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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을리 Jun 21. 2020

원하던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

시험기간이니까 딴짓하고 싶어서 쓰는 31살 대학생의 일상

한동안 브런치를 여러번이나 껐다 켰다 했더랬다. 그동안 글을 쓰지 않았던 이유는 좋게 보면 그만큼 마음을 정리해야 할 일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고, 나쁘게 보면 - 이전의 나의 많은 활동들이 그러했듯이 - 그만큼 흥미를 가지지 않아서였지. 캐나다에서 생활하다 보니 출퇴근길에 브런치 읽을 일이 없었고, 한글로 글을 쓰는 것도 그동안 하지 않은 만큼 실력(?)이 녹스는게 느껴져서 더더욱 안하게 되더라. (영어도 못하고 한국어도 못하는 0개국어자로 살아가고 있다. 괜찮다 웹툰이 있으니까..)

 

근황. (딱히 본론과 상관없음)

여하튼. 그리도 바라던 외국에서의 공부를 채 1년도 하기 전에 코로나가 터져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어쩔 수 없이 돌아온 건 아니고 학기 끝나는 시점이 집 계약이 끝나는 시점이었는데, 마침 새로 들어온 룸메가 사람은 참 좋은데 아침 저녁으로 두세시간씩 남친이랑 통화를 하는 통에 홧김에 비행기표를 끊었다. 방음 안되는 캐나다 집에서 중국어로 여친이 남친한테 호통치는걸 듣노라면 (중국어는 1도 모르지만 어투만 봐서는 거의 바람을 폈지 싶다 쥐잡듯이 잡는걸 몇번 들었음..) 여기가 캐나다인지 중국인지 한국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았기 때문에... (ㅋㅋㅋ) 학교를 안가고 사람을 안만나면서 꽤 우울해지기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서 2분거리 사는 친구가 음식 해서 갖다주고, 걸어서 30분 가면 록키가 보이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고민을 좀 했었다. 돌아와서 가족들이랑 싸우면 어떡하지. 이런거.

도비가 차린 타코 한상

그런 걱정이 너무나 무색하도록,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나는 정말 잘 지내고 있다. 내가 스트레스 받을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가족하고 부딪히는 일들이 없다. 가족들 (= 주인님댁으로 부름)이 출근하시면 그동안 (도비는) 집안일을 해놓고 수업을 듣고 숙제를 하고, 가족들이 돌아오면 같이 저녁을 먹는다. 이것이 너무나 행복한 일상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엄마가 끓여놓은 찌개가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짝퉁 김치조차 아껴먹는 쉐어하우스의 삶을 살다가 오면 대충 이해가 될 것이다. 룸메들이 아무리 잘해줘도, 동생이 나를 신랄하게 비판할때 주는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진 못한다. (ㅋㅋㅋ) 여기가 내 집이라는 느낌은 정말로 소중한 것이다. 여하튼 5월 귀국 후 지금까지 '불안한 미래 이외에는' 불평할게 하나도 없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 불안한 미래가 이제 슬슬 현실적으로 다가와서 밤에 잠을 좀 설치게 하고 있다.


서론. 내가 주재료인 삶을 결정한다는 것

단언컨대 단 한번도 이렇게까지 내 생각과 감정이 중심이 된 결정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내 나이대의 한국인이라면 많이 그렇지 않을까? 운이 좋게도 자존감이 높고 본인의 취향과 의지에 아주 많은 가치를 두고 결정을 하는 사람도 가끔 보아왔지만, 그런 건 자주 일어나지 않는 일이니까. 가상의 '남들'이 멋지다, 좋다, 혹은 옳다 (이게 제일 나쁨 ㅅㅂ) 고 생각하는 것들이 20대의 끝자락까지 항상 내 결정의 기준이었다. 물론 나의 취향도 반영이 되었지만 그런건 예를들면 남들이 원하는 것들을 베이스로 놓고 골라낸 3개 중에 뭘 고를까 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반영이 되는... 소량의 조미료였지 주재료는 아니었다. 예를들면, 수능 점수로 골라낸 이름있는 대학들의 갈 수 있는 과들 중에, 그 중에서 그나마 내가 가고싶은 과를 고르는 식이지. 그 다음은 연봉으로 골라낸 이름있는 기업들이었고, 브랜드로 골라낸 아이템 중 그나마 내 취향에 맞는 것들. 이게 아주 크게 잘못되었다 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고, 나름대로는 인생을 걸고 드디어 드디어 나를 주재료로 놓고 지금의 삶을 결정하게 되었다.

