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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Mar 02. 2023

동료가 떠나갈 때


얼마 전 회사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한 메이저 신문으로 이직하게 되었다며 그동안 감사했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조금은 떨렸다. 연신 그는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네가 능력이 있고 뛰어나서 큰 신문사가 너를 좋게 보고 결국 스카우트해 가는 건데 미안할 필요가 없고, 앞으로 가서 잘하라고 했다. 수많은 동료와 선후배가 회사를 떠나는 것을 지난 10년간 지켜봐왔다. 나도 어느새 조금 무뎌진 것 같다.


언론사는 일반 대기업과는 좀 다르다. 특히 우리처럼 그렇게 크지 않은 회사는 직원이 400여명 정도라 서로가 서로를 대부분 안다. 밤늦게까지 같이 일하고 또 술한잔하고 마음을 터놓고 고민도 나누고 하면 회사 사람이기 이전에 가족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입사 초기에는 선후배가 회사를 옮긴다고 하면 정말 칼로 가슴을 후벼내는 듯이 아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다 나은 조건을 찾아 보다 더 큰 무대를 쫓아 떠나는 건데도 그게 참 슬프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들을 어르고 달래고 했다. 그들 중에는 설득에 못이겨 회사에 남은 이도 있다. 그게 정이자 전통처럼 이어졌는데, 어느새인가 부터 그런 작업도 잘 하지 않는다. 회사가 구리고, 병신이라 떠나는데 그럼에도 체계와 복지가 달라지지 않는데 정으로만 그를 붙잡을 수는 없을 터다. 시대가 달라졌고 세대가 변했다. 말 한 마디, 술 한번에 쉽게 바뀔 마음이 아니란 걸 잘 안다. 그래서 더 서글프기도 하다.


나도 몇차례 이직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누군가가 눈에 밟혀 멈췄다. 별로 후회는 없다. 분명 이직을 하면 더 좋은 회사로 옮길테고, 돈을 더 많이 받고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더 큰 매체에서 기자로서의 나의 이름을 더 만천하에 날릴 수도 있으리라. 근데 요새는 어딜가나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매일 아침 발제하고 취재원과 식사하고 오후에 기사쓰고 또 다음날 발제 준비하는 쳇바퀴 같은 삶이 이직 후에도 반복된다면.. 월급이 좀 더 늘어나도 크게 와닿지 않는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게 사실 좀 두렵고, 더 치열해질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무섭고 하는 생각도 있다. 매너리즘에 푹 빠진 거겠지만 그래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사실상 이직을 포기한 직장인도 꽤 많을 것이다. 차라리 직업을 바꾸면 바꿨지 이직은 좀 그렇지,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젊고 유능하고 일 잘하고 성격좋은 후배들이 더 큰 꿈과 목표를 가지고 경력기자에 도전하고 이직하는 것을 보면 참 부럽고 대단하기도 하다. 


우리 회사를 떠나 정치권에 가거나 로스쿨에 가거나 대기업을 가거나 아니면 더 큰 매체에서 기자생활을 하는 선후배를 아직도 많이 만난다. 그들은 하나같이 그래도 우리 회사에서 생활했던 나날이 즐거웠다고 이야기 한다. 경찰팀장을 하지 못하고 나간게 한이라는 선배도 있었다. 그들에게선 진심이 느껴졌다. 어느 회사가 아무리 좋은 조건을 내걸었대도 같이 일하거나 함께하는 동료들이 더 좋았다면, 회사가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버리고 개선의 의지를 일말이라도 보여줬으면 남아서 함께 기사를 찾고 발제를 고민했을 사람들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들은 결정적인 순간에는 또 그렇게 자본적이지 않아서 사소하고 조그마한 것 하나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그러니 떠나가는 사람들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마음으로 붙잡고 함께 더 좋은 회사를 만들어 보자, 더 좋은 기사를 쓰도록 노력해보자 하고 얘기하고 달래도 보고, 현실을 바꾸려 노력해야 한다. 이런 소소한 노력이라도 하지 않으면 회사에는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다.  


일부 선배들은 아직도 이상한 꼰대력이 있어서 떠난 이들을 배신자로 취급한다. 원래 별로 회사에 도움이 안되었고, 어필만 잘해서 이직했다고 폄하한다. 그들의 정신승리도 이해가 간다. 남아있는 나도 가끔 저들은 능력자고 나만 병신이라 여기를 지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도 열심히 살았는데, 떠난 이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한 것 같은데 왜 결과는 이럴까 하는 답답함을 잠재우려면 그들을 까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래봤자 남는 게 도대체 뭘까. 최근 소위 에이스라 불리는 후배들이 연이어 회사를 탈출하는 모습을 보면 의문이 더 커지고 있다. 퇴사 행진이 이어지고 있는데 회사는 조용하다. 너무나 조용하다. 의도적으로 서로 얘기를 피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소중한 인재들과 함께 재미있고 유익한 기사를 쓰고 싶다. 애사심이 아니고 그냥 내가 조언을 구할 좋은 선배와, 함께 고민할 동료와 후배들과 즐겁게 살고 싶다. 그러려면 회사가 달라지고 인력 유출을 막을 비책을 내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키운 인재를 조중동 경향 한겨레, 방송 3사에 계속 빼앗기는 이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지 고민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제발 좀 그래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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