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히드마틴, 보잉, 노스럽그루먼, 제너럴 다이내믹스, 레이시온
미국은 그야말로 거대한 방위산업 제국이다. 전 세계 방위산업의 약 40%를 차지하는 미국의 방산 업계는 단순히 무기만 만드는 게 아니다. 항공기, 미사일, 우주 방어 시스템까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첨단 기술을 만들어내고 있다. 록히드마틴의 F-35 전투기나 보잉의 KC-46 공중급유기를 떠올려 보자. 이들 무기는 단순한 군사 장비를 넘어서, 미국의 국력을 상징하는 존재다. 그냥 비행기가 아니라, 수십 년간 발전해온 첨단 기술이 집약된 결과물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어떨까. 사실 한국의 방산 기술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몇 년 사이 K-방산이라고 불리며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한국의 무기들은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자주포, K2 전차, 천궁 미사일 시스템 등 한국이 만든 무기들은 꽤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의 거대한 방산 산업과 비교하면 그 규모나 기술력에서는 차이가 난다.
미국의 방산 기업들은 단순히 무기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우주까지도 지배하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 보잉은 항공 우주 분야에서도 선두주자로, 위성 발사와 우주 탐사를 담당하고 있다. 한국은 아직 그런 분야에서 뚜렷한 입지를 확립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터다.
미국 방산의 규모는 생각보다 더 엄청나다. 2022년 방산 예산만 해도 수십 조 원에 달하고, 그 예산이 전 세계 군사력을 좌우하는 정도다. 미국의 방산 기업들은 그 예산을 통해 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전 세계 군사 협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F-35는 이미 15개 이상의 국가에서 사용하고 있고, 그 나라들은 모두 록히드마틴의 기술을 신뢰하고 있다. F-35가 그만큼 성공한 이유는 단순히 비행기가 아니라, 공중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적인 기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국 방산이 성공하려면 이미 앞서있는 미국 방산업계부터 명확히 이해하고, 공부해야 한다. 미국 방산을 이끄는 5개의 기업은 바로 록히드마틴, 보잉, 노스럽그루먼, 제너럴 다이내믹스, 레이시온다. 이 기업들은 단순한 무기 제조를 넘어, 미국의 군사력과 국가 안보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둥이다.
록히드마틴
록히드마틴 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F-35 전투기를 떠올릴 것이다. 사실 록히드마틴의 이야기는 그저 전투기 한 대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길고,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어온 방산 거인의 역사와 맞물려 있다.
록히드마틴의 시작은 전투기와 크게 상관은 없었다. 1912년, 하워드 휴즈라는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그가 만든 록히드 공군기계 회사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비행기를 설계하고 제작했다. 하지만 진짜 큰 전환점을 맞이한 건 세계대전 중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동안 최첨단 기술을 채택한 록히드의 전투기들은 수많은 국가에서 사용되었고, 이 과정에서 하늘을 지배하는 기술을 만들어갔다.
1970년대, 록히드마틴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F-16 전투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전투기는 일종의 스포츠카처럼 빠르고, 민첩하고, 강력했다. 그러면서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나라들이 도입할 수 있었다. F-16은 비행기계의 마법이라 불릴 만큼 잘 나갔고, 지구 곳곳에서 하늘의 군사력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F-16은 1970년대 미 공군의 ‘가볍고 빠른 공중전 전투기’ 프로젝트에서 출발했다. 당시 설계진은 무조건 가벼워야 기동성이 산다는 신념으로 시작했고, YF-16 시험기까지는 진짜로 그 컨셉이 먹히는 듯했다.
그러나 개발이 진행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공군과 해외 고객이 “공대지 폭탄도 달아야 한다” “전자전 장비도 넣어라” “연료도 더 싣자” 같은 요구를 쏟아냈다. 그 결과, F-16은 애초 ‘날렵한 펜싱 선수’를 목표로 했는데, 설계 변경을 반복할수록 ‘방패·활·비상식량까지 짊어진 다목적 전사’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문제는 무게가 늘면 전투기의 생명인 기동성이 즉각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당시 시험비행 조종사들은 “기체가 원래 설계보다 무겁고 둔해졌다”고 불평했고, 고각 기동에서는 기류 제어가 불안정해지는 사례가 반복됐다.
레이더, 항전장비, 폭장 옵션이 늘어날수록 속도·반응성·비상 기동 능력이 기대에 못 미쳤고, ‘경량 일전투기(LWF)’라는 초심과 점점 멀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여기에 인증 절차, 다국가 규격 통합, 유지보수 설계 변경 등이 겹치면서 일정도 밀리고 비용도 불어났다. 초반 엔지니어들이 “한 번에 완성할 수 있다”던 자신감은 현실 앞에서 처절하게 부서졌다.
