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에 기존 글이 포함이 안되어서.. 부득이하게 다시 올렸습니다. 너른 아량 부탁드려요 :)
방위산업은 특이한 세계다. ‘시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모든 것이 정부의 손 안에서 움직인다. 무기를 만들고 사는 주체가 국가 하나뿐이니 경쟁과 효율이 작동하기 어렵다. 기업은 고객을 설득하는 대신 정부의 눈치를 보고, 정부는 통제와 지원 사이에서 늘 줄타기를 한다. 이 두 존재가 만들어내는 긴장과 의존의 관계는 다른 어떤 산업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의 방산업은 특히 정부 중심으로 짜인 구조다. 정부는 방위산업을 ‘국가 안보의 근간이자 미래 먹거리’로 규정하며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다. 동시에 방산비리, 납품 비리, 로비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를 ‘폐쇄적 구조의 필연적 결과’라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산업이 무너진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든, 정부와 방산업체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임은 분명하다.
이 둘의 관계는 한마디로 ‘기묘한 동거’다. 서로에게 의존하면서도 끊임없이 불신한다. 정부는 기업이 국가 안보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기를 바라고, 기업은 정부가 정책과 예산으로 발목을 잡지 않기를 원한다. 그러나 둘 다 상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정부가 없다면 방산업체는 주문을 잃고, 기업이 없다면 정부는 전력을 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관계를 충분히 들여다보지 않는다. ‘국방’이라는 단어는 일종의 면죄부처럼 작동한다. 예산 낭비나 구조적 문제조차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는 말 한마디에 덮이곤 한다. 하지만 국가 안보가 곧 공공의 돈으로 유지되는 산업이라면, 그 관계의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국민 모두의 권리이자 의무다.
그래서 우리는 정부와 방산업체의 기묘한 관계를 탐색해야 한다. 무기를 소요하고, 구매하고, 생산하는 소위 국방획득체계가 어떻게 짜여 있는지, 왜 정부가 방산에 깊숙이 개입하는지, 정부와 기업이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 밀착이 만들어내는 문제는 무엇인지 하나씩 짚어봐야 한다. 또 외국은 어떻게 이 복잡한 동거를 관리하는지 살펴보면 한국 정부와 방산업체의 바람직한 관계를 모색할 수 있을 터다.
우리가 ‘방산’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흔히 떠올리는 건 전투기나 탱크, 혹은 총기다. 하지만 그 거대한 철덩이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수십 개 부처와 수천 개 기업, 그리고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히 ‘정부가 무기를 사고, 기업이 납품한다’는 구조 같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관료적인 절차 속에서 움직인다. 바로 그 과정을 총칭해 국방획득체계(Defense Acquisition System) 라고 부른다. 이 체계 와 관련해선 세미나 형태로 글을 하나 정리한 적도 있다(https://brunch.co.kr/@highstem/347).
국방획득체계란 간단히 말해, 국가가 군이 필요로 하는 무기와 장비를 어떻게 기획하고, 연구·개발하고, 구매하고, 운용하고, 폐기하는지를 정리한 일련의 과정이다. 한국에서는 이 시스템의 중심에 방위사업청(DAPA) 이 있다.
2006년, 국방부 산하 조달 기능을 분리·독립시켜 투명성과 전문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출범했다. 이전에는 국방부, 합참, 각 군, 국방과학연구소(ADD) 등 여러 기관이 얽혀 있었는데, 서로 다른 조직의 이해가 충돌하며 예산 낭비와 책임 공백이 반복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만들어진 게 방위사업청이었다.
하지만 제도가 바뀐다고 본질이 바뀌진 않았다. 방위사업청은 여전히 국방부의 정책 방향에 종속돼 있고, 각 군의 ‘요구도’와 기획재정부의 ‘예산 심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 즉, 방위사업청이 아무리 전문성을 내세워도 결국 돈줄을 쥔 정부와, 실수요자인 군의 입김을 피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한국의 국방획득체계는 구조적으로 ‘정치화’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안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공군이 새로운 전투기를 도입하고 싶다고 하면, 먼저 군 내부에서 ‘소요 제기’가 이루어진다. “현재의 전력으로는 북한의 신형 전투기에 대응이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합참을 통해 국방부로 보고된다. 국방부는 이 요구를 바탕으로 예산안을 작성하고, 방위사업청은 해당 무기의 기술적·경제적 타당성을 검토한다. 이후 국회에서 예산이 확정되면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된다. 탐색개발, 체계개발, 시험평가, 양산, 배치, 운용, 폐기까지—이 모든 단계가 ‘획득체계’의 일부다.
