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일차
2017. 1. 10.
옆 텐트에서 게스트가 쏘아올리는 방귀소리에 잠에서 깼다. 복수하려고 고구마와 달걀을 먹고 있는데 다들 빠르게 휭 가버렸다.
점심메뉴는 탕수육이다. 찹쌀 탕수육 키트 레시피에서는 3단계가 끝이라고 하는데 난 아무래도 잘 만들 자신이 없다고 하니까 ㅅㅈㅎ은 자신의 정성이 들어간 제품이기에 너와 내가 함께하는 요리라며 잘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준다. 사실 고기를 사다가 반죽을 입혀서 불에 올리기만 하면 내가 더이상 할 일은 없다. '아 내가 요리를 하는구나' 라는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그런 제품이다. 위험하다. 2인분이라 너무 많았지만 혼자라서 어쩔 수 없다. 달달한 탕수육소스가 탐나서 조금 남겨놨다가 저녁에 닭가슴살 찍어먹으려했는데 ㅅㅈㅎ은 단호하게 버리라고 한다. 집에 가면 우리 형 만들어줘야겠다.
지난 번에 같이 알바를 하던 사람이 내가 고산 산다니까 부럽다며 자기는 제주 바다 중에 신창리 바다가 제일 이쁜 것 같다고 했었다. 그 얘길 들으니까 그 동네를 코앞에 두고 한 번도 안 가보면 바보가 될 것 같아서 꼭 가봐야겠다. 멀리서만 보던 풍력발전기를 가까이에서 보니 위압감이 상당해서 좀 겁이 나긴 했지만 햇볕이 드는 물빛이 보기 좋아서 금방 헤헤거리고 있다. 바닷바람인지 풍력발전기 바람인지 모를 놈이 머리채를 자꾸 흔들더니 머리끈을 끊고 튀었다.
내 산책길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항상 중간에 길이 끊긴다. 지도를 보는 특별한 나의 눈은 지도와 상관없는 신선한 길로 나를 이끈다. 지도 위에 나의 위치를 알려주는 빨간 점이 바다에 가있다. 눈 앞에 나타난 얕은 바다를 훌쩍 건너뛰어 다시 지도에 나오는 길로 올라왔다. 협재에 오신다는 ㅇㄷ형 전화를 받고선 김대건 신부님 기념관을 잠시 둘러본다. 형을 따라 빵냄새가 나는 카페에 들어갔다. 맥북과 표지부터 박사님이 쓰신 듯한 책이 카페 테이블에 올라왔지만 떠드느라 그저 촬영소품으로 전락했다.
집에 오자마자 운동을 간다. 5킬로 달리기를 하는 날인데 땀이 폴폴 난다. 오늘 사온 파프리카랑 닭가슴살을 함께 볶아먹었다. 닭가슴살이라는 척박한 땅에 파프리카라는 단비가 내리는 듯 하다.
내일은 알바 면접이다. 면접보다 시내에 나가 영화 볼 생각에 설렌다. 히히.
이러니까 되게 시골사람같은데 난 륙지에 가도 시골사람이라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