하지만 바로 이런 시행착오의 역사가 F-16을 전설로 만들었다. 설계진은 실패를 인정하고, 플라이바이와이어 제어, 구조 강화, 블록별 업그레이드를 반복하며 기체를 다듬었다. 덕분에 F-16은 공대공·공대지·정밀타격까지 가능한 진짜 다목적 전투기로 진화했고, 4600대 이상이 생산된 ‘세계 최다 판매 전투기’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F-16은 처음부터 천재적인 기체가 아니었다. 오히려 실패, 요구변경, 설계 갈아엎기, 시험반복이라는 수렁을 통과한 끝에 완성된 산물이었다.
그리고 F-35,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5세대 전투기가 등장했다. F-35는 처음부터 ‘비행기’가 아니라 ‘하늘을 나는 네트워크 플랫폼’이자 ‘센서 집합체’라는 목표로 개발됐다. F-117·F-22를 통해 축적한 스텔스 기술을 발전시켜 레이더 반사면적(RCS)을 극단적으로 줄였고, 기체 곳곳에 AESA 레이더, 적외선 탐지장비, 분산개구센서(DAS), 전자전 시스템을 통합했다.
조종사는 헬멧만 쓰면 기체 아래를 투시하듯 볼 수 있고, 센서는 주변 표적을 자동으로 분석한다. 과거 전투기가 조종사가 보고-판단-사격을 수행했다면, F-35는 기체가 데이터를 모아 판단을 돕고, 조종사는 결정을 승인하는 구조다. 전투기가 파일럿의 능력을 확장하는 하나의 컴퓨터 무기체계가 된 셈이다.
이 기체의 핵심은 ‘혼자 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F-35는 공중에서 다른 F-35, 이지스 구축함, 조기경보기, 지상 레이더와 데이터를 실시간 공유한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공군은 시리아 상공에서 F-35를 실전에 투입해 주변 방공망 위치를 실시간으로 아군 네트워크에 흘려 보냈고, 일본은 자위대 이지스함과 F-35를 연동해 누가 쏘든, 누가 보든 상관없이 목표를 타격할 수 있는 협동 교전 개념을 실현하고 있다. 이 구조 안에서는 전투기 1대가 시야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동맹국 전체가 전장을 공유하는 하나의 시스템이 된다.
F-35는 미국, 영국, 이탈리아, 이스라엘, 일본, 노르웨이, 한국 등 17개국 이상이 F-35를 도입했고, 각국의 훈련 데이터와 실전 교훈이 프로그램 전체에 반영된다. 영국이 지중해에서 겪은 전자전 경험이 미국의 업그레이드에 반영되고, 한국이 한반도 지형에서 축적한 데이터가 다른 동맹국의 미션 데이터를 보강하는 식이다.
부품 조달도 국제 분업 체계라 이탈리아 공장이 날개를 만들고, 일본 조립라인이 동북아 물량을 담당한다. 이 글로벌 생태계 덕분에 록히드마틴은 단순히 ‘전투기 판매 기업’을 넘어, 동맹국들의 하늘을 하나로 묶는 플랫폼 제공자가 됐다.
하지만 록히드마틴도 완벽한 신화를 이루지는 못했다. F-35는 여러 면에서 비용 문제와 생산 일정 지연으로 여러 차례 논란에 휘말렸다. 처음에 계획된 비용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기술적 결함이 나오면서 군과의 계약이 지연되기도 했다.
특히 F-35를 둘러싸고 여러 갈등도 빚어졌다. 일본과 이스라엘의 F-35 도입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두 나라 모두 국가 안보 환경이 극도로 특수한 나라다. 두 나라는 주변국의 위협을 이유로 F-35를 빠르게 도입했지만, 과정이 매끄럽지만은 않았다. 일본 내부에서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고, 이스라엘에서도 “미국 통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가”, “전쟁에 더욱 휘말리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일본은 자위대 장비에 대한 평화헌법 논쟁이 항상 따라붙기 때문에, F-35는 단순한 무기 구매가 아니라 정치적 결단의 상징으로 다뤄졌다.
이스라엘은 F-35 도입 조건에서 미국과 치열하게 협상했다. 이스라엘은 전자전 장비와 시스템 소스코드를 자국이 일부 개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F-35I(Adir)라는 이스라엘 전용 커스터마이징 모델을 확보했다. 이스라엘은 이 권한을 얻기 위해 비용을 더 감수했지만, 그 덕에 중동과의 전쟁에서 F-35를 세계 최초로 투입해 자국 안보에 직접적인 전략적 우위를 확보했다. 반대 여론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미국 장비를 쓰되, 미국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통해 정치적 균형을 맞췄다.
