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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기로 Apr 17. 2022

나의 직업 실험기 1탄

지금까지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하였나

이 글은 예전에 블로그에 썼던 글인데 직업 실험기 2탄과 3탄을 연재하기 위해 가져왔습니다! 셀프 인터뷰 형식으로 재밌게 써 봤어요. 역시 자기 이야기하는 콘텐츠가 제일 재밌어.


1탄 : 지금까지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하였나.
2탄 : 디자이너 커리어 - 에이전시
3탄 : 디자이너 커리어 - 프리랜서
4탄 : 디자이너 커리어 - 스타트업 (4탄은 이미 썼다!)

5탄 : (미정) 퇴사 후 직업 실험기








안녕하세요 하기로님.

가장 처음으로 돈을 번 일은
언제, 무슨 일이었나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들과 피자집 전단지를 돌린 일이 저의 첫 아르바이트 였어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맨 꼭대기층으로 올라간 후 계단을 걸어 내려오며 전단지를 문에 하나씩 꽂는 일이었는데, 아파트 문을 보면 제가 한 일이 정확히 증거로 남는 방식이라 전혀 꾀를 부릴 수 없더라고요. 근데 저는 이런 단순 노가다를 상당히 좋아한다는 사실을 어린 시절부터 깨달았던 것 같아요. 처음 받았던 커다란 종이 뭉치가 점점 없어지는 쾌감? 성취감을 확실히 느꼈거든요.


5시간 꼬박 일하고 만원 받은 기억이 나네요. 번 돈으로 그 피자집에서 피자 시켜 먹었어요. 피자 시키고 남은 돈으로 머리끈을 샀고요. 사장님이 일 잘한다고 또 하라고 전화받았던 기억도 나요. 나라도 전화했을 것 같아. 전단지 돌려주고 매상 올려주고.


사진이 없어서 디자인한 전단지를 첨부





또 미성년자 시절

벌어본 돈이 있나요?


중학생 시절의 꿈이 패션 디자이너라 옷 만드는 일에 꽂혀 있었는데, 진짜 기성복처럼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제가 디자인하고 제작한 옷을 온라인으로 판매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했던 일들이 어쩌면 저의 정체성이었는지도 몰라요. 너무너무 즐거웠던 기억이 나거든요.


브랜드 이름을 지었고 (A kissing christmas)

사이트를 만들었고 (추억의 나모 웹에디터 5.0)

모델이 되어 사진을 찍었고

옷을 디자인했고

옷을 만들었고

옷을 팔았어요.


그때 가장 많이 판매한 제품은 호박 바지였습니다. 싸이월드 로그인이 막혀서 사진이 전부 제 기억 속에만 자리 잡게 된 것이 정말 너무 아쉽네요. 이래서 기록이 중요한 것 같아요.


바로 이런 게 호박 바지




가장 힘들었던 일
3개만 꼽아보자면요?


첫 번째는 호주에서 했던 리조트 청소일.

배 타고 출근


일단은 출퇴근이 말도 안 되게 힘들었어요.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15분을 달려 선착장에 도착한 후 배를 20분 타고 출퇴근을 해야 했거든요. 혹시 배 타고 출퇴근해보셨나요?


하루는 출근길에 멀미가 나서 겨우겨우 리조트에 도착. 오늘은 도저히 일을 못하겠다고 했더니 땜빵 인력이 없대요. 최대한 쉬고 일은 하래 흑흑. 그래서 한 시간 정도 누워있다가 괜찮아져서 겨우겨우 일을 했었어요.


첫날, 일을 배우면서 깨달은 점.

이건 테스트야, 실제로 사람이 이렇게 일 할 수 있을 리 없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일의 양이었어요. 30분 동안 방 하나를 정리해야 하는데 단 1분 1초도 놀 수 없음. 정해진 루틴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그 뒤로 줄줄이 타임이 밀려서 밥도 못 먹고 청소를 하게 되는 불상사가...


아침에는 손가락이 곱아서 펴지질 않았기 때문에 따듯한 물에 담가서 펴야 했어요. 와, 그래도 이것도 하다 보니 요령이 늘긴 늘더라고요?? 정말 힘들긴 했는데 은근히 성취감이 컸던 일이었어요. 방 하나하나 클리어할 때 그 쾌감.


그래서 저는 요즘도 호텔을 이용하면 팁을 놓고 나오는 습관이 있습니다. 하하하하하. 그때 제가 방 청소하다가 받았던 thank you clean our room이라는 메시지와 1달러는 잊지를 못 하겠더라고요.


