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Oct 11. 2023

하늘이 이리 아름다운데, 그녀는 어디로 갔나.

그곳에선 평안하길.

남모르게 응원하던 사람이 있었다. 학교폭력생존자라는 표현으로 자신을 방송에서 소개해 유명해진 “표예림”양이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를 이 여성을 간간히 지켜보며 응원했던 이유는 그녀가 오랜 시간 지독하게 학교폭력을 당했음에도 이제는 그 어두운 과거에서 벗어나 당당해지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감명 깊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충격적인 기사를 접했다. 자신의 상처를 회복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비슷한 상처를 흉터로 안고 사는 이들의 삶까지 감싸 안으려 부단히 노력했던 그녀가 결국 스스로 자신의 생을 끝냈다는 비보였다. 순간 미친 듯이 심장이 요동쳤다. 지인도 아니고, 친구는 더더욱 아니고, 가족도 아닌 사람이건만 아주 잠시 정신이 멍해지기도 했다. 그녀는 왜 그래야만 했을까. 


그녀의 죽음을 두고 벌써부터 이런저런 말들이 산처럼 쌓이고 있다. 아무리 정통한 사람이 사실관계를 파악한다고 해도 진실은 당사자들만 알 테고 그 중심에 있는 그녀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모든 말들이 칠판을 손으로 긁는 소리처럼 너무도 듣기 싫은 소음처럼 느껴졌다. 그저 나는 궁금했다. 그녀가 아무도 막아주지 않았던 지옥 같은 학교폭력을 견뎌내면서까진 지킨 자신의 생명을 버려가면서까지 증명하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 나같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저 지켜보며 응원하던 사람들, 혹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본인의 곁에서 함께 나아가던 사람들, 아니면 하다못해 가족들 중 단 한 사람의 손이라도 꼭 잡고 버틸 수는 없었을까. 정말 그럴 수는 없었을까. 왜 그렇게 외롭게 밤이 되면 한없이 서늘해지는 이 계절에 분명 시리고 시렸을 그 강물로 그녀는 굳이 들어가야만 했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코끝을 찡하게 한다.  


그녀가 자신이 운영하는 채널에 올린 마지막 영상을 봤다. 영상을 말미 부분에 그녀는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한다. 흐느끼고 흐느끼다가 더 이상은 안 되겠는지 카메라를 끄는 모습으로 영상이 끝이 나는데 그걸 보며 나도 모르게 아주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자신의 방에서 숙제를 하던 딸이 물었다. “엄마 왜 그래?” 아직은 어린 딸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말을 해주는 게 맞는지 판단이 서지 않아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로 무마하려는데 그 순간 또 한 번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녀에게도 부모님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인생의 꽃이라고 볼 수 있는 학창 시절을 학교폭력의 굴레 속에서 죽지 않으려 겨우겨우 버텨 여기까지 온 나의 딸이, 결국 그것이 원인이 되어 가장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는 나이에 하늘로 갔으니 그 심정이 어떨까.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학교폭력의 생존자인 나는 잠시나마 나에게 위로와 응원을 주었던 그녀를 진심으로 추모한다. 또한, 살아남은 자들은 절대 알 수 없는 그녀가 도착한 그곳에 정말 “신”이 있다면 이 땅에서 그녀가 겪었던 이 모든 일에 대한 기억을 다 지워주시기를 기도한다. 학교폭력으로 괴로웠던 기억과 그 기억을 불특정 다수 앞에서 꺼내 놓은 후 벌어진 모든 일까지 없었던 것처럼 말끔하게 치워져 그저 그녀가 다른 이들처럼 평범한 자신으로서 온전하게 존재하며 행복하길 기원한다.  


그녀의 기사를 접하고 맞은 그날의 퇴근길, 회사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오는데 유난히 푸른 하늘이 보였다. 하늘이 가장 푸르고 아름다운 이 계절에, 꿋꿋함이 보석처럼 빛났던 그녀가 떠났다. 날이 갈수록 점점 붉고 노랗게 물들어갈 나무들 덕에 계절은 점점 더 아름다워지겠지만 어김없이 불어올 가을바람을 맞을 때면 가슴 어느 한구석이 무척이나 시릴 것만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