일본은 이스라엘과 정반대 전략을 택했다. 일본은 소스코드 접근 같은 ‘독자 개조 권한’을 요구하기보다는, 미국이 제공하는 동맹 네트워크의 우산 속 확실한 안보를 선택했다. 대신 일본은 국내 최종조립·생산(Final Assembly and Check Out, FACO) 라인을 확보해 방위산업 이익을 일부 일본 경제에 환류시키는 방향으로 여론을 관리했다. 즉, “비싸도 미국과 확실히 연결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정치적으로 선택한 셈이다. 같은 F-35 도입이지만, 이스라엘은 자율성 강화, 일본은 동맹 강화라는 정반대 방법으로 국민 설득을 진행한 것이다.
록히드마틴은 방산 산업의 선두주자로, 그 기술력과 제품들은 전 세계에서 큰 영향력을 끼친다. 하지만, 이 기업도 현재 몇 가지 큰 도전과 현안에 직면해 있다.
록히드마틴의 F-35 전투기는 현재 그 대표적인 상징이지만, 이 프로그램은 예상보다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며 여러 차례의 지연과 비용 초과 문제를 겪었다. F-35는 원래 미국 공군, 해군, 해병대 및 여러 동맹국들이 함께 사용할 다목적 전투기였으나, 생산 지연과 비용 증가가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2024년 F-35의 납품이 평균 238일 지연되었으며, 일부 항공기는 전투 준비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로 납품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의 업그레이드 프로젝트인 Block 4는 예산 초과와 5년의 지연을 겪으며, 그로 인해 군과의 계약도 일정이 밀리고 있다.
아울러 록히드마틴은 4000개 이상의 부품 부족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이로 인해 생산 지연이 발생하고 있다. 이 부품 부족은 전 세계적으로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있으며, 이는 록히드마틴뿐만 아니라 여러 방산 기업들이 겪고 있는 공통된 문제다. 부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전투기와 같은 중요한 방위 시스템의 생산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록히드마틴은 최근 약 16억 달러 규모의 프로그램 손실을 공개하며 재무적 부담을 안게 됐다. 주된 원인은 기밀 항공우주 프로젝트에서의 기술 난제, 일정 지연, 비용 초과였고 일부 해외 헬리콥터 사업에서도 계약 조건과 생산 과정의 변수로 손실이 발생했다. 여기에 F-35처럼 규모가 큰 장기 사업은 개발·운용 비용이 계속 누적되는 구조라, 작은 차질이 곧바로 수천억 원 단위의 추가 비용으로 이어지는 리스크를 안고 있다. 이처럼 프로그램 단위의 손실이 반복되면 기업의 현금흐름과 투자 여력이 줄어들고, 방산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에도 악영향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제 록히드마틴은 단순한 기술력뿐 아니라 ‘프로그램 관리 능력’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비용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고정가 계약의 리스크를 재점검하고, 공급망 관리, 일정 관리, 현장 품질 통제에 대한 내부 통제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동맹국을 상대로 한 대형 사업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성과를 제때 내지 못하면 정치적 부담까지 커질 수 있다. 결국 록히드마틴의 다음 과제는 더 좋은 무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거대 프로젝트를 예산 안에서 끝까지 책임 있게 완성해내는 회사라는 신뢰를 지켜내는 일이 됐다.
보잉
보잉은 항공기와 우주 탐사 분야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방산 부문은 보잉이 세계 방위 산업에서 차지하는 독보적인 입지를 만들어낸 핵심이다. 보잉은 단순히 비행기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이들은 군용 항공기, 미사일 시스템, 공중급유기, 우주 탐사 장비 등을 통해 하늘과 우주에서의 미국 군사력을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보잉은 1916년 설립된 이래, 상업용 항공기를 만들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 보잉은 군용 항공기로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특히 B-17 폭격기는 미군의 주요 공중 공격 자산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보잉의 군용 항공기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 군사력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이 후, 보잉은 상업 항공기와 군용 항공기를 동시에 제작하는 독특한 방산 기업으로 자리잡게 된다. 보잉의 여객기는 전 세계 항공사에서 선호되는 모델로 자리잡았고, 그와 동시에 군용 항공기 역시 미국 방위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된다.
보잉이 방산 분야에서 특히 중요한 기여를 한 부분 중 하나는 공중급유기이다. 전투기가 멀리 날아가 오랫동안 작전하려면, 하늘에서 계속 싸울 수 있게 연료를 넣어주는 주유소가 필요하다. 보잉의 KC-46 공중급유기는 바로 이런 역할을 맡고 있다. 만약 공중급유기가 없다면, 전투기는 잠깐 비행하고 바로 기지로 돌아와야 하고, 장거리 작전은 아예 불가능해진다. 즉, KC-46은 전투기의 숨통을 틔워주는 장비다.