이 과정에는 수많은 결재 라인이 있다. 사업 하나를 승인받기 위해 군 장성, 국방부 관료, 방위사업청 심의위원회,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 최소 열 곳 이상의 기관을 거친다. 절차가 복잡한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크기 때문이다. 한 사업의 규모가 수천억 원에서 조 단위로 올라가면, 그만큼 이해관계자도 많아지고, 책임 회피의 가능성도 커진다. 결국 복잡성은 투명성을 위한 장치이자 동시에 불투명성의 근거가 된다.
획득체계의 또 다른 특징은 ‘국산화’ 중심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외국산 무기를 단순히 구매하기보다 가능한 한 국내 기업을 통해 개발하려 한다. 이것이 ‘자주국방’의 핵심 논리다. 하지만 그만큼 정부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연구개발비의 대부분이 국비로 지원되고, 기술 이전 여부나 수출 허가는 모두 정부가 결정한다. 시장에서의 경쟁 대신 ‘정책 판단’이 기술 개발의 방향을 결정하는 구조다.
이런 구조는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가진다. 장점은 안정성이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예산을 투입하니 기업은 장기적인 연구개발이 가능하다. 반면 단점은 비효율이다. 정부가 ‘수요자이자 투자자이자 심판자’ 역할을 동시에 하다 보니, 책임 소재가 모호해지고 혁신이 더디다. 한마디로, 정부가 강력한 ‘구매자’이지만 동시에 ‘시장’의 일부가 되어버린 셈이다.
국방획득체계의 문제는 결국 투명성과 효율성의 균형에 달려 있다. 방위산업은 그 어떤 산업보다 국가안보와 직결돼 있기 때문에, ‘시장에 맡기자’는 단순한 해결책이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가 모든 걸 통제하면 기업은 창의성을 잃고, 예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 미묘한 균형점—그것이 바로 국방획득체계가 수십 년째 개혁과 논란을 반복하는 이유다.
사실 획득체계는 단순히 무기 조달의 틀이 아니라 ‘권력의 지도’이기도 하다. 어떤 사업에 돈이 투입되고, 어떤 기업이 선정되는지는 정치적 힘의 흐름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그래서 방산은 경제 기사만큼이나 정치 기사로 자주 등장한다. 전투기 선정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 해군 함정 설계가 특정 기업의 로비로 변경됐다는 논란—이런 뉴스들은 모두 국방획득체계의 ‘정치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이런 복잡한 시스템을 유지하려 할까? 효율보다는 ‘통제’에 무게를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방위산업은 태생부터 ‘시장’의 논리로만 굴러가기 어려운 산업이다. 다른 산업은 수요와 공급, 경쟁과 가격이 시장에서 결정되지만, 방산은 그 모든 과정을 정부가 설계한다. 정부가 고객이자 규제자이고, 동시에 투자자다. 이런 구조는 정부의 ‘과잉 개입’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방산이 유지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가장 큰 이유는 안보의 절대성이다. 무기 체계는 시장에서 실패했다고 교체할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 한번 전력으로 편입되면 수십 년간 그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한 번의 결함은 수백 명의 생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가 그 위험을 민간에 전가할 수 없는 이유다. 민간 기업은 이윤을 위해 움직이지만, 국가는 생존을 위해 움직인다. 그 출발점이 다르다.
기술의 전략성도 중요한 요소다. 방산 기술은 민간 기술과 달리 자유롭게 이전하거나 판매할 수 없다. 모든 기술은 ‘군사 기밀’이자 ‘국가 전략 자산’으로 분류된다. 항공기, 레이더, 유도무기, 인공지능 기반 무기체계 같은 분야는 단순한 제조 기술을 넘어, 국가의 외교적 입지와 얽혀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방산기업을 단순한 생산업체가 아니라 ‘국가 안보 파트너’로 본다. 기술이 외부로 유출되거나 외국 기업에 종속되는 순간, 그 나라는 안보의 주권을 잃는다.
산업 보호와 육성도 정부 개입의 명분이 된다. 방위산업은 고도의 기술 집약적 산업이다. 개발비는 막대하지만 시장 규모는 제한적이다. 민간이 감당하기엔 위험이 크고, 수익은 불확실하다. 이런 산업이 살아남으려면 정부의 장기적 지원이 필수다. 국방 R&D 예산은 일종의 ‘산업적 투자금’으로 기능한다. 한국의 경우 방산 연구개발비의 약 90% 이상이 국비로 지원된다. 기업 입장에선 정부가 ‘최대 주주’인 셈이다.
