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이유 #9

악연

by JA

그 아줌마는 다름 아닌 그 여주인이었다. 이렇게도 말도 안 되는 장소에서 이렇게도 말도 안 되는 사람을 만나다니. 이것을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불운이라고 해야 할지 분간이 안 갔다. 술집에서 봤던 흐트러진 모습과, 복장, 표정과는 달리 전형적인 어머님들의 복장과 표정, 그리고 그것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모습에 나는 그 여주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여기는 지연이가 있는 장소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여주인을 향해 다가섰다.


"저기요."

"네?"

"저 모르시겠어요?"

"누구신지.."


역시 나랑 마주하였던 그 시간에 이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긴 술집에서 손님도 아닌 여주인이 안 취해있다면 그게 더 이상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나저나 나는 지금 이 순간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날의 기억을 되살려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그 아버지랑 무슨관계였냐고, 여긴 왜 왔냐고 물어봐야 할지 아니면 한 명의 변호사로서 무슨 일로 이곳에 왔는지 물어봐야 하는지 판단이 안 섰다. 쉽게 입을 못 떼고 있는데 여주인이 말을 이어나갔다.


"저기.. 젊은 양반.. 나 좀 도와줄 수 있어요?"

"네?"

"내가 이 안에 있는 사람을 좀 만나야 하는데.. 이런 데는 처음인지라.. 좀 무서워서.."

"누구를 만나시려고.."

"그냥 좀 만날 사람이 있어.. 젊은 양반이 같이 좀 들어가 줬으면 좋겠늗네.."

"그러죠.."


어차피 이 사람은 나의 신분 따위는 관심도 없는 것이다. 그냥 나는 따라 들어가서 이 사람이 누굴 만나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들어가려는데 날 알아본 관계자가 금방 나간 사람이 왜 또 들어오냐는 표정으로 말을 걸려고 하길래 나는 황급히 눈을 찡끗거리며 모른 척해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다행히 신호는 통했고 나는 모르는 척 여주인 대신 접견신청서를 작성하고 신분증을 받아 면회신청을 하고 기다렸다. 나의 예상대로 이 여주인이 찾아온 사람은 지연이었다. 접견장에는 접견신청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신분을 밝히기로 했다.


"아주머니. 사실은 제가 지연이 변호사입니다."

"..."


꽤나 놀랜 모양이다.


"여기까지 찾아오신 거 보니까 지연이가 어떤 상황인지는 아실 테고, 저는 나라에서 지연이를 위해 선임해준 국선 변호사입니다."

"아..."

"그래서 같이 들어갔으면 하는데 괜찮습니까?"

"..."

"원하지 않으셔도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


침묵은 암묵의 동의라는 말이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듯했다. 나는 여주인보다 앞서서 지연이에게로 향했다. 지연이는 들어오는 나를 보고 아까 마주한 관계자와 똑같은 표정을 짓는다. 이번에는 굳이 부정할 필요가 없기에 나는 가만히 있는데. 원래 내 자리에 앉고 뒤따라오던 여주인을 바라보자 쭈뼛쭈뼛 방향을 못 잡길래 나는 내 옆에 있는 의자를 손수 지연이 옆에 놓았다. 그제야 느릿느릿 옆에 앉은 여주인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지연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아저씨.. 이 아줌마는 왜.."

"이 아줌마는 지연이의 아버지께서 자주 가시던 술집의 주인이셔."

"젊은 양반이 나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잘 아나...."

"죄송합니다. 지연이의 변호해 필요해 조사를 좀 했습니다."

"아.. 그러면 젊은이가 혹시 얼마 전에 우리 가게로 찾아온 그 양복 입은 총각.."

"맞습니다.."

"그럼 다 알고 온 거였군.. 이 아이의 아비가 죽은 것도.."

"그렇습니다."


그때였다.


"아저씨 제가 그랬어요."


밑도 끝도 없이 지연이가 자신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내뱉었다. 아직 어린 지연이는 지금 자신이 내뱉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있는 듯했다. 이 말은 즉슨 지연이랑 이 여주인이 서로 아는 사이이며, 이 여주인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다.