KC-46의 강점은 ‘연료만 나르는 비행기’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 기체는 민간 여객기를 바탕으로 만들어 넓고 안전하며, 두 가지 방식으로 어떤 나라 전투기든 기체 종류에 상관없이 연료를 넣을 수 있다. 게다가 적의 미사일을 피하고, 항로를 감시하며, 위험 상황에서는 스스로 방어할 장비까지 갖추고 있다. 그래서 미 공군뿐 아니라, 동맹국들이 앞다퉈 도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잉이 공중급유기로 ‘군대의 체력’을 책임졌다면, 보잉의 F/A-18 전투기는 ‘실전 무대’에서 활약했다. 이 전투기는 공중전, 지상 폭격, 감시 정찰까지 한 기체로 여러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실제로 미 해군 항공모함에서 운용되며 걸프전, 아프가니스탄 등 수많은 전장에서 활약했다. 영화 <탑건> 시리즈에 등장하는 함재기 이미지의 실제 모델이 바로 이 계열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특히 F/A-18은 항공모함에서 이착륙해야 하기 때문에, 짧은 활주로·거친 바람·불안정한 파도 속에서도 버틸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일반 전투기보다 더 강한 착륙 장치, 바닷바람을 버티는 부식 방지 설계, 갑판에서 빠르게 무장을 교체하는 구조가 대표적인 특징이다. 이 전투기가 있어야 항공모함이 전 세계 어디든 이동하면서 곧바로 작전을 펼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보잉은 전투기의 체력을 책임지는 KC-46 과 전투 현장에서 직접 싸우는 F/A-18 을 통해 미군과 동맹국들의 전력을 뒷받침해왔다. 한쪽은 뒤에서 연료를 공급하며 작전 시간을 늘리고, 다른 한쪽은 최전선에서 임무를 수행한다. 보잉이 방산 분야에서 중요한 이유는, 이렇게 전쟁의 ‘뒷줄’과 ‘앞줄’을 동시에 책임지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보잉도 상황이 마냥 순탄한 것은 아니다. KC-46 공중급유기의 경우 개발 초기에 연료 투입 시 카메라 영상이 왜곡되는 문제, 붐(급유장치) 제어 오류, 기계 결함이 잇따라 발견됐다. 연료를 넣다가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기체가 손상될 수 있어, 미 공군은 이대로는 실전 배치가 어렵다며 여러 차례 보완을 요구했다. 결국 KC-46은 100억 달러가 넘는 추가 비용과 수년간의 납품 지연을 남겼고, 지금도 보잉은 문제 수정과 이미지 회복에 애를 쓰는 중이다.
미사일 분야에서도 보잉은 고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Missile Defense) 일부 개발 사업에서 일정 지연과 시험 실패가 반복됐고, 예산은 계속 늘어났다. 반면 록히드마틴, 레이시온 같은 경쟁사들은 미사일 분야의 주력 자리를 선점한 상태라, 보잉은 이 분야에서 확실한 무기를 보여주지 못했다. 잘하는 건 여전히 항공 쪽인데, 미사일 시장에서는 추격자 입장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보잉이 새롭게 택한 방향은 ‘우주’다. 보잉은 NASA와 오랜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며 국제우주정거장(ISS) 주요 모듈을 제작했고, 지금도 유인 우주선 ‘스타라이너(Starliner)’를 개발하고 있다. 비록 스타라이너는 발사 지연과 기술 문제로 곤욕을 겪고 있지만, 적어도 보잉이 우주 수송 시장에서 계속 플레이어로 남겠다는 의지는 분명하다.
보잉은 저궤도 위성 사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저궤도 위성은 궤도가 낮아 통신 지연이 적고, 전 세계 어디서든 정보 수집과 군사·민간 통신을 동시에 지원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우주에서 작동하는 24시간 감시·통신망을 만드는 게임에 뛰어든 것이다. 이 영역은 앞으로 우주전, 사이버전, 정보전이 뒤섞인 미래 전장과 직결돼 보잉이 반드시 잡아야 할 시장으로 평가된다.
최근 보잉은 극초음속 기술, AI 기반 자율 무기체계, 우주 방위 플랫폼에도 투자 중이다. 하늘을 장악하는 회사에서 우주까지 장악하는 회사로 체질을 바꾸려는 셈이다. 미국 정부가 우주군(Space Force)을 창설하면서 우주가 방산의 새로운 전장이 된 만큼, 보잉은 이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있다.
노스럽그루먼
노스럽그루먼(Northrop Grumman)은 방산 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기업으로, 스텔스 기술과 항공우주 시스템에 강점을 지니고 있다. 그들이 만든 무기와 시스템은 그저 군사적 장비를 넘어서, 전투의 판도를 바꾸는 혁신적인 기술을 제공해왔다.