수출 통제와 외교적 변수도 중요하다. 방산은 국제 정치의 그림자 속에서 움직인다.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나도, 정부의 승인 없이는 총 한 자루도 해외로 나갈 수 없다. 한국이 K9 자주포나 FA-50 경공격기를 수출할 때마다 대통령이나 국방장관이 직접 세일즈에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기 수출은 단순한 상거래가 아니라 외교의 연장선이다. 수입국과의 군사 협력, 동맹, 제재, 인권 문제 등 수많은 국제적 변수가 얽혀 있기 때문에 정부가 관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정부의 개입은 방산의 존재 조건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그 ‘개입의 방식’이다. 정부가 언제나 전략적 조력자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시장의 논리를 완전히 차단하고, 때로는 정치적 판단으로 기술 개발의 방향을 바꾼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형 전투기(KF-21) 개발이다. 수십 년간 논의 끝에 겨우 착수된 사업이었지만, 사업 추진 과정에서 정권마다 방향이 달라졌다. 국산화율을 얼마나 높일지, 어떤 부품을 외국산으로 도입할지조차 정치적 논쟁이 됐다.
이런 현상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1961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퇴임 연설에서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영향력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정부가 방산업체에 의존하면서, 그 의존이 산업과 정치를 얽히게 만든다는 경고였다. 그 말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전쟁은 사라져도 군수품은 남는다. 정부의 개입은 안보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산업은 안보의 이름으로 보호받는다.
한국의 경우, 그 경계는 더 모호하다. 산업 규모는 작지만, 정부의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방산업체는 정부 사업에 선정되는 순간 생존이 결정된다. 반대로 한 번 밀리면 수년간의 연구가 사라진다. 기업은 정부의 ‘정책 방향’을 분석하고, ‘관료의 언어’를 해석하는 데 에너지를 쓴다. 기술보다 행정이 우선되는 구조다. 결국 정부 개입은 산업을 보호하면서도, 동시에 산업의 자율성을 갉아먹는 양날의 칼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개입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다. 책임의 무게다. 방산에서의 실패는 단순한 사업 실패가 아니라 국가 실패로 기록된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만큼 정부는 모든 방산 사업의 ‘최종 보증인’이다. 그래서 정부는 개입하고, 기업은 기대하고, 국민은 그 결과를 신뢰할 수밖에 없다.
방위산업은 흔히 ‘국가 안보의 보이지 않는 근육’이라 불린다. 표면적으로는 군이 나라를 지키지만, 그 뒤에서 그 무기를 설계하고 생산하고 수리하는 건 민간 기업이다. 그리고 그 민간 기업을 움직이는 건 정부의 예산이다. 정부와 방산업체의 관계가 단순한 발주자와 납품자의 관계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존재는 서로에게 산소 같은 존재다.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기능할 수 없다.
첫 번째 이유는 안보의 연속성 때문이다. 전쟁은 끊겼다 다시 시작될 수 있지만, 무기 체계는 단절되면 복구가 어렵다. 한 번 끊긴 생산 라인을 다시 세우는 데는 수년이 걸리고, 그동안의 기술 인력은 흩어진다. 정부가 특정 기업과 장기 계약을 유지하는 건 이런 ‘공백’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방산은 일회성 거래가 아니라, 장기적 신뢰를 전제로 한 협력 구조로 운영된다. 정부가 업체를 ‘선택’하는 순간, 사실상 수십 년짜리 동반 관계가 형성된다.
예를 들어, 육군의 K9 자주포를 생산한 한화는 단순히 무기를 납품하는 기업이 아니다. 납품 이후에도 군의 유지보수, 성능 개량, 탄약 공급까지 모두 맡는다. 군이 한화의 기술 인력과 부품 공급망에 의존하는 만큼, 한화도 정부의 안정적 예산 배정에 의존한다. 이런 구조는 불가피하게 ‘긴밀한 동반자 관계’를 만든다.
두 번째 이유는 공동 연구개발의 특성이다. 방산 기술은 정부의 예산으로 시작해 기업의 기술력으로 완성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위험은 정부가 부담한다. 예를 들어 전투기 개발 사업의 경우, 탐색개발 단계에서만 수천억 원이 투입된다. 만약 사업이 실패하더라도 그 손실은 기업이 아닌 정부의 몫이다. 이런 시스템은 기업의 위험을 줄여주는 대신, 정부가 개발 방향에 개입할 명분을 만들어준다. 결국 ‘정부의 돈’으로 시작한 연구는 ‘정부의 의도’로 완성된다.