"갑자기 무슨 말이니?"

"제가 범인이에요. 제가 아빠를 죽였어요."

"지연아. 아저씨 똑바로 봐. 난 지연이가 그랬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아. 지연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야. 아저씨 눈 똑바로 보고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했는지 설명해봐."

"그냥.. 전.. 제가 범인이라니까요!"


"아주머니, 아주머니가 설명해보세요. 어른으로서 이 어린아이가 자신의 입으로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무서운 말을 내뱉게 한 것에 대해 조금의 책임감이라도 느끼신다면 본인 입으로 설명을 해보세요. 얼른!"

"..."

"지연이, 그리고 아주머니, 결국 진실을 밝혀집니다. 한 사람이 죽은 마당에 아름다운 진실이 밝혀질 리도 없고 결국 추잡스러운 진실이 그 모습을 드러낼 데 제가 조사해서 법정에서 밝혀지면 결국.. 더 비참해질 뿐이에요. 그러나 빨리 누구든지 말해요."


"...."


"결국 이렇게 나오신다는 말이죠? 지연이. 김지연. 실망스럽구나. 그동안 아저씨가 지연이를 이 무서운 곳에서 구해주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렇게 힘든 시간들 속에서도 간간히 지연이 만나러 오면서 마음을 다잡곤 했는데..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지연이가 아저씨의 모든 희망을 이렇게 허무하게 짓잛을줄 몰랐어."


"죄송해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두 분이 잘 이야기해보세요."


사실 진짜로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 두 사람이 나의 배신감과 분노를 조금이라도 느껴 붙잡아주길 바랬고 다행히 지연이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저씨.."

"왜? 할 말이 생겼어?"

"그게..."

"..."

"그러니까.. 요.."

"..."


"이봐요. 젊은 양반.."

"네."

"내가 다 얘기할 테니 이 어린 건 그만 다그쳐요.."


이렇게 모든 의문이 풀리는 건가. 얼굴은 분노와 배신감, 그리고 절망과 긴장감으로 굳어있었지만 심장만큼은 정말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요동쳤다.


"면회시간 끝났습니다."


'이런....'


그렇다고 이 중요한 순간을 놓칠 사람이었으면 내가 진작에 2차 시험 3번 떨어졌을 때 법전을 덮어버렸을 것이다. 일단 무시해버리고 빨리 말하라는 눈초리로 그 여주인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려보았다.


"저기.. 변호사님. 면회시간 끝났습니다."


"알았어요. 곧 나갈게요."

"변호사님. 이러시면 안 되시는 거 아시잖아요. 지연이 들어가자."

"잠깐만요. 5분만 더 줘요. 저 아이를 여기서 썩게 할지 새 삶을 살게 할지가 지금 5분에 달렸다고요. "

"그렇지만.."


한 사람을 눈앞에 세워놓고 그 사람을 들먹거리며 까지 동정심을 이끌어 내려했지만,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상대방이 여전히 망설이면 그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첫 번째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을 면전에 세워놓고 그 사람의 바닥까지 들춰내며 그 사람을 욕보일 수 있을 만큼 독하다는 거고, 두 번째는 앞에 있는 사람보다 자신의 상황이 더 절박하다는 것이다. 지금 이 간수는 나를 내보내지 못하면 본인이 어떤 질책을 감당해야 할지 알기에 물러서지 않았다. 나도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아주머니. 나가시죠."

"그렇지만 전 아직 이 아이와 한마디도.."


"일단 나 가계세요."

"그렇지만 지연아.."

"그냥 가세요. 더 이상 그 누구도 곤란한 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알았다.. 다음에 또 오마.."

"..."


여주인의 착잡한 심정이 얼굴로 다 드러났기에 조금은 미안했지만 난 이 사람이 나에게 하려고 했던 말을 꼭 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피도 눈물도 없다는 얘기를 들을지언정 어쩌면 살인자일지도 모르는 사람의 비난은 기분 나빠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고 여주인을 잡았다.


"아주머니, 잠깐 어디라도 가서 아까 하려던 얘기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지금 아주머니의 심경이 아주 착잡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겠습니다. 그래도 전 지연이의 변호사로서 꼭 들어야겠습니다."

