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나란히

by JA

여느 날과 다를 것이 없던 오후, 사부작사부작 열심히 무언가를 만들고 있던 딸을 바라보다 무심코 말을 꺼냈다.


"딸, 엄마는 소원 있어"

"...?"

"딸이 나중에 크면 딸이랑 같이 떡볶이도 먹고, 둘이 영화도 보러 가고, 예쁜 카페도 가고.."

"내가 매운 거 먹을 수 있게 되면? 카페에 가면 엄마는 커피 마시고 나는 과일주스 마시고?"

"응, 그렇지"

"그리고.. 딸이랑 나란히 앉거나 누워서 같이 책도 보고 싶어"

"책?"

"응, 지금은 엄마가 다온이 책을 많이 읽어주잖아, 다온이 자면 엄마 책을 읽고, 그런데 언젠가 다온이가 한글을 다 알게 되고,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면 나란히 앉아서 각자 좋아하는 책을 읽는 거야"


아이는 말이 없었다. 떡볶이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책 얘기를 꺼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저 자신이 할 얘기가 머릿속에 떠오른 건지 갑자기 다른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물 흐르듯 딸의 대화에 이끌려갔지만, 한번 말로 꺼내어 놓으니 나의 소원은 정말 간절해지고 있었다.



가끔 상상한다.


경치가 아주 좋은 곳에 위치한 예쁜 카페에 딸과 손을 잡고 들어가 창가 자리에 앉는다. 나는 수제 드립 커피를 주문하고 딸에게 무엇을 마시고 싶냐고 묻는다. 나이에 맞게 과일주스나 과일 스무디를 시키면 좋겠지만, 나를 따라 커피를 마신다고 하면 "기분이다! 콜!" 하며 두 잔의 커피를 주문한다.


약속이나 한 듯이 책을 꺼낸다. 아무런 대화도 없이 책 읽기를 시작하면 모녀간에 벌써부터 정적이 흐르는 것 같아 서글프니 딸의 책을 슬쩍 보고 묻는다.


"무슨 책이니?"

"작가는 누구야?"

"어떤 내용이야?"


지금처럼 조잘거리는 딸이라면 아마 하나부터 열까지 다 설명하느라 30분이 넘는 시간을 소요할지도 모른다. 혹은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시기라면 단답형으로 제목, 작가 이름, 주제만을 말해줄 수도 있겠지. 전자든 후자든 다 괜찮다. 딸이 나와 이 공간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격스러울 테니까.


황홀한 커피 향을 풍기며 음료가 도착하면 한 모금 입에 넣고 충분히 음미한 후, 책을 읽기 시작한다. 한 장 읽고, 한참 딸의 얼굴을 바라본다. 또다시 한 장 읽고 이번에는 딸의 눈 코 입을 하나하나 뜯어본다. 한 장 읽고, 또 딸의 얼굴을 보려다 고개를 든 딸과 혹여나 눈이 마주치면 빙긋 웃어 보인다. 민망해서 입 밖으로 얘기는 못하겠지만 혼자 생각한다.


'책을 읽는 것보다 딸을 바라보는 게 더 좋아, 그런 딸과 지금 이 순간 같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참 좋아'



어쩌면 발칙한 상상일지도 모른다. 요새는 열 살만 넘어가도 엄마보다 친구를 더 찾는다는데 엄마와 책 읽는 시간을 갖는 딸을 바라다니. 하지만 난 소망한다. 아주 간절히 소망한다.


아이와 나란히 거실 소파에서, 혹은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서 같이 책을 읽을 수 있기를. 서로 다른 책을 읽는다면 추천도 해주고, 같은 책을 읽는다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이 부분에서 이런 느낌을 받았는데 너는 어떠했냐고 감정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기를.



이런 소망을 품으로 읽어온 책으로 브런치 북을 엮게 되었다. 총 세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고, 소개를 해보고자 한다.


*아이들의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나의 책을 읽는 시간보다 여전히 훨씬 많지만, 그래도 나의 책을 놓지 않기 위해 꾸준히 읽고 사유했던 순간들을 기록한 것이 첫 번째 챕터 "엄마가 사랑한 책"이다. 취향이 확실했던 그 전과는 달리 다양한 책을 편견 없이 읽으려고 노력했고, 그 책들 중에 나름 까다로운 나의 마음을 울린 책들을 엄선하여 목록을 선정했다. 책은 읽고 싶은데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는 분들, 특히 아이들 독서에만 집중하느라 동화책, 그림책에 갇혀있던 엄마들이 선택하면 최소한 후회는 안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뛰어든 육아라는 세계에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하찮게 여겨지고, 삶의 의미가 희미해지는 순간 내가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도록 해 준 책들을 기록한 것이 두 번째 챕터 "엄마가 붙잡은 책"이다. 내가 붙잡았다고 해서 엄청난 위로나, 거대한 희망이 들어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 책들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딱 하나,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나의 전적인 희생을 필요로 했을 때, 나는 정말 수많은 안 좋은 생각을 했었다.

"내가 왜 아이를 낳았을까?"

"이 아이는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 걸까?"

"정말 죽어버리고 싶다."

"이 집에서 뛰쳐나가서 돌아오고 싶지 않다."


하지만 항상 이런 생각들 뒤에는 감당할 수 없는 자괴감과 죄책감이 뒤따랐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던 어느 날 펼쳐 든 이 책들의 저자는 공통적으로 이런 말을 해주고 있었다. "너만 그런 게 아니야" 그랬다. 이 한마디가 정말 그 어떤 말보다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아마 이 순간, 잠을 자지 않는 아이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배고프다고 우는 아이 때문에, 계속 안으라는 아이 때문에 미치도록 힘든 엄마들이 있을 것이다. 그 엄마들이 꼭 한 번쯤은 읽었으면 하는 책들이다.


*마지막 챕터 "엄마가 아이를 사랑해서 읽은 책"은 아이가 한 살 한 살 커가면서 내 육아 방식, 혹은 학습지도 방식에 확신이 안 설 때마다 읽었던 책이다. 물론 우리 아이가 유치원, 어린이집에 다니는 걸 감안하면 약간 시기상조인 면이 없지 않지만, 읽으면서 앞으로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길잡이와도 같은 책들이었다. 첫째 아이가 내년이면 예비 초등생이니 이제 본격적으로 도움받을 일만 남았다. 미리 읽으면 길잡이, 때맞춰 읽으면 자습서와 같은 역할을 해줄 책들이다.



엄마가 되는 순간 엄마로서의 삶과 나 자신으로서의 삶의 균형을 맞추기가 굉장히 힘들다. 엄마로서의 삶으로 기울면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면 남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허망할 것이고, 나 자신으로서의 삶으로 기울면 세상은 나를 "이기적"이라고 너무나도 섣부르게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균형을 제대로 맞추기보다는, 최대한 맞추기 위해 나는 책을 읽었다. 당신에게도 이 책들이 성공적인 줄타기의 시발점이 되어주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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