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도 한 달에 한 번 그런 날이 있대

일본 생활 (벌써 8년째), 여섯

by 아초



잘 맞을 때는 눈빛만 봐도 서로를 안다는 말이 뭔지 알 정도로 잘 맞는 우리 부부. 그치만, 한 사람 컨디션이 안 좋으면 거기에 맞춰 둘 다의 컨디션이 덜컹대는 날도 많다. 지난 주 까지만 해도 호수변에서 열린 음악 페스티벌에 가서 신나게 쿵짝을 맞추다 왔는데, 이번 주는 썩 불편하다. 아니, 뭐 하나 맞는 게 없다.


맥주 한 잔 땡긴다 싶은 날은 남편이 피곤해서 자고 싶고. 남편이 좀 달리고 싶은 날은 나의 신경이 곤두서 있고. 그러다 두 사람의 불협화음이 절정에 치달을 때가 되면, 어떤 한 사람의 컨디션이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확 좋아지는 날이 오는데, 그게 바로 며칠 전이다.






가게 휴일이라 느즈막히 일어난 날. 밥 먹을 시간도 놓친 채로 휴대폰을 켜 11월에 기획하고 있는 동네 이벤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노트북을 켜 이사 갈 집의 입제도를 그리고, 가게로 가서 밥을 대충 먹고, 유리컵 설거지를 하고, 다시 인스타그램을 켜서 이벤트 공지글을 쓰고.. 끝나지 않는 자잘한 일을 처리하면서 에너지가 점점 방전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드르륵 가게 문이 열리고, 생기있게 얼굴이 반짝거리는 남편이 회사에서 돌아왔다!



“어제 많이 자서 그런지 나 오늘 컨디션 좋아!”


밝게 웃는 남편이 어찌나 반갑고 고맙던지. 그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전환을 하고 싶어졌다.


“오! 놀러 가자!”


내 말을 들은 순간부터 남편의 머리속은 벌써 ‘오늘 휴무인 가게’, ‘본인이 먹고 싶은 메뉴’, ‘저렴한 이자카야’의 리스트를 쫙 뽑아내고 있다.


그런 와중에 나는, 시간이 좀 이르니 해야 할 건 하고 가자 싶어,


“일단 어디 가기 전에 이사할 집 가서 잠깐 상의만 좀 하자. 뭐 준비해야 하는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순식간에 풀 죽는 얼굴을 하는 남편이지만, 그러자고 해 준다. (사실 뭐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2분 거리에 있는 집에서 얘기만 하니 어려운 일은 아니ㅈ…)








이사할 집에 가서 상의를 마친 후에 바로 우리가 좋아하는 쿠시카츠(튀길 수 있는 것은 꼬치에 꽂아 모두 튀기는 일본 요리) 가게로 갔다. 노렌을 지나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우리가 첫 손님이다. 언제나 사람 좋게 허허허 웃으시는 점장 아저씨가 반가워 해 주신다. 여기는 오후 다섯 시부터 아홉 시까지 밖에 하지 않아서 늘 타이밍을 놓치고 마는데, 오늘같이 남편이 일이 빨리 끝나는 날이면 가 두어야 한다.


자리에 앉자마자 생맥주 두 잔을 시켰다. 유리잔이 꽝꽝 얼어 있어, 따르면 살얼음이 생기는 이 집 맥주. 한 모금 들이키면 머리가 띵할 정도로 시원한 게, 피로와 잡념이 싹 날아간다. 봉긋 솟은 맥주 거품도 얼어 버리는지 두 모금 마실 때까지도 남아 있다.




“그거 알아? 남자도 생리가 남자도 한 달에 한 번 그런 날이 있대. 생리 같은 날.”


“맞아. 알아. 나도 그래. 오늘 끝났어.”


“오! 축하해. 그러고 보니 우리 뭔가 계속 안 맞았던 거 같아. 그래서였나 봐. 근데 생리 같을 때, 하루에 끝나?”


“아니. 며칠은 가.”


"그렇구나. 여자랑 똑같네. 나도 괜히 예민했는데 오늘 당신 얼굴이 좋아서 나도 기분 좋아졌어."



그렇구나. 본인이 느낄 만큼 남편도 이유 없이 예민해질 때가 있구나.

아직도 우당탕탕 와글와글하게 지내고 있는 철없는 삼십 대인 우리가 8년 차 부부가 되어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니. 기쁘기도 하면서 뭔가 어색하기도 하면서 재밌다.


내가 생리 중에 예민할 때 이거 해 줘, 저거 해 줘 말하면 모두 맞춰주는 자상한 남편을 위해, 남편의 생리 주기(?)도 잘 캐치해서 좀 더 수월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진 날의 이야기를 기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