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일차
2017. 1. 24.
일출을 보려고 기어 나왔는데 하늘의 안색을 보니 전혀 가망이 없어보인다. 그래도 눈 떴다고 딱히 할 건 없어서 바다 앞에 가만히 서서 빛이 어디에선가 삐져나오길 기다리다가... 그렇게 한 시간을 서있다가 돌아섰다. 아침으로 씨리얼 한 그릇 크게 한 사발 말아먹었다. 균형있는 영양을 위해 귀한 달걀을 두 개 먹고 싶은데 걸릴까봐 무서워서 스크램블을 했다. 빌어드실 양이 불어나서 세 개 같아 보인다.
천 원을 내며 위미에 떨궈주신다고 해서 차에 짐을 실었다. 게하에 짐을 맡겨두면서 물어보니까 오늘은 게스트가 얼마 없어 저녁식사가 없단다. '여기 저녁 맛있다고 해서 온 건데요.'라는 말을 나름대로 힘들게 입밖으로 꺼냈는데 스탭님은 웃음으로 무마하신다... 30분 정도 올레길을 따라 걷다가 세 달 전에 갔었던 카페에 들어가 카레우동을 부탁드렸다. 난로 옆에 붙어있던 고양이가 갑자기 밥상으로 뛰어올라오더니 내려갈 생각을 안 한다.
재작년에 인터뷰이로 만난 ㅈㄱ님이 탐라국으로 여행을 오셨다며 연락을 주셨다. 인터뷰 자리가 초면이었던 인터뷰이들은 특히 근황이 더욱더 궁금해지곤 하는데 그동안 명절마다 카톡으로는 한 번씩 찾아가겠다고 약속을 해놓고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약속을 빈 껍데기로 만들어버렸었던 나다... 그래도 이렇게 연락을 주시는 ㅈㄱ님께 고마움이 샘솟는 동시에 마주했던 두 시간이 좋은 기억이었다는 일종의 증명 같아서 뿌듯하기도 하다.
ㅈㄱ님이 천지연 폭포와 새섬을 둘러볼 동안 나는 그냥 나있는 산책길을 따라서 걸었다. '작가의 산책길'이라는 이름은 못 보고 중간에 있는 한 전시관에 들어가봤다. 통제구역이라고 써붙인 문에서 등장하신 아주머니는 이쪽저쪽 손을 휙휙 움직이시면서 작품설명을 하시다가 쉼표도 없이 바로 자식 자랑으로 넘어가신다. 이쯤이면 됐다 싶어 '아 저도 그런 효자가 되어야 할텐데요.'라며 간접 메시지를 보냈는데 꽤나 오랜만에 온 관람객인지 날 놓아줄 생각을 안 하셔서 울리지도 않는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대며 마침표를 대신 찍어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