세 번째 이유는 기술 보안과 기밀 유지다. 방산업체가 다루는 기술은 단순한 산업 자산이 아니라 국가 기밀이다. 전자식 유도 장치, 암호화 통신망, 레이더 알고리즘 같은 정보는 군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 때문에 정부는 업체의 연구 환경과 인력 운용까지 면밀히 관리한다. 직원 한 명이 해외 학회에 참석할 때도 정부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 기업 입장에서는 불편하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불가피하다. 방산업체의 기술이 곧 국가 안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밀 중심의 협력’은 해외 수출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FA-50 경공격기 수출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제작한 이 기종은 한국 공군과 공동 개발한 모델로, 정부가 수출국과의 협상에 직접 나선다. 단순히 가격을 흥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국가 간 군사협정을 포함한 포괄적 계약이다. 정부가 외교적 신뢰를 제공하고, 기업이 기술력을 제공하는 구조다. 그래서 FA-50 수출의 성공은 늘 “정부와 산업의 합작품”이라 불린다.
네 번째 이유는 산업 생태계의 보호다. 방산기업은 일반 제조업처럼 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쟁할 수 없다. 수요가 제한돼 있고, 진입장벽이 높으며, 제품 하나를 개발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린다. 이런 산업이 살아남으려면 정부가 ‘보증인’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는 안정적인 구매를 통해 기업의 연구개발비를 보전하고, 기업은 그 신뢰를 기반으로 기술을 축적한다. 이런 구조는 겉으로 보기엔 비효율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술 자립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정부와 방산업체의 관계는 ‘불가피한 공생’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공생은 늘 건강한 형태로 유지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깊게 기대면, 관계는 안정이 아니라 경직으로 변한다. 정부가 특정 기업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경쟁이 사라지고, 기업이 정부의 예산에 안주하면 혁신이 멈춘다. 실제로 방산업계에서는 “사업을 따내는 기술보다, 공무원을 설득하는 기술이 더 중요하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온다.
그럼에도 정부와 기업은 이 관계를 끊을 수 없다. 안보는 한 번의 실패도 용납하지 않는 영역이고, 정부는 그 무게를 기업과 나눠 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기업도 정부가 만든 제도와 시장의 울타리 안에서만 생존할 수 있다. 둘 다 서로의 약점을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쉽게 멀어지지 못한다.
모든 관계는 가까워질수록 위험해진다. 방위산업에서 그 말은 거의 물리 법칙처럼 작동한다. 정부와 기업이 긴밀히 협력하는 건 불가피한 일이지만, 그 거리가 너무 좁혀지면 신뢰는 곧 비밀이 되고, 비밀은 부패의 온상이 된다. “국가 안보를 위해 공개할 수 없다”는 말은 곧 “검증할 수 없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방산은 태생부터 비리의 그림자를 안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는 산업’이란 명분 아래 막대한 예산이 움직이고, 그 돈이 소수의 기업과 인력에게 집중된다. 이런 환경에서 투명성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계약 과정은 복잡하고, 평가 기준은 모호하며, 외부 감사는 제한적이다. 실제로 방위사업청이 출범한 이후에도 크고 작은 비리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사업 입찰 담합, 허위 납품, 리베이트, 내부 정보 유출—모두 익숙한 뉴스 제목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 탓으로 돌리는 건 표면적인 해석일 뿐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구조에 있다. 방산업체는 정부의 사업을 따내야만 생존할 수 있고, 정부는 기술을 가진 기업 몇 곳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시장이 좁고, 대체 가능한 경쟁자가 적으니, 서로의 약점을 감추는 일이 곧 ‘공존의 기술’이 된다. 누가 먼저 잘못을 폭로하면 둘 다 다친다. 그래서 방산은 늘 ‘조용히’ 문제를 해결한다.
더 큰 문제는 책임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정책적 실패를 기업의 기술력 부족으로 돌리고, 기업은 정부의 과도한 간섭을 탓한다. 방산 사업이 실패해도,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는 늘 불분명하다. 예산이 초과돼도, 일정이 늦어져도, 성능이 목표에 미치지 못해도, 책임은 어디론가 흩어진다. 그 틈을 타는 게 바로 비리다. 누구의 잘못인지 모르는 사업만큼 안전한 부패의 땅은 없다.
또 다른 부작용은 비효율이다. 정부가 ‘안정’을 중시하는 만큼, 방산산업은 자연스럽게 ‘관성’을 따른다. 새로운 기술보다는 검증된 기술이, 새로운 시도보다는 기존 관행이 선호된다. 혁신은 위험이고, 위험은 곧 예산 낭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기술 발전은 느려지고,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은 떨어진다.