노스럽그루먼이 방산 산업에서 주목받게 된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스텔스 기술이다. B-2 스텔스 폭격기는 그 대표적인 예로, 1980년대 말부터 개발이 시작된 이 기체는 적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혁신적인 기술로 주목받았다. 이 폭격기의 기술은 당시로서는 비행기 역사상 가장 진보된 스텔스 기술이었고, 전 세계적으로 스텔스 기술의 표준을 제시한 사례로 기록된다.
B-2 폭격기는 그 자체로 하늘을 지배하는 무기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적의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고 대규모 공습을 가능하게 한 이 폭격기는 전략적 공격력을 높여주는 핵심 요소로 자리잡았다. 노스럽그루먼의 스텔스 기술은 단순히 군사 장비를 숨기는 것을 넘어서, 적에게 보이지 않게 전투를 펼치는 새로운 전술을 가능하게 했다.
B-2는 냉전 말기 미국이 소련 방공망을 뚫고 핵폭탄을 투하할 수 있는 폭격기를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1980년대에 노스럽그루먼이 개발에 착수한 기종이다. 당시 소련은 레이더망과 미사일 방어 체계가 세계 최고 수준이었기 때문에, 미군은 눈에 보이지 않는 폭격기를 우선 과제에 올렸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날개만 남긴 듯한 플라잉 윙(flying wing) 디자인의 B-2다.
B-2 개발 과정은 극비 프로젝트였다. 코드명은 ‘블랙 프로젝트’였고, 예산과 개발 내용이 극비로 여겨졌다. 심지어 의회에서도 “대체 뭘 만들고 있길래 돈이 이렇게 들어가느냐”며 조사 요구가 나올 정도였다. 개발진은 새벽에만 시험비행을 띄우고, 기체를 덮는 레이더 흡수 도료(RAM)를 단 한 사람씩만 맡길 정도로 보안 규정이 철저했다. 스텔스 도료는 기밀 중 기밀이라, 기술자 1명만 조색법을 알고 있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B-2의 핵심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레이더를 맞으면 반사파가 돌아와야 잡히는데, B-2는 전파가 사방으로 흩어지게 설계돼 탐지가 극도로 어렵다. 여기에 엔진은 적외선 감지를 피하기 위해 깊은 내부에 넣었고, 기체 도료는 레이더 전파를 흡수한다. 이런 기술 덕분에 B-2는 적의 심장부를 몰래 통과해 정밀폭격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다. 실제로 코소보·아프가니스탄·이라크 작전에서 B-2는 미국 본토에서 이륙 → 30~40시간 비행 → 폭격 → 다시 귀환 같은 말도 안 되는 임무를 수행하며 보이지 않는 망치라는 별명을 얻었다.
다만 스텔스 기술의 대가도 만만치 않았다. B-2는 개발비만 수백억 달러가 들었고, 한 대 가격이 웬만한 도시 재정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미국이 B-2를 지금까지 최정예 전략 자산으로 유지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보이지 않으면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스텔스는 단순한 장비가 아니라, 전쟁의 룰 자체를 바꾼 기술이었다.
B-2는 전략 폭격기다. 이 계열 무기는 전투기의 연장선이 아니라, 전쟁 자체를 끝내는 용도로 운용된다. B-2가 핵폭탄 16발(Mk-82 계열 및 B-61, B-83 운용 가능)을 싣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쟁이 핵 억제 수준까지 치달았을 경우, 적의 지휘부, 미사일 사일로, 공군기지, 레이더 기지를 동시에, 그리고 단번에 마비시키는 것이 목표다. 그것도 몰래 침투해서 순식간에. 그래서 B-2는 ‘보이지 않는 것’뿐 아니라 ‘한 번 뜨면 전쟁 구조를 송두리째 흔드는 존재’라는 전략적 의미를 갖게 됐다. 미국이 B-2를 지금도 신성하게 취급하는 이유는 이 한 대가 적의 국가 운영 능력을 통째로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노스럽그루먼은 B-21 레이더라는 차세대 스텔스 폭격기를 개발 중이다. B-21은 B-2의 후속 모델로, 더 강력한 스텔스 성능과 다양한 전투 임무 수행 능력을 자랑한다. B-21은 그야말로 미래형 전투기의 아이콘으로, 전 세계 군사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폭격기는 미국의 방위산업에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B-21은 B-2의 후속기로, 스텔스를 유지비 폭탄 없이 굴릴 수 있게 만든 차세대 모델이다. B-2는 유지가 너무 비싸고 스텔스 도료 보수가 너무 까다로워서 항상 격납고에서 달래가며 운영해야 했다. 반면 B-21은 정비 시간을 줄이고, 운영비를 낮춘 실속형 스텔스 폭격기를 목표로 개발됐다.
