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rdy Jan 25. 2023

'연합뉴스' 신봉 주의는 왜 생겨났을까


2013년 11월 17일. LG 전자 소속 헬기가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 아파트로 추락했다. 안타깝게도 조종사 2분이 돌아가셨다. 주민 피해는 없었다. 새벽부터 소식을 듣고 현장에 나가 취재를 했다. 강남 고급 아파트 주민들은 기자를 경계했고, 쫓겨나기도 다반사였다. 안에서는 그래픽을 그리라고 했다. 경찰과 LG전자,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헬기의 이동경로를 파악해 그래픽을 그렸다. 그런데 연합에 뜬 그래픽과 정반대였다. 본보는 헬기가 101동을 거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했다고 그렸는데, 연합과 이를 인용한 매체들은 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어온 것으로 표현돼 있었다. 당시 한 선배는 "네가 맞아? 연합이 맞아"라고 물어보는데 식은땀이 주욱 흘렀다. 내가 수차례 확인했을 때는 분명 오른쪽에서 왼쪽이었는데.. 그래서 "제가 맞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손이 떨렸는데, 결국 경찰에서 내가 그린 그래픽이 맞다고 최종 확인해 줬다. 한숨 쓸어내리면서 문득 든 생각은 "왜 이렇게 나이 든 선배들은 연합을 맹신하는 걸까"였다.


연합뉴스 기자는 총 600여 명이다. 전 세계에 나가있는 특파원 40~50명을 포함한 숫자다. 종합일간지 기자가 대개 200~300명 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 기자 숫자가 많다. 물론 일본이나 미국의 유수한 매체에 비해서는 적겠지만.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연합 선후배들은 참 열심히 하고 뛰어난 분들이 많았다. 취재처에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했다. 부지런하다는 느낌이 컸다. 또 주말자라고 해서 새로운 기사를 매주 계속 발굴해야 하는 고충도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언론계에 만연한 연합신봉주의의 연유를 따지기엔 미묘한 구석이 있다. 


연합뉴스는 기본적으로는 일반 시민이 아닌, 신문이나 방송사 등 다른 언론사들을 상대로 뉴스를 제공하고 판매하는 통신사다. 뉴스 도매상이다. 특히 지방주재 기자를 두기보다 연합의 지방기사에 의존하면 인건비를 줄이고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기에 많은 언론사가 선호한다. 연합이 하루 쏟아내는 기사는 2000~2500건에 달한다. 네이버나 다음 등 주요 포털 뉴스 송고량의 70% 이상이다. 인터넷이 확산되고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많은 기자와 더 많은 기사량을 바탕으로 24시간 기사를 처리하는 연합뉴스의 영향력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2022년 한국기자협회가 현직 기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연합뉴스는 기자들이 꼽은 '가장 신뢰하는 언론사'로 2년 연속 꼽혔다. 주요한 속보나 1보는 연합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매체의 온라인 뉴스부가 연합을 베끼기 때문이다. 속도가 생명인 21세기 미디어 생태계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러니 대부분의 매체들은 그들만의 콘텐츠를 생산하려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동시에 연합 등을 베껴 빠른 휘발성 정보를 제공하는 투트랙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연합이 이렇게 커진 것은 정부에서 국가기간통신사 지원 명목으로 연간 350억 원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기자는 실제로 많은 돈을 받고 처우가 상당히 좋은 편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일을 엄청나게 시키지만.. 정부 지원이 많다 보니 연합을 두고 어용매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친진보 기사를, 보수 정권이 출범하면 보수에 유리한 기사를 주로 쓴다는 것이다. 국가로부터 막대한 돈을 받는 연합이 개별 언론사로부터 수억 원에 달하는 전재료를 추가로 받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또 한때는 연합이 기사에 단독을 붙인 적도 있는데 욕을 먹고 금방 그만두었다. 


아무튼 이러한 연합을 믿고 따르는 이른바 '연합만능주의'는 언론계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대개 부장이나 데스크 사이에서 도는 병이다. 1. 연합에 기사가 뜨면 확인도 하지 않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 뒤, 소속 기자나 후배에게 받아쓰라고 지시한다. 2. 발제를 하면 연합을 우선 뒤져보고, 기사가 연합에 뜨지 않았을 경우 '중요한 거 맞아?'라고 되묻거나 킬 한다. 3. 취재원이 연합에게 기사를 주는 것을 당연시하고, 스스로 연합에 버금가는 취재를 펼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4. 별로 중요한 팩트가 아닌데도 연합이 쓰면 '기사 말미에 한 줄 붙여주자'라고 한다, 등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연합은 신이 아니다. 우리와 똑같은 기자들이 기사를 쓰고 데스크와 부장을 거쳐 출고되는 기사다. 그러니 실수도 나오고, 오보도 속출한다. 지난 11년간의 기자생활 가운데 연합의 무수한 '고침' 기사를 봤다. 무슨 말인지 모를 기사도 있고 막 지르는 기사도 많았다. 연합 기사를 그대로 받았다가 기사에 언급된 취재원으로부터 고소를 당하는 경우도 목도했다. 무조건 신뢰하면 위험하다는 뜻이다. 


저 연차 때는 아예 연합을 보지 말라는 선배도 있었다. 연합을 자꾸 베끼다 보면 스스로 기사를 쓸 수 있는 능력이 줄어들고, 연합 없이는 아예 기사를 처리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는 것이다. 정말 맞는 말 같다. 똑같은 사건이나 콘텐츠를 두고도 내가 생각하는 대로 취재하고 정리하는 그런 능력이 없다면 길고 지난한 기자생활이 더 힘들어질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단독 기사의 기준을 '연합이 받는 것'으로 보고 있다. 내가 단독을 썼을 때 연합이 내 기사를 받아 기사를 처리할 경우 내가 얘기되는 기사를 썼다는 뜻이 된다. 최근에는 국제금융센터 감사보고서 기사를 단독으로 썼는데 연합이 받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심지어 연합 기사가 내 기사보다 훨씬 더 조회수가 높게 나오고, 내 기사를 베낀 연합 기사를 베낀 기사들이 쏟아지면서 내 기사가 묻혀도 나만 느낄 수 있는 그 한순간의 쾌감 덕분에 또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다.



 


이전 11화 국회 잡진 기자의 하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