남들 눈치를 보면 선택할 이유가 크게 없는 깡촌 학교에 다니면 주말에 이런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

남들의 시선을 걷어내면 옵션이 정말 많아진다. 우선 미국의 학벌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눈에 불을 켜야 할 필요도, 그 학비를 낼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할 필요도 없어진다. 내가 앞으로 소도시에 살면서 돈 쪼금 버는 외국인이어도 괜찮다는걸 알고 있으면 말이지. 온전히 과거의 나의 힘으로 지금의 나를 먹여살릴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럭셔리라고 느껴진다. 내가 가진 조건들이 품어주지 못하는 옵션들이 있다는 것은 아쉽지만, 내 조건으로 선택할 수 있는 옵션들이 있다는 것은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남들이 해야된다고 해서 하면 옵션이 없다는 사실에 정말 분노했을 것 같다. 그렇게 머리 터지는 고민의 시간을 거쳐 캐나다로 갔다. 학업만 생각하면 네덜란드가 더 끌렸지만, 유럽에서 겪은 미친듯한 겨울의 우울함과 이걸 더 우울하게 만드는 제대로 된 음식의 부재가 나를 캐나다로 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캐나다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만큼은 아주 큰 만족을 느꼈지. 탕수육하고 뼈다구탕이 배달되는 나라에서 겨울에 썬글라스 쓰고 학교 갔으니까 말이다. ㅎㅎㅎ (잠깐 옆길로 새자면 영주권을 생각하고 학업을 해도 될 만큼 이민자가 살기에 난이도가 참 낮은 나라이지 싶다. 살기가 난이도가 낮다는 의미지 취업 등의 난이도가 낮다는 소리는 아님.)


본론. 그게 어떤 점에서 무섭냐면

이런 '자발적인 삶'을 살고 싶어서 그렇게도 열심히 '왜 나는 무기력한가' 책을 읽었더랬다. 줄 긋고 책 접고 난리를 치면서 읽었다. 현대인은 자발적인 삶을 살지 못해서 우울하고 무기력하구나.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구나. 우리가 선택한 삶을 책임질 용기가 있으면 이걸 벗어날 수 있구나. 그 책이 말하는 그 삶을 아주 오랫동안 꿈꿨고 나는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책에서 내가 배우지 못한 건 자발적인 삶을 살때 당연히 따라오는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이 존나.... 존나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다. 그 책임이라는건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 내가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이나 자본이 아니다. '뭐가 잘못될 지 모르는' 상황과 '잘못되면 다분히 ㅈ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그 책임을 구성하는 핵심요소들이다. 일이 잘못되는 것 자체가 두려운게 아니다. 일이 잘못 될 가능성은 남들의 눈치를 보고 살 때도 언제나 있었다. 제일 무서운 건 잘못되었을 때 탓할 사람이 오직 나 하나라는거다. 남들도 다 그러고 사니까, 옆집 누구도 그러니까, 혹은 적어도 남들이 원하는 가치 A를 가졌으니까 라는 핑계거리가 사라져버린다. 이 핑계거리 중 '소속감'이라는 건 사람이 사는데 정말로 필요한 것 중에 하나라서 아주 강력한 합리화가 된다. 따라서 뭐가 잘못된 상황에서 '나만 이러고 사는데, 아무도 이렇게 안 사는데, 나는 가진 것도 없는데'가 나의 종착점이 되버리면 이 상황이 아주 나에게 정신적 신체적 경제적으로 큰 재앙이 되겠구나 라는 것이 이제 실감이 나는 것이다.

코로나로 텅 비어버린 도로 :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상황은 어떻게든 찾아오기 마련이다

실감이 난다는 말은 풀어 쓰자면 남은 잔고가 눈에 보이는 기간의 생활비로 한번에 나눠져버린다는 것이고, 내 목표를 위해 내가 해야되는 노력이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좀 더 많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 일들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그러나 취업을 하다가 엎어지면 도와줄 나라는 있어도, 나이 서른에 회사 관두고 학사 하다가 엎어지면 도와줄 나라는 잘 없다. (아 왜요... 저 계속 공부하고 싶은데요.)