또한 B-2는 본질적으로 유인기 중심이지만, B-21은 유·무인 전환 운용까지 염두에 두고 있어 전투 방식 자체가 더 유연하다. 마지막으로, B-21은 공개된 정보만 봐도 AI 기반 센서 융합, 네트워크 중심전(connected warfare) 능력이 강화돼 있다. 즉, B-21은 단순히 B-2의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스텔스 폭격기의 사용 철학을 바꾼 기체에 가깝다.
이런 노스럽그루먼도 현재 몇 가지 현안에 직면해 있다. 첫 번째는 스텔스 기술의 지속적인 혁신이다. 스텔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적의 기술도 함께 발전하는 만큼, 비행기의 탐지 가능성을 낮추는 새로운 기술을 계속해서 연구해야 한다. B-21의 개발 과정에서도 기술적 어려움과 비용 문제가 발생했으며, 업그레이드 과정에서 계획보다 지연되기도 했다.
노스럽그루먼은 우주 산업에도 관심을 쏟고 있는데, 우주 방위와 관련된 기술 역시 비용과 기술적 난제가 많다. 정찰 위성의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해야 하고, 우주에서의 군사적 우위를 위한 방위 시스템은 매우 복잡하고 고도화된 기술을 요구한다. 노스럽그루먼은 이러한 기술적 도전을 해결하고, 미래의 우주 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제너럴 다이내믹스
제너럴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는 미국 방산 산업의 또 다른 거대한 축을 차지하는 기업으로, 해양 방위와 군용 차량 분야에서의 강력한 입지를 자랑한다.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잠수함, 전차, 전자 시스템 등을 포함한 다양한 방위 시스템을 개발하며, 미국의 군사력을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 기업은 단순히 무기 시스템을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전략적이고 혁신적인 방위 솔루션을 제공하며, 미래의 전투를 준비하는 방산 분야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잡고 있다.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미국 방위산업에서 특이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회사의 대표 무기 두 가지—버지니아급 핵잠수함과 M1 에이브럼스 전차—는 각각 바다와 육지에서 미국의 전략을 떠받치는 핵심 플랫폼이다. 방식은 다르지만, 두 무기는 모두 한 번 만들고 오래 쓰되, 기술은 계속 바꿔끼우는 무기라는 공통된 철학을 반영한다.
버지니아급 잠수함의 출발점은 의외로 ‘후퇴’였다. 냉전 말기 미국은 초고가의 시울프급 잠수함을 추진했지만, 냉전 종료와 예산 압박이 겹치며 기존 전략이 흔들렸다. 이때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방향을 전환했다. 적은 비용으로 더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유연한 잠수함, 즉 만능형 핵잠수함이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그렇게 등장한 버지니아급은 정찰, 미사일 타격, 지휘통제, 특수부대 침투까지 수행할 수 있는 멀티임무 플랫폼으로 설계되었다.
버지니아급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듈형 구조다. 잠수함을 하나의 거대한 레고 블록처럼 설계해, 필요할 때마다 전자전 장비·미사일 시스템을 교체하거나 확장할 수 있다. 이는 다른 국가의 잠수함이 대체로 처음 만든 임무에 고정된 채 운용되는 방식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덕분에 미국은 30년 이상 동일 플랫폼을 유지하면서도 시대에 맞는 잠수함을 계속 보유할 수 있었다.
시험 과정에서도 버지니아급은 뚜렷한 강점을 증명했다. 해군이 가장 중점적으로 본 항목은 ‘소음’이었는데, 초기 시험에서 기존 핵잠수함 대비 압도적인 정숙성이 입증됐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발견되지 않을 능력이 곧 공격력이라고 평가한다. 상대가 존재를 알아차리기 전에 작전, 정찰, 공격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버지니아급을 전략 잠수 전력의 중심으로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육지에서는 M1 에이브럼스 전차가 같은 역할을 한다. 이 전차는 병력이 살아 돌아오는 전차라는 목표로 개발되었다. 즉 화력과 장갑, 기동력뿐 아니라 센서·관측장비·사격통제 시스템 같은 전자 기술을 적극적으로 통합했다. 개발 당시 가스터빈 엔진을 채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연료 소모는 늘었지만, 대신 속도와 가속력, 즉 기동 생존성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에이브럼스의 위력은 실제 전장에서 입증됐다. 걸프전에서 에이브럼스는 먼 거리에서 먼저 보고, 먼저 맞추는 방식으로 대부분의 전투를 끝냈다. 이전까지 전차전은 장갑과 화력 경쟁으로만 이해됐지만, 에이브럼스 이후 전차의 평가 기준은 정보 우위 + 기동 + 생존성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이는 제너럴 다이내믹스가 기계를 단순한 철갑 덩어리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전투 시스템으로 정의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두 무기는 같은 결론으로 이어진다. 버지니아급은 바다에서 임무를 계속 바꿔가며 은밀하게 활동하는 플랫폼, 에이브럼스는 육지에서 오랜 기간 개량되며 우위를 유지해온 플랫폼이다. 이 회사의 진짜 힘은 처음 만든 순간이 아닌, 운용되는 시간 동안 계속 강해지는 무기를 설계한다는 데 있다. 이 철학 덕분에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미국의 바다와 육지 전략을 지금까지도 지탱하고 있다.