한국은 첨단 무기 개발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정작 핵심 부품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국산화를 추진하면서도 외산 부품이 들어가고, 그 사실은 ‘기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되지 않는다. 기술 자립을 외치면서도 정부와 기업 모두 ‘성공 사례’를 만들기에 급급하다. 방산 산업이 과학보다 행정으로 움직이는 이유다.
또 하나의 부작용은 ‘관료–기업 회전문’이다. 방위사업청, 국방부, 군 출신 인사들이 퇴직 후 방산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는 일은 이미 일상이다. 정부가 관리·감독해야 할 기업의 임원으로 전직하는 구조, 즉 ‘감시자와 피감시자의 경계가 사라진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런 문화는 자연스럽게 유착을 낳는다. 서로가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너무 잘 아는 탓이다.
이런 문제들이 반복돼도, 구조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방산은 다른 산업과 달리 ‘국가 안보’라는 이름의 성역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회도, 감사원도, 언론도 그 영역을 완전히 들여다볼 수 없다. 국민이 내는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어떤 기업이 어떤 이유로 계약을 따냈는지, 그것이 합리적 결정이었는지조차 명확히 알기 어렵다.
결국 정부와 기업의 밀착은 신뢰를 강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국민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방산은 안보를 지키는 산업이지만, 동시에 국가 시스템의 투명성을 시험하는 산업이기도 하다. 그 시험에서 반복적으로 낙제점을 받는다면, 문제는 기업이 아니라 제도다.
외국은 어떨까. 방산은 어느 나라에서나 ‘권력의 중심’에 놓여 있다. 정부와 산업이 맞닿는 지점, 예산과 기술이 교차하는 곳, 그리고 군사력이라는 국가 권위의 상징이 만들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방산 구조가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전 세계 어디를 봐도 비슷한 긴장과 의존이 존재한다. 다만 각국은 그 불가피한 관계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서 차이를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이다. 미국의 방산 구조를 이해하려면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라는 단어부터 짚어야 한다. 이 말은 1961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퇴임 연설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는 “군과 산업이 지나치게 결합하면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흥미로운 건 그가 전쟁 영웅 출신의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다. 전쟁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그 전쟁을 가능하게 만든 산업의 권력을 경계했던 것이다.
미국의 방산산업은 정부와 기업의 유착을 제도화한 대표적 모델이다. 국방부와 의회, 그리고 대형 방산기업이 하나의 삼각 구조를 이루고 있다. 정부는 예산을 집행하고, 의회는 지역구 일자리를 이유로 방산 예산을 늘리고, 기업은 그 돈으로 다시 로비를 한다. 록히드마틴, 보잉, 레이시온, 노스럽그루먼 같은 기업은 한 나라의 국방산업이라기보다 ‘글로벌 정치 세력’에 가깝다.
하지만 미국은 그 위험을 제어하기 위해 감시 시스템을 제도화했다. 회계 감사, 의회 청문회, 언론 공개, 경쟁 입찰 등이 법적으로 의무화돼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FMS(Foreign Military Sales) 제도는 해외 무기 수출 시 국방부가 직접 계약 주체로 나서는 구조인데, 이때 모든 거래 내역이 의회에 보고된다. 계약 금액, 수출 상대국, 납기, 성능—all 투명하게 기록된다. 한국처럼 ‘기밀’로 묶이지 않는다. 즉, 밀착은 존재하지만 통제도 함께 존재한다.
다음은 유럽이다. 유럽의 방산 구조는 미국과 달리 ‘협력’의 색채가 강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이 군비 경쟁 대신 공동 방위력을 구축하기 위해 만든 모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에어버스(Airbus)와 MBDA 같은 다국적 방산 컨소시엄이다. 에어버스는 프랑스, 독일, 스페인, 영국이 공동으로 투자한 항공·방산기업으로, 각국 정부가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이 구조는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갖는다. 장점은 ‘분담’이다. 한 나라가 감당하기 어려운 개발비를 여러 나라가 나누어 부담한다. 단점은 ‘합의의 어려움’이다. 예산과 기술, 납품 물량을 두고 각국의 이해가 충돌한다. 예를 들어, 유럽의 차세대 전투기 개발 사업(FCAS)은 프랑스와 독일 간의 기술 우위 다툼으로 수년째 지연되고 있다. 결국 유럽은 협력으로 효율을 얻었지만, 정치로 속도를 잃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이 나라는 정부, 군, 기업이 거의 한 몸처럼 움직인다. 작은 국토와 끊임없는 분쟁 속에서, 방산은 생존의 문제였다. 특이한 점은 ‘군-스타트업 생태계’의 결합이다. 이스라엘의 젊은 기술 인력들은 대부분 군 복무 시절부터 정보전, 사이버보안, 무인기 개발 같은 첨단 분야를 경험한다. 제대한 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하고, 정부는 이를 다시 군에 납품받는다. 한마디로 군이 스타트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스라엘은 ‘정부 주도형 방산’의 모범으로 평가받는다. 국방부 산하에 기술혁신청(SIBAT)이 있어, 민간 기술을 군사화하거나 군 기술을 민간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정부와 기업의 관계는 한국처럼 수직적이지 않고, 훨씬 순환적이다. 군에서 배운 기술이 민간으로 흘러가고, 민간의 기술이 다시 군으로 돌아온다. 덕분에 이스라엘은 인구 900만 명의 나라임에도 전 세계 10위권 방산 수출국으로 자리 잡았다.
