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 수집가

일본 생활 (벌써 8년째), 다섯

by 아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의문이 생겼다.

나는 왜 이렇게 나를 둘러싼 모든 일들에 의문이 생기고, 때로는 불만으로 이어질까?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나쁜 불만이 아니고 무언가 '합리적이고 납득이 가는 일로 주위를 채우고 싶다'는 좋은 불만이라 다행이긴 하지만. 주위의 누군가(남편)처럼 아무것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손안에 컨트롤하려 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면서 살면 맘이 편할 텐데.


의문을 가지는 상황에 마저 의문을 가지는 사람. 나의 뇌는 실시간으로 의문을 수집하고 있나.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본인 얘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던데, 왜일까. 또 의문을 가지며 기록을 한다.






며칠 전 일요일, 가게 문을 닫고 좀 쉬다 보니 밤 1시가 다 되었다.


여느 때처럼 '집에 빨리 가자'는 문장을 머릿속으로 되뇌며 설거지를 시작하려고 할 때,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싶었다. 물을 묻히기 전에 핸드폰을 켜서 카카오톡과 라인에 있는 친구 목록을 스크롤하며 쭉 훑어보는데, 일요일 1시면 다들 월요일을 위해 충전하는 시간일 텐데. 일본 친구들에게는 뭔가 실례고, 일본에 온 이후로는 휴대폰을 바꾸면서 카톡 친구도 정리(?)되어 시시콜콜하게 연락해 일상을 공유하는 한국 친구들이 몇 안 되는 탓에, 이제는 밤늦은 시간에 아무 생각 없이 통화 버튼을 누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늘 남편과 함께 있으니 남편과 많이 대화를 나누긴 하지만, 가끔씩 나의 머릿속을 남편보다 더 궁금해해 주고, 온천수처럼 샘솟는 이 의문들을 탁구공으로 삼아 랠리를 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근데 없다...




그래서 그 늦은 시간에 설거지를 하면서 혼잣말이라도 하자 싶어 인스타 라이브를 켰다.

타이틀은, '영업 종료는 설거지가 끝날 때까지...'.




들어오자마자 마작 용어를 인사말처럼 쓰고 사라진 친구도 있고, 늦게까지 수고하네~ 라며 댓글 남겨주는 친구, 내가 혼자서 주저리주저리 얘기하는 말에 공감해 주는 친구, 설거지하고 뭐 해? 라며 중간중간 질문해 주는 친구도 있다. 가게 계정이라 일본 친구들이 많았는데, 좀 지나자 한국 친구가 나도 일 끝나고 집에 왔다~ 머리 많이 길었네~ 하는 순간부터 나의 언어는 한본어.


라이브라고 특별한 주제에 대해서 말을 한 건 아니고, 설거지를 그때그때 하면 이렇게 많은 시간은 들이지 않을 텐데. 그래도 성격 상 모든 일을 조금씩 하는 것보다 모아서 한 번에 해야 성취를 느끼는 스타일이라 어쩔 수 없다. 설거지하는 일이 명상 같아서 오늘 있었던 일도 다시 생각해 보고, 잊어버리고 있던 것도 떠오르기도 하고, 내일 할 일도 정리해 볼 수 있는 시간이라 좋다.......(주절주절)


안 자고 있던 일본 동생 한 명이 끝까지 라이브를 봐 주고 소통을 해 주었는데, 성향이 비슷해서 공감이 되어 재미있었다. 만날 때는 말수가 그리 많지 않고 차분해 보여서 잘 몰랐는데.


떠들다 보니 설거지가 한순간에 끝나버렸다.








우리 부부는 올 가을에 이사를 앞두고 있다.

지금 집은 가게에서 걸어서 5분이면, 다음 집은 가게에서 걸어서 2분인 곳이다.



2년 전, 가게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친구 K가 운영하는 셰어하우스로 이사를 왔다. 우리 말고는 젊은 친구들 셋, 총 다섯이 함께 사는 집이다. 셋 중에 둘은 셰어하우스에서 커플이 되어 한 방을 쓴다. 그것 말고도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이 있어서 차차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우리는 쭉 이곳에 살 생각은 없었기에 종종 집을 알아보거나 했었는데, 친구 K가 운영하는 또 다른 건물의 캔들 가게가 비어 주거용으로 빌려줄지, 상업용으로 빌려줄지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곳은 오래된 일본 주택인데, 재미있는 건 현관이 두 개인 이층짜리 집이다. 캔들 가게는 왼쪽 집 일층이고 왼쪽 현관을 쓰고, 오른쪽 집 일이 층은 게스트하우스다. 도쿄에서 이주해 온 친구 M은 왼쪽 집 이층에 살면서 게스트하우스 관리를 겸하고 있는데, 오른쪽 현관을 쓴다. 집 안은 이어져 있지만, 캔들 가게만 왼쪽 현관을 쓰는 독립적인 구조인 것이다. 그 대신 캔들 가게가 있던 곳을 주거로 쓰게 되면, 화장실은 있지만 욕실은 따로 없어서 욕실만 셰어를 하는 반(?) 셰어하우스가 된다고.



그래! 딱 좋다! 일단은 여기로 가자.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우리가 살 수 있으면 살고 싶다고 어필을 해 두었다. 그 게스트하우스는 동네 친구들이랑 모일 때도, 한국 친구들이나 아빠가 놀러 왔을 때도 애용하고 있기에 우리에게는 익숙한 곳이다. 그리고 어떻게 타이밍이 맞아떨어져 셰어하우스 멤버도 빨리 구했고, 11월 말까지 이사를 완료하기로 했다.





물론! 셰어하우스 라이프도 즐겁고 좋았다. 그러나 최근에 새로운 친구가 오고 나서 의무 분담을 확실하게 하지 않았고, 여럿이서 룰을 정하고 실은 지키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 내게는 이사를 하고 싶은 계기였다. 각자의 방은 상관없는데, 공용으로 쓰는 공간-거실, 화장실, 욕실, 주방, 복도-의 청소와 쓰레기 문제가 그랬다. 그냥 그때그때 버리고 그때그때 청소하면 되는데 의문을 가지니까 문제다! 그리고 공용 공간에 있는 우리의 물건들도 스트레스였다. 우리 집이면 둘만 편하면 괜찮은데 우리 방에 다 들어가지 않는 물건들이 거실에 있어 미안한 마음도 들고, 다른 사람들이 정리를 안 했을 때도 괜히 신경 쓰이고.



그리고 오늘 잠에서 깨어 다들 회사에 가 조용한 거실에 앉아 정든 셰어하우스를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좀 더 이 공간을 사랑했더라면 좋았을 걸. 난 왜 그러지 못했을까?



행하지 않을 일에 물음표를 던져도 해결되는 건 없는데.

왜? 없는 뇌로 딱 하루만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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