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생활 (벌써 8년째), 여덟
어떤 이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미니멀리스트기 때문이다.
(그냥 그럴듯하게 끄적여 보는 나는 맥시멀리스트.)
'챌린저스'라는 어플리케이션을 깔고 챌린지를 열심히 하던 때가 있었다.
돈을 걸고 일정 기간 동안 지속하는 획기적인 시스템 덕분에 블로그에 글도 많이 남겼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보기도 했고, 운동도, 공부도, 하루에 하나 버리기 챌린지도 했었더랬다. 해내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오는, 적당한 정도의 긴장감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무언가로 채우려고 했던 그 시절이 지금보다는 건강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루에 하나 버리기 챌린지를 했어도 왜인지 물건은 줄지 않는 느낌이었지만...(기분 탓인가) 며칠 전 핸드폰 앨범을 정리하다 신혼 첫 집 사진을 보는데, 내 기억보다 잘 정리되어 있고 집안 물건들도 별로 많지 않아 보이더라. 자꾸 비워야 하고 버려야 한다는 강박감은 뭐였을까.
나는 물건에 애착이 깊어 쉽게 버리지 못하는 맥시멀리스트다. 친구들이랑 갔던 여행지의 지도, 기차 티켓, 이제는 잘 하지 않는 악세서리들, 누가 준 작은 오브제들.. 그에 반해 남편은 자잘한 잡동사니를 사는 것을 좋아하는 맥시멀리스트다. 버리는 것에 관심이 없고 소유물이 느는 사람과, 물건을 사지는 않지만 오래된 물건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만났으니 맥시멀리스트 제곱이 된 것.
그런 맥시멀리스트인 우리가 셰어하우스로 이사 오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년 전, 가게 오픈을 앞두고 이사 일정을 잡아 버린 우리 부부. 가게 오픈에 온 신경을 쏟다 보니 집안의 재활용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쌓아두었고(일본은 쓰레기 종류별로 버리는 날이 따로 정해져 있어서 귀찮다), 냉장고 정리는 커녕 옷 정리도 못한 채로 하루만에 모든 짐을 셰어하우스로 옮겨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남편이 회사를 간 오전, 나혼자 어떻게 해보려고 시간 계산을 해봤는데, 이사는 전혀 불가능한 미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누구라도 좋으니 시간이 있으면 도와달라고 SOS를 쳤다. 마침 친한 언니가 쉬는 날이라 온다고 했다. 언니는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하하하하 웃으며 정말 오늘 이사하는 사람 맞냐고 그랬었지. 언니만 그런 게 아니라, 그 뒤로 경형 트럭과 차를 끌고 속속들이 도착해 준 친구들이 다 헛웃음으로 집으로 들어왔었다.. 지금 생각하니 나도 헛웃음이 나네..
언니와 나는 침실에서 옷을 박스에 쉴새없이 집어 넣고, 남자들은 쓰레기를 봉지에 집어 넣고, 냉장고에 있는 물건을 아이스박스에 넣어 옮기고, 가구를 옮기고, 세탁기를 옮기고, 침대 매트리스를 옮기고, 책과 잡동사니를 실어 날랐다. 그렇게 쉬지도 않고 움직이고 나니, 마법처럼 집이 텅 비었고, 주차장에서 차 다섯 대가 짐을 빵빵하게 싣고 셰어하우스로 부르릉 출발하는 모습이 너무 든든하고 멋있었더랬지... 영원히 어벤져스로 기억하고 싶은 이사의 한 장면이다.
그리고 그 다음 장면이 또 웃긴다.
어벤져스를 배웅해주고 나서 나머지 집 정리를 마치고 셰어하우스에 도착해 보니, 우리가 지낼 원룸에 모두 들어가지 않아서 거실과 현관 바깥까지 맥시멀하게 쌓여있던 우리의 짐들. 밥도 안 먹고 일을 도와준 어벤져스들과 가게에서 다같이 저녁을 먹으며 불가능한 일은 없네 그러면서 웃기만 했다.
그 짐들은 비 예보가 있기 전날까지 어찌저찌 정리를 해서 원룸 안으로 집어 넣었고, 가게 일로 정신 없었던 일 년 동안은 그 물건을 버릴 새도 없이 그대로 안고 살았다. 가게 일이 익숙해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부터 필요없는 물건들을 조금씩 버리며 공간을 넓혀왔다. 공간이 한정된 원룸살이 덕분에 넓은 집에 살 때보다는 쉽게 버릴 수 있었던 것 같다. '하루에 하나 버리기'를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실천해 왔다면 좀 더 줄일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또 다시 이사다. 기간은 다음 달 말. 그래도 지난번 이사에 비하면 살림살이가 반 이상은 줄었다.(뿌듯) 이 정도면 어벤져스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을 수준이다. 감사하게도 이사할 집이 빈 집이라, 편할 때 왔다갔다 할 수 있어서 겨울옷과 가구 몇은 미리 옮겨 두었다. 남은 것은 잡동사니와 서류 정리.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또 가져다 둔 가구들이 꼭 필요한가 싶기도 하고..
아, 갈 길이 멀다. 미니멀리스트를 동경한 지도 벌써 십 년째다.
버릴 건 싹 버리고 텅텅 빈 집에서 지내는 게 다음 달 목표다. 하루에 하나 버리기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