요새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무인 항공기(UAV)와 무인 전투 시스템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들은 인공지능(AI)과 결합되어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전투 시스템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미래의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제너럴 다이내믹스도 여러 도전과 현안에 직면해 있다. 첫 번째는 비용 문제다. 잠수함과 전차와 같은 대형 방위 시스템은 매우 비싼 비용을 필요로 한다. 버지니아급 잠수함을 포함한 제너럴 다이내믹스의 주요 제품들은 기술 개발과 생산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며, 이로 인해 예산 초과와 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군사 기술의 지속적인 혁신이다. 스텔스 기술이나 자율 시스템 등 미래 전투에서의 기술 혁신을 계속해서 추구해야 한다. 다른 경쟁국들이 빠르게 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방위 시스템을 연구하고 개발해야 한다.
세 번째는 국제적인 정치적 불확실성이다.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여러 나라와 방위 계약을 체결하고 있지만, 국제 정세나 정치적 이슈에 따라 계약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특히, 무기 수출은 각국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큰 변동을 겪을 수 있어,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이러한 외부적인 요인에 대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너럴 다이내믹스의 미래는 매우 밝다. 잠수함, 전차, 전자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기술 혁신은 제너럴 다이내믹스를 방산 산업의 중심에 놓이게 만들었다. AI, 자율 시스템, 무인 전투 시스템 등 미래 기술에 대한 투자는 제너럴 다이내믹스를 차세대 전투 시스템 개발의 선두주자로 만들어 가고 있다.
레이시온
레이시온(Raytheon Technologies)은 미사일 방어 시스템과 우주 방위 분야에서 세계적인 리더로 자리 잡은 방산 기업이다. 레이시온은 첨단 미사일 시스템, 전자전 기술, 위성 시스템, 그리고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미국과 전 세계 군사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술들을 개발하고 있다.
레이시온은 태생부터 공격보다 ‘방어’에 특화된 회사였다. 1920년대 라디오와 레이더 기술로 시작해, 적을 먼저 ‘보고’ ‘찾고’ ‘추적’하는 기술에 집중했고, 냉전 시절 미국의 전략 변화와 맞물리며 미사일 방어 기술을 핵심 역량으로 키워냈다. 그래서 이 회사는 폭탄과 전투기를 앞세워 힘을 과시하는 방산 기업들과 달리, 적의 공격을 무력화하는 기술, 즉 방패에 모든 자원을 몰아넣었다. 이 정체성이 지금의 레이시온을 만든다.
걸프전은 레이시온 기술이 전 세계에 각인된 순간이었다.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을 요격한 패트리엇은 ‘맞으면 끝’이던 시대의 공포를 끊어낸 상징 같은 무기였다. 패트리엇이 강력하게 자리 잡은 건 미사일 자체보다 레이더와 시스템 통합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적을 계속 추적하고, 이동 경로를 계산하고, 동시에 요격 타이밍을 잡아내는 통합형 기술 덕분에 이 시스템은 지금도 전 세계 18개국 이상에서 운용된다. 레이시온은 미사일 한 발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요격–레이더–지휘체계–훈련’까지 묶인 방어 생태계를 파는 회사로 성장했다.
패트리엇 이후 레이시온은 공격 무기를 만들기보다 적의 눈을 멀게 하는 기술에 집중한다. 전자전 기술이 레이시온에서 급격히 발전한 이유다. 전자전의 핵심은 상대의 센서와 레이더를 속이고, 통신을 끊고, 정보 체계를 혼란시키는 것이다.
전투기 한 대를 더 만드는 것보다, 적 100대의 통신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더 싸고 효율적이라는 사실에 착안한 선택이었다. 이런 흐름은 자연스럽게 사이버 방어로 확장된다. 실제 전쟁에서 총알보다 먼저 날아오는 것이 해킹이라는 현실 앞에서, 레이시온은 사이버 기업을 공격적으로 인수하며 미사일 방어–전자전–사이버전으로 이어지는 ‘보이지 않는 방어 라인’을 구축한다. 이 회사의 기술 지도는 한 가지 결론으로 모인다. '본다, 막는다, 혼란시킨다'라는 일관된 방어 철학이다.