"여기서 듣고 싶어요..?"

"아닙니다. 일단 제 차로 움직이시죠."


침묵이 꽤 길게 이어졌다. 나는 막상 운전대를 잡자 어디로 가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여주인은 자신의 가게로 갈 것을 제안했다. 낮에 오나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술집의 주인이라고 믿을 수 없이 수수한 모습의 여주인의 모습은 꼭 사채를 쓰고 결국 갚지 못해 하는 수 없이 팔려온 듯한 분위기를 한껏 풍겼다. (물론, 여주인의 나이는 사창가에서도 퇴짜를 놀만큼 많았지만 말이다.) 자연스럽게 여주인이 먼저 자리에 앉고, 나도 긴장되는 마음을 최대한 감추며 그 맞은편에 앉았다.


"이런 말 하면 변호사 양반이 날 미친년 취급하겠지만...."

"....."

"지연이가 맞아요. 지 아비를 죽인 건....."


그다음은 충분히 예상이 가능했다. 꼭 내가 상위 1%의 성적으로 고시를 합격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건 사고가 충분히 발달한 정상적인 성인이라면 누구나 다 이 여자가 그다음 무슨 말을 할지 추측이 갈 것이다.



"그 사람 몸에서 세제 같은 게 나왔을 텐데.."

"맞습니다."

"난 사실.. 그 양반이랑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어.."


사실은 지연이가 자신의 아버지와 가까이 지내는 어떤 아주머니도 생각해내지 못해서 또다시 내 공상 속 드라마에 의존해 이번 사건이 쉽게 풀리길 바랐던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는데.. 결국 그렇게 되어가고 있었다.


"딱 작년 이맘때쯤이던가.. 그 양반이 우리 가게로 들어왔어.. 변호사 양반도 찾아봐봐서 알겠지만 우리 술집이 눈에 띄는 곳에 있는 건 아닌데.. 근데 왔더라고.. 근데 딱 보기에도 일부러 찾아온 것 같지는 않고 그냥 발길 가는 데로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술이나 마실 요양으로 들어온 것 같았어.. 처음에는 별 신경도 안 썼어.. 근데 하루 이틀.. 계속 오더라고.. 그리고 저기 구석자리에서 늘 혼자 술을 그렇게 마셨어.. 어찌나 처량하던지.. 측은한 마음도 들고.. 그래서 말을 걸었지.. 그랬더니 왕년에 자기가 잘 나갔는데.. 뭐 사업이 망했다나 어쨌다나.. 마누라가 집을 나갔는데 딸년을 계속 키워야 하나 지 어미한테 보내야 하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괜히 눈물도 나고.. 그랬어.. 이 나이 되면.. 그냥 다 불쌍해.. 게다가 그 딸이 우리 딸이랑 동갑이라는 얘기를 듣고.. 어찌나 가엾고 딱하고.... 아효 주책 맞게 또 눈물이 나네.. 뭐 여하튼 그렇게 같이 술을 마시다 보니 가까워진 거지.. 그렇다고 우리가 뭐 불륜이나 그런 건 아니었어.."


"..."

"근데 하루는 그 딸이 여기를 찾아왔어, 난 처음엔 웬 어린애가 술집을 그것도 너무 당당하게 들어오길래 아무 말도 못 하였어..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고 있는데.. 그렇다고 내가 지연이에게 술을 판 건 아니라오. 이거 참.. 변호사 앞에서 얘기하려니 한마디 한마디가 다 조심스럽구먼.. 어쨌든 근데 그 어린 게 대뜸 나한테 오더니 자기 아빠를 아냐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네 아빠가 누구냐고 물었지, 그랬더니 여기서 술 자주 마시는 아저씨라면서.. 설명을 하는데 누군고 하니 그 아저씨인 거야.. 차근차근 살펴봤더니 피는 못 속인다고 닮았더라고.. 여하튼 그냥 손님이라고 근데 너는 여기 왜 왔냐고 했더니.. 참나 자기 아버지랑 무슨 관계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그냥 나는 여기 주인이고 너네 아빠는 와서 술 마시는 손님이라고 했지.."