이걸 making bed라고 하는데, 저 이거 잘해요.






두 번째는 이것도 호주에서 했던 카페 알바.

바리스타 자격증도 땄어요
1층과 2층이 나뉘어 있던 매장


여기서도 이건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다를 무한 반복하게 했던 정말 빡센 일이었어요.


1. 돈 계산 (암산)

2. 사람 얼굴 인식

3. 아무리 바빠도 여유로운 척 (미소)

4. 순발력 / 빠릿빠릿함

5. 메뉴명과 가격 기억


제가 있을 때만 해도 이 카페에는 포스가 없었고, 대부분 현금 계산을 했어요. 메뉴 종류도 많았고, 메뉴들의 가격을 빨리 암산 후 계산해서 잔돈까지 챙겨줘야 했죠. 100% 휴먼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서브웨이를 상상하시면 돼요. 초등학교 때부터 수포자였던 저는 눈물을 흘렸어요.


더 골치 아픈 건 단골들은 메뉴도 안 시키고 그냥 자리에 가서 앉아요. 그럼 알아서 메뉴를 갖다 줘야 해요. 주문 시스템도 엉망이라 홀은 정말 넓은데 누가 뭘 시켰는지 셀프로 알아서 기억하고 갖다 줘야 했어요. 테이블 번호판이라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저는 시스템이 잘못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장님은 제가 일이 안 는다고 결국 한 달 후 잘라버렸죠. 제가 못한 것도 반은 사실이었던 거 같은 게, 일머리 빠릿빠릿한 사람들은 정말 타고났더라고요.


카페일을 하면서 배운 점, 나는 (바쁠 때의) 카페 알바에 소질이 없다. 이때 얻었던 인생 경험으로는 종업원분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바쁠 때의 식당 직원들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본다는 점이 있어요. 그게 얼마나 혼이 쏙 빠져버리는 전쟁인지 알거든.




세 번째는 이것도 호주에서 했던 재패니스 쿠진 웨이트리스.

이 일은 경험으로 넣기에 너무 짧긴 하지만 강력했어요. 저는 웨이트리스로 일을 하기로 한 건데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자꾸 호객 행위를 시키는 거예요. 그게 너무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깨달았던 일, 나는 호객 행위가 매우 싫고, 못 한다.







눈물 좀 닦으시고...

가장 특이했던 일

3개는요?


첫 번째는 생체실험 알바 했을 때요. 생동성 알바라고도 해요.

이거 좀 특이하죠. 근데 되게 편한 일이었어요. 신제품 (주로 화장품)을 등 쪽에 바르고 누워있으면 되는 일. 먹는 약 종류는 해보지 않았고요, 주로 화장품 인간 테스터만. 얼마 받았지... 3회 추적 검사 기준으로 15~20만 원 정도 받았던 것 같아요. 왔다 갔다 하는 시간 비용이 컸지 그냥 누워서 자면 되는 일이었어요. 대학생 때 하기 딱 좋았던 알바예요.




그리고 두 번째는 보조출연.

보조출연도 결국 몸 쓰는 일이었는데요, 이것도 생체실험 알바처럼 기다리고 왔다 갔다 하는 게 힘든 일이었어요. 네시 반에 일어나 풀메이크업 후 5시 첫 차를 타고 방송국에 갑니다, 그리고 잠깐의 출연을 위해 모르는 사람들 틈 바구니에서 하루 종일 대기 또 대기. 보조출연 알바를 했던 이유는 당시 제가 관심 있던 분야가 영화감독, 뮤직비디오 감독, cm (commercial movie) 감독이었거든요. 영화에 푹 빠져 있어서 엄청나게 많은 영화를 보고 시나리오를 쓰고, 올라오는 cm를 매일 몇 편씩 보고 분석했었어요.


근데 제가 생각해도 제 성격이나 체력과 저 직업군과 맞을 것 같지가 않은 거예요, 그래서 현장을 좀 파악해봐야겠다 싶었죠. 현장을 파악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현장에 가 보는 것. 그래서 딱 세 번하고 결론을 내렸어요. 영화감독 응, 아니야.




마지막은 온라인 마케팅.