방어의 속도를 더 끌어올리기 위해 레이시온은 시선을 우주로 확장한다. 미사일을 요격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건 ‘얼마나 빨리 발견하느냐’이기 때문이다. 발사 후 수십 초 안에 궤도를 잡기 위해선 지상 레이더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레이시온은 정찰 위성과 조기경보 위성, 미사일 추적 위성을 연결해 탐지–식별–요격–재교란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을 통합하려 하고 있다. 미래 전장은 더 빠르고, 더 먼 거리에서, 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벌어질 것이며, 방어 기술의 무게중심은 우주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레이시온은 그 변화의 한가운데를 선점하고 있다.
이 기술의 가치는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다시 증명됐다. 러시아의 미사일, 드론, 순항탄도 혼합 공격이 이어지자 가장 먼저 호출된 것이 미사일 방어 체계였다.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러시아 공격을 막아낸 영상이 전 세계 언론을 타고 흘러가면서, 패트리엇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다.
특히 드론과 순항미사일 같은 저고도·저속 위협은 패트리엇 혼자 막기 어렵다는 약점도 있었지만, 레이더 통합 능력과 지휘 체계 덕분에 여러 방어 시스템을 묶어 운용할 수 있다는 강점이 부각된 순간이기도 하다. 전쟁이 바뀌었는데, 레이시온의 전략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공격보다 방어가 중요하고, 공격이 빨라질수록 방어는 더 영리해져야 한다는 신념은 현실에서 유효했다.
한국과 레이시온의 관계 역시 이 연장선에 놓인다. 한국은 미사일 위협이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몇 안 되는 국가다. 그래서 미국과의 미사일 방어 협력, 패트리엇 배치, 한국형 미사일 방어(KAMD) 체계 논의 과정에서 레이시온 기술은 늘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한국과 레이시온의 관계는 이론적 파트너십이 아니라 실제 계약으로 이어져 있다. 한국은 2000년대 중반부터 패트리엇(Patriot) 미사일 체계를 단계적으로 도입했다. 한국 정부는 2008년 레이시온과 패트리엇 요격 체계 업그레이드 계약을 체결했고, 2015년에는 약 7억 6천만 달러 규모의 직도입 계약을 통해 패트리엇 성능 개량 사업을 추진했다. 이후 레이더·교전통제소·지휘통신 장비도 순차적으로 현대화하면서 한국군의 미사일 방어 체계를 레이시온 기반으로 고도화했다. 한국형 미사일 방어망(KAMD) 논의와 실전 체계 구축 과정에서 레이시온은 장비 공급자이자 기술 파트너로 역할해 왔다.
결국 레이시온은 방패 하나로 100년을 버틴 기업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방패로 전장을 지배하려는 기업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방산 산업을 이끄는 록히드마틴, 보잉, 노스럽그루먼, 제너럴 다이내믹스, 레이시온은 각기 다른 분야에서 첨단 기술을 선도하며, 전 세계 군사력을 지탱하는 주요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은 하늘을 지배하는 전투기부터 미사일 방어 시스템, 우주 방위 시스템까지, 미래 전쟁의 양상을 바꾸는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들의 혁신적인 기술은 단순히 군사적 우위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방위 시장의 기준을 설정하며, 각국의 국방 전략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미국 방산 기업들도 기술적 도전과 비용 문제, 국제적 정치라는 현안에 직면해 있다. F-35 전투기와 같은 대형 프로젝트에서의 비용 초과와 생산 지연, 미사일 방어 시스템의 기술 혁신 등은 앞으로 이들 기업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 방위, 극초음속 미사일, 디지털 전쟁의 기술 발전을 통해, 미국 방산 산업은 여전히 세계 방위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 방산이 성공하려면 국내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국 방산 기업들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자체 개발을 통해 기술적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향후 한국 방산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미래의 방산 산업은 기술 혁신과 국제 협력을 통해, 디지털 전쟁, 우주 방위, 극초음속 무기와 같은 차세대 전투 시스템을 중심으로 발전할 것이다. 미국 방산 산업은 여전히 글로벌 방위의 핵심적인 축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한국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들의 방산 산업이 이와 경쟁하거나 협력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한국 방산도 미국 기업의 선례를 잘 고려해서, 부디 현명한 방향으로 발전을 도모했으면 좋겠다.
<참고문헌>
국방부, 국방백서(공식 페이지)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제87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 결과
KOTRA, 2024년 미국 방산시장 동향
ETRI, 국방기술 백서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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