이 세 나라의 사례는 정부와 기업의 관계를 ‘끊을 수 없는 필연’으로 인정하되, 그 필연을 어떻게 제도화하느냐의 차이를 보여준다. 미국은 감시를 제도화했고, 유럽은 협력을 제도화했으며, 이스라엘은 순환을 제도화했다. 한국은 아직 그 어느 쪽에도 서 있지 않다. 밀착은 존재하지만 감시는 약하고, 협력은 강조하지만 조율은 부족하며, 순환은 시도조차 어렵다.
결국 문제는 ‘가까운 거리’ 자체가 아니라, 그 거리를 관리하는 방식이다. 정부와 기업은 함께 움직여야 하지만, 동시에 서로를 감시해야 한다. 안보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모든 걸 덮어버릴 때, 그 관계는 동맹이 아니라 종속이 된다.
한국의 방위산업은 미국식 ‘군산복합체’를 그대로 복제하지 않았지만, 그 닮은꼴을 피하지도 못했다. 다만 한국의 구조는 훨씬 좁고, 훨씬 밀착되어 있다. 수많은 중소기업이 참여하는 척 하지만, 실제 시장은 몇몇 대기업이 주도한다. 국방 예산의 대부분이 네다섯 기업의 손을 거쳐 간다. 한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LIG넥스원, 현대로템 — 이름만 들어도 떠오르는 기업들이다.
이들은 단순히 무기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정부 정책의 방향에 따라 성장하고, 외교 전략의 흐름에 따라 매출이 바뀐다. 한화는 자주포, 미사일, 탄약 같은 육상 전력의 핵심 공급자이고, KAI는 항공기 개발과 수출의 주역이다. LIG넥스원은 유도무기와 전자전 분야, 현대로템은 전차와 장갑차를 맡고 있다. 각자 전문 분야가 있지만, 공통점이 있다. 모두 정부의 주문으로 성장했고, 정부의 의사로 존속한다는 점이다.
이 구조는 정부 입장에서는 효율적이다. 신뢰할 수 있는 몇몇 대기업과 협력하면 조달 안정성이 높아진다. 기업 입장에서도 안정적인 수익원이 생긴다. 하지만 산업 전체로 보면 위험하다. 시장이 독점화되고, 기술이 특정 기업에 집중된다. 정부는 ‘협력’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의존’을 심화시킨다.
최근 몇 년 사이 방산 수출이 급격히 늘면서, 이런 관계는 한층 더 복잡해졌다. 한국은 K-9 자주포, 천궁 미사일, FA-50 전투기 등을 잇달아 수출하며 세계 방산 시장의 신흥 강자로 부상했다. 그러나 그 수출의 주체는 기업이 아니라 정부였다. 대통령이 직접 정상외교의 의제로 무기 수출을 올리고,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이 외교부와 함께 세일즈에 나섰다. 계약의 체결은 기업의 몫이지만, 협상의 무대는 철저히 ‘국가 대 국가’였다.
즉, 한국의 방산 수출은 ‘정부 주도형 수출’이다. 기업은 기술을 담당하고, 정부는 신뢰를 담당한다. 이 구조는 단기적으로는 성공적이다. 해외 수출이 늘고, 기술력이 평가받는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자생력을 약화시킨다. 정부의 지원 없이는 해외 수주가 어렵고, 정부의 외교적 결정 하나에 매출이 좌우된다. 기업의 경쟁력보다 정부의 외교력이 매출을 결정하는 구조 — 이것이 한국형 군산복합체의 현실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정책과 산업의 동조화’다. 정부는 방산을 ‘수출 산업’으로 육성하려 한다. 기업은 그 방향에 맞춰 ‘국산화’와 ‘첨단화’를 내세운다. 문제는 이런 구호가 실제 현장에서 기술 혁신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사업 보고서와 국회 브리핑용 슬로건으로 소비된다는 점이다. 예산은 기술보다 제도에 묶이고, 기술은 혁신보다 안정에 머문다.
