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젠(萬善) 갈래?

일본 생활 (벌써 8년째), 아홉

by 아초






우리 동네에는 엄청 오래된 정식집이 있다. 이름은 만젠식당(萬善食堂). 우리는 '만젠'이라고 부른다.


5~60년 전부터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아 온 만젠. 드르륵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풍기는 튀김 냄새와 달달한 간장 냄새. 메뉴는 거의가 일본 가정식인데, 오므라이스부터 중화소바, 돈까스정식, 부타쇼가야끼(생강을 많이 넣은 돼지고기 요리), 카레까지 종류가 대단하다.


이 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돈카츠가 올라간 하야시라이스, '카츠하야시'다. 우리나라 하이라이스처럼 양파를 같이 볶은 산미가 있는 붉은색 소스에 비벼 먹는 밥과 돈카츠. 매번 다른 메뉴를 시켜야지 하다가도 결국에는 카츠하야시를 시키고 마는 나를 보며 친구들은 '또 카츠하야시네!' 하며 웃어준다. 카츠하야시 자체는 매운맛이 아니지만, 나는 식탁에 놓여 있는 순후추와 고춧가루를 과하다 싶을 정도로 팍팍 뿌려 먹는데 매번 그걸 포기할 수가 없다.


다음으로 좋아하는 메뉴는 '돈카츠정식'이다. 이 가게 옆에는 오래된 정육점이 있는데, 거기서 싸게 재료를 들여오시는 건지, 점점 오르는 물가에 가격이 비싸진 다른 가게들에 비하면 돈카츠가 들어간 메뉴가 엄청 싸고 또 맛있다. 그런데 돈카츠도 물론 맛있지만 함께 나오는 특제소스가 또 일품이다. 벌써 달달짭쪼름한 향이 나는 것 같아 침이 고인다. 네모나고 작은 접시에 채워주시는 그 특제소스에 돈카츠를 찍어, 작은 팩에 들어있는 카라시(노란 겨자)를 곁들여 돈카츠를 반입 정도 베어 물고, 뜨끈한 밥을 입 안으로 밀어 넣으면.. 환상이고 행복이고 신이 나고 그런다. 그 소스는 남지도 부족하지도 않고 양도 아주 딱 맞다.






열한 시 삼십 분부터 여는 이 가게는 열한 시 삼십 분 전에 만석일 때도 있다. 그래서 여기로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계획했을 땐 최소한 오픈 십 분 전까지 도착해서 가게 문을 열고 빈자리를 확인하거나, 바깥에 줄을 서서 웨이팅을 해야 한다. 그럴 시간이 없다면, 처음 만석이 된 손님들이 식사를 끝나고 나가기 시작할 즈음(열두 시 반에서 한시 정도) 느지막이(?) 찾아가는 게 포인트다. 그럼 두 가게 중 어느 하나는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좌석이 엄청 많은 게 아니라 혼자 아니면 두 명일 때가 딱 좋다.


만젠식당이 재미있는 점은 현관이 두 개라는 거다. 현관 위를 보면 언제 적부터 달려 있는지도 모를 간판이 있는데, 한 곳은 프랑스어(?)로 뭐라고 쓰여 있고, 한 곳은 '萬善食堂'이라고 쓰인 노렌(のれん)이 걸려 있다. 그러나 두 곳 모두 지금은 만젠식당이다. 가게 가장 안쪽으로 양 건물의 주방이 이어져 있어 가운데에서 음식을 만들고, 홀 이모님들이 왔다 갔다 하시면서(왼쪽 홀에는 늘 왼쪽 이모가, 오른쪽 홀은 오른쪽 이모가 계신다) 음식을 내어주신다. 계산도 왼쪽에서 먹으면 왼쪽에서, 오른쪽에서 먹으면 오른쪽에서 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놓치면 안 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예전에 카페였던 것 같은 왼쪽 가게에는 '오늘의 메뉴' 같은 게 있다. 하지만 오른쪽 식당엔 그 메뉴가 없어서, 왼쪽이 만석일 때는 조금 아쉬워하며 오른쪽 문을 열곤 한다(다른 거 먹고 싶을 때도 있지만). '오늘의 메뉴'는 만젠식당의 정식 메뉴 중 하나로 정해지는데, 식후 커피까지 아주 저렴하게 해결할 수 있다. 미친 물가의 시대에 배가 빵빵하게 차는 점심식사가 900엔(한국 돈으로 9000원) 정도라니, 감사할 일이다.







만젠의 손님들은 다양한데, 대부분은 회사의 점심시간에 오셨는지 셔츠나 작업복을 입으신 남자 손님 두세 분 정도가 함께 온 모습이 많이 보인다. 아니면 부부나, 혼자 오시는 분들이다. 연령대는 젊은 사람들보다는 40대 이상이 많은 것 같다. 오픈 웨이팅을 할 정도로 인기가 많지만 아직은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곳이기도 한 건가? 단골손님들이 많은 것은 확실하다.


이 동네로 이사를 오고 나서 나도 만젠에 많이도 왔다. 집과 가게의 중간 즈음에 있는 고마운 가게. 가게 공사를 할 때 공사를 도와준 친구들과 늦은 점심을 먹으러 오기도 하고, 저녁에 배가 고파 어디 갈까 하다가 마침 열려 있는 시간이라 오기도 하고(저녁 영업도 있다), 한국에서 손님들이 왔을 때 이 소박하고 맛있는 맛을 소개해주고 싶어서 일부러 오기도 하고, 휴일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 밥을 하기도 애매할 때, 가게 일을 하러 가기 전에 들러 배를 채우기도 했다.


몇 십 년 동안 저렴하게 식사를 제공하는 이 가게의 원천은 무엇일까? 남는 장사니까 하시는 거겠지 싶으면서도, 이렇게 양도 많고, 네 분이서 일하시는데 진짜 남기는 할까? 싶다. 그래도 이 가게가 오래오래 있어 줬으면 하는 바람에 다른 곳을 생각하다가도 여기로 오고 마는 것이다.


오늘은 오른쪽 식당의 마지막 손님으로 들어와 카운터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며 이 글을 쓰는 사이에도 손님들이 나가면 또 들어오고, 쭉 만석인 만젠. 식당 아주머니께서 처음 오신 듯한 손님을 왼쪽 가게로 직접 안내하기도 하신다.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은 없지만 복작복작 바쁜 일본의 오래된 가게 풍경. 주방에서 접시에 계란을 푸는 듯한 아저씨의 기분 좋은 스냅 소리가 귀에 꽂은 이어폰의 음악과 맞물려 기다림이 더 즐거운 만젠.


잘 먹었습니다!




KakaoTalk_20251017_122730923_01.jpg 카페 풍인 왼쪽 식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