, 소바 면만 있으면 소스 재료는 구할 수 있다고 하니, 제안을 하시는 것이다.
"제가 면을 만들어 드릴 테니, 콜라보를 합시다!"
나도 언젠가 한국 요리를 팔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가게에서 가장 처음으로 만들게 될 한국 요리가 막국수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아저씨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벌써 2년 전 이야기다. 그리고 아저씨의 소바는 내가 지금까지 먹어 본 소바 중에 가장 맛있다. 정말이다.
막국수를 시작으로, 한 달에 한 번 한국 요리가 있는 'MASISSO DAY'를 계속해 왔다. 메뉴는 계속 바꿔왔다. 이제는 사람들이 모두 '맛있어데이' 언제냐고 물어볼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막국수는 7월부터 9월까지 여름 한정 메뉴로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아저씨가 팝업을 열던 도시락 가게가 문을 닫게 되었다. 때마침 좀 먼 곳으로 아저씨의 소바를 먹으러 갔다가 아저씨의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그 소식을 듣게 되었고, 나와 아저씨는 똑같은 생각을 했다.
"코시카케야에서 어때요?"
한 달에 한 번 아저씨의 소바를 우리 가게에서 먹을 수 있다니! 내 입으로 들어오는 것도 그렇지만 이 맛있는 소바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그리고 아저씨의 소바를 좋아하는 분들께도 코시카케야를 알리면 좋겠다! 그렇게 매월 둘째 주 목요일에는 우리 가게가 소바 가게가 되는 날으로 정했다. 목요일이 휴일이 아니었더라면 쉽게 제안하거나 승낙하지 못했을 일이다.
그리고 오늘은 둘째 주 목요일.
소바 가게가 되는 날에도 나는 오픈 준비 때문에 가게에 있거나, 소바를 먹으러 오거나 한다. 붐비는 가게처럼 손님들이 바쁘게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풍경은 아니지만, 아저씨 부부가 그릇까지 전부 들고 오시고, 바로 조리를 하는 메뉴도 있어서 7인분이거나 10인분일지라도 준비는 늘 바쁘다.
오늘은 예약하지 않은 손님도 가게를 찾아 주셨다. 한 분은 자전거를 타고 가게로 오는 길에 있는 친구네 가게 앞에서 마주친 친구 지인분이고(초면), 또 한 분은 남편과 친구들이 디제잉하는 바의 점장님 소개로 와 주신 분이다(이 분도 초면). 이분은 갑자기 한국말을 하셔서 교포인 줄 알았는데, 일 때문에 한국에 일 년 반 정도 산 적이 있다고 하셨다. 고향이 홋카이도라 카레를 먹으러 오셨고, 원래 저녁에 오려고 했는데 일이 생겨 점심에 왔다고 했다. 오늘 카레 없고, 점심 소바영업 밖에 없는데, 완전 럭키다. 이런 것도 다 재미있는 인연이다. 차로 40분 걸리는 곳인데 말이다.
어쨌든 덕분에 준비한 생면이 다 팔려서 나는 소바 정식에 딸려 오는 요리로 점심을 먹었고, 소바가 모자라 마지막 한 분을 위해 아내 분께서는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셔서 일 인분 남아있던 소바를 가지고 오셨다.(아저씨네 집은 엄청 가깝다) 소바 영업일은 복닥복닥 바빠 재미있다.
처음에는 점심시간으로 정해서 운영했었는데, 평일이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모객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뭔가 변화를 줘야 할까 생각을 하다가, 아저씨가 좋아하는 사케랑, 소바 정식에 곁들어 내는 요리(아주 맛있다)를 메인으로 저녁 영업을 해 보자는 결론이 났다. 점심과 저녁 영업을 번갈아서 하면 일하시는 분들도 올 수 있으니 좋을 것 같았다.
올해부터 시작한 저녁 영업은 벌써 단골손님이 생길 정도로 인기가 좋다.
그리고 우리 부부도 아저씨 덕분에 맛있는 사케와 요리를 공부하는 중이다. 잇신안 아저씨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