그 사이에서 방산 기업의 전략은 점점 ‘정치 친화적’으로 변했다. 어떤 기술을 개발할지보다, 어떤 부처의 예산이 늘어날지를 먼저 분석한다. 방산 산업의 경쟁력이 기술보다 ‘행정 감각’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다. 이런 현상은 특히 국내 사업이 줄고 수출 의존도가 높아지는 요즘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한화의 방산 계열사들은 국내보다 해외 프로젝트에 무게를 두고 있다. 폴란드와의 K-9, 천무 수출 계약은 한국 방산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히지만, 그만큼 정부와 기업의 협상력이 한 몸처럼 움직였다. 계약을 주도한 것은 외교 라인이었고, 기업은 그 외교를 ‘사업화’했다. 성공의 배경에 정부가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KAI 역시 마찬가지다. FA-50은 KAI가 만든 전투기이지만, 실제 수출은 정부가 협상하고 군이 지원한다. 국산 기술이라 자부하지만, 원천 기술의 상당 부분은 해외 파트너(록히드마틴)와의 공동 개발에서 비롯됐다. ‘국산화’라는 단어는 절반의 진실이다. 방산은 애초에 완전한 독립이 불가능한 산업이다. 정부와 외국 정부,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이 얽혀 있는 복합적인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는 효율을 보장하지만, 동시에 산업의 자율성을 제한한다. 방산 기업은 언제나 ‘정권의 방향’을 살핀다. 특정 정부가 수출을 적극 추진하면 실적이 오르고, 반대로 규제와 투명성을 강화하면 성장이 더뎌진다. 산업이 시장이 아니라 정치의 사이클을 따른다.
그래서 한국의 방산을 가리켜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 산업은 정부의 산업이다.” 실제로 방산업체의 임원들은 정부 출신 인사가 다수다. 각 부처와의 인맥이 곧 사업의 생명선이다. 정부가 기업의 주주가 아니어도, 실질적인 지배구조는 이미 국가의 영역 안에 들어와 있다.
그럼에도 이 산업은 커지고 있다. 정부와 기업의 공생은 여전히 작동한다. 문제는 방향이다. 이 관계가 과연 건강한 공생인지, 아니면 서로의 의존 위에 세워진 불안정한 평형인지, 그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
정부와 방산업체의 관계를 단절시킬 수는 없다. 그건 현실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 관계를 다르게 만들 수는 있다. 지금까지의 공생이 의존과 불신의 형태였다면, 앞으로는 신뢰와 투명성의 형태가 되어야 한다.
첫 번째 변화는 정부의 역할 재정의에서 시작된다. 정부는 통제자가 아니라 조력자여야 한다. 지금의 방위산업 정책은 정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조에 가깝다. 무엇을 만들지, 어떻게 만들지, 누구에게 맡길지를 정부가 정한다. 그 과정에서 기업의 창의성은 행정의 틀 안에 갇히고, 국방 기술은 혁신보다는 안전을 택한다. 이제 정부는 심판자가 아니라 촉진자로 바뀌어야 한다. 방산을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혁신의 생태계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투명성의 제도화다. 방산 비리가 반복되는 이유는 투명성이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안보상 이유로 공개할 수 없다”는 말은 필요할 때만 사용되어야 한다. 지금은 그 말이 너무 쉽게 쓰인다. 국방획득 과정, 사업 평가, 예산 집행 내역을 가능한 한 공개해야 한다. 기밀은 최소화하고, 국민의 감시를 제도화해야 한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산업이라면, 국민이 그것을 감시할 권리도 갖는다.
세 번째는 산학연 협력의 확대다. 한국의 방산 연구개발은 정부와 대기업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 틀 안에서는 혁신이 태어나기 어렵다. 민간 스타트업, 연구기관, 대학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스라엘의 모델처럼 군이 기술의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 되는 구조, 즉 민간에서 출발한 기술이 군으로 확산되고 다시 민간으로 순환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처럼 정부가 기술의 흐름을 소유하려 들면, 결국 산업 전체가 경직된다.