카페를 통해 홍보하고 중간 수수료를 받는 일이었어요. 요즘에는 워낙 흔하지만 제가 대학생일 때만 해도 그리 흔하지 않았다는 것. 하루 한 시간 정도 투자해서 대학생 용돈 치고 시간 대비 괜찮은 돈을 벌었습니다. 이 일을 경험으로 온라인에서 돈을 벌 수 있구나를 깨달았죠!!!


전 회사에서 제휴 마케팅을 직원 대상으로 장려한 적이 있어요. (직원들이 직접 영업하면 일정 부분 수수료를 줌) 아무도 안 하고 있어서 제가 최초로 카페에 홍보를 했고 돈을 벌었어요. 지하철에서 출근 시간 15분 동안 잠깐 글 올리고 그 달에만 100만 원 갸량 벌었었죠.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되니 너도나도 하게 되고 경쟁이 빡세져서 그 뒤로 저는 그냥 그만뒀지만 월 1,000 버는 영업실 직원도 있었어요!! 역시 돈은 영업실이 다 번다더니 대단했어요. 그분 외에도 영업팀이 돈은 다 벌었어. 음... 마케팅 부업 계속하면 좋을 것 같은데 왜 안 할까. 이 일은 별로 재밌는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는.







적성에 잘
안 맞았던 일은요?


의외로 미술학원 강사.


미술학원 강사일을 하게 된 것은 저 스스로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로 (?) 진취적인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패기 넘치던 스물 한 살. 입시하던 시절 그렸던 그림 3장을 돌돌 말아 학원가 투어를 했어요. 사람을 뽑겠다는 구인 공고가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무작정 들어가서, 혹시 강사 안 구하세요? 저 좀 써주세요. 그랬어요.


어떻게 그렇게 당돌했지? 어린 마음의 패기였던 것 같아요. 근데 생각보다 저는 남을 가르치는 일이 쉽지 않았어요, 어려웠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가르치는 역할을 잘 해내고 싶고, 그럴만한 마음의 동기도 충분한데. 이게 생각보다 무거워요, 책임감이라고 해야 하나..... 내 의견이 정답이 아닐 수 있는데, 사람의 방향과 가치관은 계속 변하는 건데.


내가 하는 말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니까, 좋은 것들만 말해야지, 좋은 일들만 이야기해야지 부담이 서게 되고. 아직은 좀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연습 중입니다.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도 저를 단련시키는 과정 중 하나예요.






반대로 적성에
잘 맞았던 일은요?


역시 디자이너 아닐까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렸고 뭔가 만들었으니까요. 디자이너로서 어떤 커리어를 쌓아왔는지는 2탄에서 밝히겠습니다. :)


그리고 하나 더 생각났는데, 호주에 머무를 때 방세를 내지 않는 대신 시트와 수건을 빨고, 건조하고, 접고, 정리하는 런더리 어시스턴트를 한 적이 있는데 이게 정말 잘 맞았어요. 혼자 하는 일이라 편했고 출퇴근도 없고요. 아무 생각 없이 접고 개고 깨끗한 빨래를 보고 있는 기쁨. 단순 노동 최고!! 지금도 집에서 살림하는 걸로 스트레스 풀어요. 청소하고 깨끗이 닦고 어질러진 무언가를 정리하는 것을 참 좋아한답니다.


너무 힘들어서 잡생각이 사라지는 레몬청 담그기





보람 있었던
일은요?





부케를 판 적이 있어요. 지인은 아니고, 지인의 지인분에게요. 누군가의 소중한 날에 쓰일 꽃을 만들고 직접 전달하는 과정, 잊지 못할 기억이에요. 부케의 퀄리티는 진짜 프로들에 비해 매무새가 약하지만 이 부케를 만들려고 꽃 시장을 몇 번이나 가보고, 미리 만들어보고 열심히 했답니다. 사실 저는 온라인 일보다 오프라인 일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님 온라인 일을 계속하다 보니 지겨워서 물성이 있는 일을 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어요.


오프라인 공간 디자인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데 지금 하고 있는 온라인 세상 속의 디자인도 나쁘지가 않아서 둘 다 하면 좋겠다.. 생각 중. 이 글을 2년 뒤 퇴고하고 있는데 지금 직장에서 하는 일이 딱 그 일이에요. 제가 꿈을 또 이뤘군요. :)







저의 직업 실험기 재밌게 보셨나요? 적당한 사진과 영상이 없어서 반쪽짜리 글이긴 하지만 추억을 걷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 2,3,5탄도 쭉쭉 쓸 수 있길 기대와 응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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