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일차
2017. 1. 11.
점심으로 볶음밥을 해먹었다. 9분 남았다. 설거지를 하고 감지않은 머리에 기름을 발랐다. 3분 남았다. 온풍기를 끄고 사진기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버스는 떠났다.
면접장소인 제주신라호텔까지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데 버스가 32분 뒤에 온단다. 망했다. 그 버스를 타도 면접에는 30분을 늦는다. 잠시 고민하다가 담당자한테 전화를 걸어 한탄을 하니 면접을 볼 수는 있을 거라고 오란다. 면접도 면접이지만 난 오늘 영화도 보고 버거도 먹어야 하기에 반드시 시내에 가야만한다.
근무지는 제주시에 있는 신라스테이인데 면접은 서귀포에 있는 호텔에서 본다. 정류장에서 내려 꽤 들어가서야 호텔 입구를 찾았다. 직원분들이 일렬로 서서 환영인사를 준비하는 걸 보니 대단한 건 모를 일이지만... 아마 돈 많은 사람이 오는가보다.
8층으로 올라가서 왔다고 전화를 하니까 바로 면접관 아저씨 앞에 데려다준다. 문 하나 열고 들어온 건데 바깥공기와는 달라서 괜히 긴장된다. 앞에 있는 면접관 아저씨가 '난 아주 좋은 사람이야' 라는 미소를 계속해서 보내시길래 '비록 30분을 늦게 왔지만 뛰어난 인재입니다' 라는 메시지를 담아 머리를 귀 뒤로 단정히 넘기며 웃었다.
왜 지원했느냐는 질문에 '빌어드실 요즘 알바몬에 뜨는 알바가 있어야 말이죠. 제주 단기알바 공고는 이거 하나 떠있어요 지금. 게다가 추운 날씨에 밖에서 하는 일을 하루하루 찾아 헤매느니 매우 따뜻할 것 같은 실내에서 사무보조 5일을 시켜주신다는데 완전 땡큐 아닌가요.' 라고 할 순 없어서 가장 최근에 했던 알바가 사무보조였기에 단기간에 적응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근데 이렇게만 말하면 덜 간절해보여서 공고를 올리신 일정에 딱 알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고 덧붙였다.
평소에 친구들과의 약속을 잘 지키냐길래 '잘 못 지킬 것 같아서 약속 자체를 잘 안 합니다.' 라고 할 순 없어서 가까운 친구 사이에서의 약속이 결국 그 사람의 책임감과 신뢰를 만든다고 생각한다며 입으로 꺼낸 약속은 꼭 지키려고 노력하고, 늦더라도 결국엔 지켰던 약속의 사례들을 풀어놨다. 면접장을 나서기 전엔 '사실 저는 면접경험이 없어서 이런 자리가 개인적으로 새로운 경험인데 약속된 시간보다 늦게 왔음에도 면접장에 들어올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라고 얘기했는데 나와서 생각해보니까 전형적인 을의 멘트라서 한숨이 나왔다. 될 것도 아닌데 면접을 보고나니까 됐으면 좋겠다. 이런 게 면접의 맛인가.
면접은 늦어놓고 <너의 이름은> 영화시간에는 딱 맞춰 들어갔다. 140석 중에 10석도 채우지 못한 상영관에서 영화를 봤다. 내용이야 둘째치고 스크린에 계속 나오는 정말 만화 같은 하늘에 입이 안 다물어진다. 사진찍고 싶다.
서귀포에 생겼다는 나인온스버거를 먹으러 갔다. 페메를 확인해보니 낙성대에 있는 ㅎㅅㅇ형한테 작년 이맘때 버거 먹으러 가겠다고 연락했었는데 1년 만에 버거를 입에 넣는다. 사진을 몇 장 찍어 ㅎㅅㅇ형한테 보내면서 올해는 진짜 가겠다고 다시 약속했다. 이렇게 써놓으면 분명히 갈 것 같다.
집에 와서 누웠더니 우리 형한테 카톡이 온다. 엄마가 자신에게 다이슨 청소기를 요구한다면서 신세 한탄을 하더니 넌 머리털 때문에 면접 떨어질 거라고 악담을 쏟아붓고 조용해졌다. 자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