네 번째는 방산의 ESG화, 즉 윤리적 산업으로의 전환이다. 방산이 가진 이미지는 여전히 ‘죽음의 산업’이다. 하지만 시대는 그 이미지를 바꾸기를 요구한다. 지속가능성과 평화, 환경, 윤리 같은 가치가 산업의 존속 조건이 되어가고 있다. 무기라는 제품의 특성상 완전한 평화산업으로 변할 수는 없겠지만,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관리되느냐는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안보는 파괴의 논리가 아니라 보호의 논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사람과 기술, 산업이 함께 살아가는 구조 — 그것이 방산의 새로운 사회적 역할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뢰를 기술화해야 한다. 지금의 방산 시스템은 사람에 의한 신뢰에 의존한다. 관료와 기업인, 군 출신 인사 간의 네트워크가 신뢰의 기반이다. 하지만 그 신뢰는 언제나 사라질 위험을 안고 있다. 앞으로는 데이터와 시스템, 기록으로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계약의 모든 단계가 자동으로 기록되고, 수정이 불가능하며, 감사가 가능해야 한다. 이건 감시가 아니라, 신뢰를 증명하는 기술이다. 블록체인 기반 조달 관리, 인공지능 예산 분석, 실시간 성능 검증 시스템 같은 도구들은 이미 세계 각국에서 실험되고 있다. 신뢰를 감정이 아닌 구조로 만드는 것 — 그것이 방산의 미래다.
결국 중요한 건 ‘거리’가 아니다. 정부와 기업이 얼마나 가까운가, 혹은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 사이에 무엇이 놓여 있느냐의 문제다. 그것이 불신이라면 부패가 자라고, 그것이 신뢰라면 산업이 성장한다. 신뢰는 추상적인 단어 같지만, 사실은 가장 현실적인 안전장치다. 총보다 강하고, 돈보다 오래가는 힘이다.
방위산업은 언제나 국가의 이름으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그 이름 뒤에는 언제나 시장이 있었다. 수조 원의 예산이 움직이고, 수많은 기업이 경쟁하며, 사람들의 일자리가 생긴다. 총알과 전투기, 레이더와 인공지능 무기까지—그 어떤 제품보다도 ‘국가’의 의지가 깊게 새겨진 상품이다. 그래서 방산은 산업이면서 동시에 공공의 장이다. 시장과 정부, 이익과 안보, 효율과 도덕이 맞부딪히는 그 교차점에 서 있다.
정부와 기업의 관계는 그 교차점에서 늘 흔들린다. 너무 멀면 산업이 무너지고, 너무 가까우면 신뢰가 무너진다. 그래서 방산은 ‘기묘한 동거’를 선택했다. 서로를 불신하면서도 서로 없이는 살 수 없는 관계. 정부는 기업의 손을 빌려 안보를 구현하고, 기업은 정부의 보호 안에서 기술을 발전시킨다. 하지만 그 관계가 불신 위에 세워져 있다면, 그것은 협력이 아니라 타협이다. 타협은 일시적인 평화를 주지만, 결국 부패로 향한다.
이제 그 구조를 바꿔야 한다. 방산을 폐쇄적 산업이 아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시장’으로 인식해야 한다. 시장이라면 감시가 가능해야 하고, 공공이라면 책임이 따라야 한다. 정부가 방산기업을 지원할 때 그것이 정책인지, 거래인지 구분되어야 한다. 기업이 정부의 예산으로 기술을 개발할 때, 그 기술이 누구의 것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안보라는 이름 아래 흐릿해진 경계를 다시 그어야 한다.
결국 방산의 미래는 신뢰의 문제로 귀결된다. 기술보다 제도, 제도보다 사람, 사람보다 관계가 중요하다. 정부가 기업을 통제하려 들지 않고, 기업이 정부를 이용하려 들지 않을 때 비로소 ‘동반자’라는 단어가 가능해진다. 그 신뢰 위에서야 투명성이 자라고, 투명성 위에서야 산업이 성숙한다.
안보는 총으로만 지켜지지 않는다. 신뢰가 없으면 총은 방어가 아니라 위협이 된다. 방산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무기’가 아니라 ‘안심’이다. 국민이 정부를, 정부가 산업을, 산업이 국민을 믿을 수 있는 구조. 그 선순환이 완성될 때 비로소 국방은 국가의 힘이 아니라 국민의 힘이 된다.
정부와 방산업체의 관계는 여전히 기묘하다. 하지만 그 기묘함이 더 이상 의심이 아닌 신뢰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병리 아닌 조화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다. 불신의 산업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신뢰의 산업으로 재구성할 것인가. 선택은 결국 정부와 기업에 달려있다.
<참고문헌>
방위사업청, 「국방획득체계 개요」, 2024.
국방부, 「2023~2027 국방중기계획」, 대한민국 국방부, 2023.
기획재정부, 「국가재정운용계획(2024~2028)」, 2024.국회예산정책처, 「방위력개선비 분석보고서」, 2023.산업연구원(KIET), 「한국 방위산업의 구조와 경쟁력 제고 방안」, 2022.한국국방연구원(KIDA), 「국방획득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