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생활, 셋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다시 초보가 되고, 하던 일에는 공백이 생겨 어리숙해졌다. 요며칠 마음 속 여유 공간이 점점 줄어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든다. 이곳에 와서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고, 내 자신도 믿지 못하게 된 것 같다. 모든 문제의 이유는 나에게 있다는 걸 안다. 왜일까? 일본이라는 나라에 정을 붙이기가 힘들어서일까? 한국에 가서 혼자 그냥 카페에 가만히 앉아서 주위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속시원한 한국말들을 하루종일 듣고 있고 싶다.
여긴 내 나라가 아니라 할 일도 많고 신경써야 할 일도 많다. 가끔씩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는 시기에는 머리 아픈 일들은 다 제껴버리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정말 해야하는 일에도 조금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 날려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가게를 운영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어도, 어쨌든 현실은 현실이다. 나는 지금 바움쿠헨 카페와 외국어 학원 두 곳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다. 파트타임 일이기에 일에 대한 책임이나 압박은 적다. 그래서 편하다. 어떤 회사에 들어가 정직원으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까지 해 본 적이 없다. 우리 동네가 시골이라 다양한 직종이 없다는 것도 그렇지만, 일본어도 아직 부족한 나는 괜찮은 일본 회사에 들어갈 수도 없을 거다. 그치만 일본어를 일부러 공부하고 싶지도 않다. 언젠가부터 여기선 진짜 일본인처럼 일본에 녹아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외국인으로 있는 편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습관처럼 편한 것을 찾고, 조그마한 일이라도 어려운 일에는 도전해 볼 용기가 없어졌다. 그리고 편한 것에는 다시 쉽게 질리고 만다. 사람을 사귀는 것도 왠지 어렵다. 한국에서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참 즐거웠는데 여기선 점점 그렇지 않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좋은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어느새 내 자신 하나만으로도 벅찬 사람이 된 느낌이다.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서라도, 모르는 사람에게서라도 느낄 수 있었던 따뜻한 그 마음, '정'. 이 나라에는 그 마음이 없다.
그냥 나를 믿자. 나를 믿고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찾아 계속 떠나자. 그리고 나도 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자. 어쨌든 나 혼자만으로는 부족하니까.
쉬운 길과 어려운 길이 있으면 - 김경현
사람을 믿는 일은
어려운 일이라
사람과 무슨 일을 하던
믿음부터 먼저 가지라 했다
어머니는 살아보면 언젠가
느낄 거라고
아는 순간이 오면
기억하라면서
덧붙여 말씀하셨다
쉬운 길과 어려운 길이 있으면
어려운 길을 걸으렴
걷다보면 알게 된단다
걷다보면 보일 거란다
사람에 대한
믿음을 버리는 순간
쉬운 방법만 찾게 된다고
나중에 보면
어려운 길만 기억에 남고
쉬운 길은 기억도 나지 않을 거라고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어려운 길
함께 걸었던 사람이
평생을 기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쉬운 길과 어려운 길이 있으면
어려운 길을 가라고
어려운 길을 함께 걷는
사람의 앞에 옆에 뒤에 서라고
그들도 분명
너에게 그런 사람일 거라면서
어려운 길을 함께 걷는
사람이 되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