나는 내가 주재료인 삶을 선택하는 순간, 남의 시선과 기대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온전히 내 자신의 동기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대신에 '다수의 남들'에 속함으로써 받았던 사회적 안전망과 심리적 안정감으로부터도 대차게 빠른 속도로 멀어진 것이다. 이런 걸 몰랐느냐고? 당연히 알았다. 이 흐름으로부터 벗어나 혼자만의 항해를 하리라는 것, 그것에 아주 많은 걸림돌이 있을 것이라는 것. 그치만 내 상상 속 나의 항해는 원피스의 위대한 항로였지 해운대 이안류는 아니었는데...


결론. 그래도 무르고 싶은 생각 없음

희망적인(?) 얘기를 하자면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항해를 접고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구구절절 늘어놓은 이 삶의 단점에 맞먹는 장점이 하나 있다. 그건 키를 내가 잡고있다는 것이다. 이 삶의 장점과 단점은 동일하다. 탓할 사람이 나 하나라는게 평소에는 아주 큰 장점이 된다. 바람 불지 않는 날의 잔잔한 파도라면 (흰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이 모든걸 나 혼자, 내 힘으로, 내 덕에 (물론 아니지만 그렇게 느껴짐) 즐기고 있다는게 어마어마한 행복이 된다. 10만원짜리 부페에 가서, 내 몫의 행복이 소고기 한점인 삶을 살다가, 1500원짜리 단팥빵이 온전히 내 것인 삶을 사는 기분이다. 내가 얻어낸 것이기에 더 값어치 있는. 이래서 사업하는 사람들이 망해도 자꾸만 사업에 다시 도전하는 걸까 싶기도 하다. 망해도 내 배에서 망하고 싶지, 다시 남들이 많이 탄 그 배로 돌아가서 가끔 보게되는 햇빛과 가끔 얻는 '그래도 내가 이 배를 탔지!' 하는 마음 따위에 안주하고 싶지 않다. 내 배에 누워있으면 옴팡지게 햇빛을 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배는 작아도.

캘거리에 간 이유. 그리고 온전히 즐겼던 행복들
책상을 보면 신기하고 뿌듯했던 시험기간
 아플 때 친구가 챙겨준 식사. 중고마켓에서 산 컵들. 좋아하는 카페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카페 순위에 들지 않을까
자세히 보면 불고기가 숨어있지

단팥빵과 햇빛이라는 걸 또 굳이 풀어쓰자면 나에게는 그런거다. 연고 없는 타지에서 하나하나 알아가는 눈 반짝이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나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건네주는 편지와 음식과 선물 같은 것. 교수님의 이메일에 잘 하고 있어! 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을 때. 원하던 랩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초반에 망한듯 싶었던 과목의 성적이 후반에 올라서 결국엔 좋은 결과가 나올 때. 밴프로 향하는 길,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눈앞을 덮는 만년설 쌓인 산들. 지금 가족들과 내 가장 행복한 상태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들. 이런게 지난 10개월동안 나에게 꽤나 대단한 행복이 되어주었다. 온전히 내가,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살면서 얻어낸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행복과 불안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게, 30살 먹은 나에게는 '원하던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다. 불안함조차 내가 선택한 것이고 짊어지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브런치에도 잠깐 쓴 적이 있지만, 나는 원래가 비맞으면서 캐리어 끌 때 꽤나 행복한 인간이었다. 내가 짊어질 수 있는 만큼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게, 내가 나를 온전히 책임질 수 있다는 것 같아서 그랬다. 지금 딱 그렇다. 불안함이 너무 무거워지지 않게 조절하는게 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핵심 포인트인 것 같다. 그걸 알았던 건 아니고, 이렇게 쓰면서 깨닫는다. 그래도 글이 한 편이 써지는 걸 보니 내 짐이 꽤 커지긴 했구나. 7월부터는 한국이랑 호주에 있는 랩에서 일하면서 캐나다 강의를 들으면서 GRE공부를 할 생각인데 쓰기만 해도 미친거 같아서 나의 불안함을 넉넉하게 인정하는 바이다. 두달만 조져지면 되겠지.... 내인생 화이팅.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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