"..."

"그랬더니 나를 한참 째려보더니 자기는 엄마를 사랑한다나 뭐라나.. 자기 아빠랑 엄마랑 다시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나 뭐라나.. 하길래 그제야 알겠더라고. 자기 아빠가 나랑 바람피우는 줄 알았던 거야 그래서 벌건 대낮에 학교도 안 가고 여길 쫓아온 거지. 요즘애들은 겁도 없어. 그래서 그런 일 없을 거라고 단단히 못을 박으니까 그제야 안심하고 가더라고. 근데 문제는 그 후였어."


"....?"


"걔가 왔다 가고 나서 그 아저씨가 툭하면 우리 가게에 와서 지랄 방정을 떠는 거야 아주.. 자기 딸이 왔었냐고.. 무슨 말을 지껄였냐는 둥.. 어쩌고저쩌고.. 그래서 난 아무 말도 안 했다고, 당신 딸이 이상한 생각을 하길래 난 아니라고 했을 뿐이라고.. 했는데 뭐 이미 술에 취해서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한테 말이 통하겠소? 부시고 던지고 욕하고.. 진짜 가게 문을 닫을 수도 없고..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효..."


"그래서 죽이셨나요?"


"..."

"아, 죄송합니다. 얘기 계속하시죠."


"근데 더 기가 막힌 건 그 아비가 다녀간 그다음 날엔 지연이가 와서 아무 관계 다니라면서 자꾸 아빠가 왜 여길 오냐고 닦달, 그다음 날엔 아비란 인간이 와서 지랄 방정... 아이고, 변호사 양반 앞에서 교양 없이.. 근데 이런데서 살다 보면 입이 드러워진다오..어쨌뜬 그렇게 그 부녀가 날 괴롭힌 것이 족히 3개월은 될 거요. 이 주위에 내가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데 가게문을 안열 수도 없고.. 그래서 경찰서에도 갔었어.. 그랬더니 나참 기가 막혀서.. 가재는 게 편이라고 변호사 양반도 결국 경찰 나부랭이들 편들겠지만.. 술집에서 취객들이 행패 부리는 거 하루 이틀일이냐고.. 그런 거 감수 안 하실 거면 가게를 접으라나 뭐라나.. 아니 술집이 취객 화풀이 장소요? 진짜 그러고 나라에서 돈 받아먹는 꼴 보면.. 기도 안차.."


"..."


"어쨌든 평소랑 똑같이 그 아비라는 인간이 한밭아 난리를 치고 간 다음날 지연이가 와서 한마디 하더라고. 아줌마가 못 끝내시면 자기가 끝내주겠다고. 그래서 뭘 끝내냐고. 이거 안 보이냐고. 네 아빠가 와서 부신 거라고. 난 더 이상 너도 네 아빠도 보고 싶지 않다고. 한바탕 하소연을 했어요. 근데도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아무 말 안 하고 그냥 나가더라고. 느낌이 정말 안 좋았어. 근데.. 그러고 나서 한동안 그 아저씨도 지연이도 안 오데.. 그래서 오해가 풀렸는갑다..하고 난 평소대로 지냈어.. 뭐 가끔 생각은 났지.."


"근데 아까 보니까.. 지연이가 아주머니를 보호하려고 하던 것 같던데.. 어떻게 된 건가요..?"


"그게.. 그러고 나서 한 달쯤 뒤에..걔가 날 찾아왔어.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문열리는 소리가 들려서 오늘은 장사좀 되겠구나..했는데..하필 .. 아효..근데 애가 갑자기 우는거야..그것도 펑펑..그래서 난 황당하고 어이도 없고........멍하니 보고있었지...한참을 서서 울더니 지 애비가 술먹던 저 구석자리에 앉아서 중얼중얼 말을 하더라고.."


"무슨말을 하던가요?"


마음이 조급해졌다. 머리로는 진짜 범인의 윤곽이 뚜렷해졌지만 마음으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지금 이 사람이 하는 말 어디에서든지 뒤집을만한 무언가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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