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욕의 실체

욕심과 과욕 사이, 그리고 골병

by HJ

욕심. 분수에 넘치는, 과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 좋고 나쁨을 떠나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생겨날 수 있는 기본 심리 욕구 중의 하나. 그것이 욕심이지 싶다. 그런데 마음의 크기와 표현하는 방식에서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욕심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욕구가 아닐까. 이 욕심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양면을 띠고 있다.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 모두를 가지고 있다. 욕심이라고 해서 모두 나쁜 것도 아니고 모두 좋은 것도 아니라는 의미다.




욕심의 부정적인 면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대개 내 소유가 아닌 것을 탐하거나 빼앗아 누리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그런 부정의 욕심을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게 되면, 사회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갖가지 비난과 힐책, 책임 등 수많은 문제가 뒤따르고 만다. 그 때문에 이 사회에서 부정적인 면의 욕심을 경계하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자는 분수를 챙길 줄 아는, 현명한 사람처럼 보인다.


반면에 긍정적인 욕심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대부분 자기 노력으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한다든지, 좋은 결과를 성취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긍정의 욕심은 제각각 이루고 싶은 꿈이나, 자아성취에 큰 동력으로 쓰인다. 사람이 무언가로 성장, 발전하려면 긍정의 욕심은 필요한 요소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긍정의 욕심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마음도 적정선을 넘어서면 되레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고 마니까. 이를테면 과욕이 부른 참사 같은 일. 과욕을 부리다가 가장 흔히 겪게 되는 참사는 아마도 자신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는 것일 테다. 대표적인 것으로, 건강 문제가 아닐는지.




과욕. 그렇다면, 이는 또 어떤 모습이란 말인가. 마음적으로 과욕은 욕심보다 더 지나친 상태로 느껴진다. 그래서 욕심은 종종 부려도 과욕까지는 넘고 싶지 않은 심정이 든다. 하지만 이 과욕이라는 걸, 바로 알아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욕심과 과욕의 경계도 모호해서 구별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감지했더라면, 적어도 그 선을 넘어서려고 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사람마다 타고난 특성도 다르고, 각자가 수용할 수 있는 심신의 깊이도 다르니 욕심과 과욕을 구분하는 그 기준선이 같을 순 없다. 이 때문에 현실에서 그 적정선을 찾아서 살아가기는 실상 더 쉽지 않은 일이다.


삶의 제동을 걸고서 내가 가장 먼저 멈춘 일은 과욕을 버리는 것이었다. 내 심신이 이렇게 망가진 것에 대해서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가장 큰 책임자는 결국은 나다. 결국 내 선택으로, 내 과욕으로, 내 심신의 건강을 잃은 것이니까.


지금껏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니, 성취에 대한 욕심이 컸던 것 같다. 자아성취를 이루는 수단은 주로 일이었고, 꽤 긴 시간을 일에 대한 성취욕에 집착하며 살고 있었다. 아마도 내게 이 같은 삶의 제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도 나는 일에 집착하며 과욕 부리며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십수 년 직장생활을 하며 내가 취했던 방식은 일이 원하는 결과로 풀릴 때까지 붙잡고 있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출근 시간은 정해져 있어도 퇴근 시간은 내게 큰 의미가 없었다. 실제 업무량이 많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일에 대한 완성도가 내 마음에 일단 들어야만 종료할 수 있었고, 그래야만 그다음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체력의 한계를 느끼기 직전까지는 밤샘도, 야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해왔었던 것 같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의 상태는 피로감이 더 오래가고, 자고 일어나면 몸도 개운하지 않고, 머리는 무겁고, 언제부턴가 알 수 없는 복통이나 통증 등도 추가로 생겨났고, 이런 증상 들을 일상처럼 달고 생활했다. 그저 만성피로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지 특별히 큰 문제가 있을 거라고는 의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주위를 둘러봐도 나 같은 증상을 겪는 사람들도 적잖이 있었기에.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현상이나 피로를 제대로 풀어주지 못해서 생기는 피로증후군인가 보다, 싶었다. 또 그들도 그런 생활을 유유하게 넘기고 있는데, 나 역시도 더 유난스럽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없지는 않았었고.


종합 검진 결과를 받고서 한동안 깊은 상념에 잠겼다. 몸 곳곳에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그야말로 종합병원에서 이곳저곳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할 판이었다. 자율신경계 불안정, 면역 수치 저하, 스트레스 위험성 매우 나쁨, 거기에 몸 곳곳에 양성으로 추정되는 다발성 종양들까지.. 나는 왜 이런 결과를 받아야만 했을까. 왜 이런 증상이 생긴 것일까. 결국 스트레스가 문제였던 것일까. 나는 도대체 지금껏 뭘 신경 쓰느라 몸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과욕 부린 대가는 너무도 가혹하게 느껴질 만큼 슬펐고 절망적이었다.




처음에는 나를 둘러싼 환경, 타인에게서 그 원인을 찾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내 생활을 돌아보면서, 나를 아프게 한 진짜 스트레스는 내 마음의 지나침에서 생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면서 내 긍정의 욕심이 너무 지나친 점도 있었고, 주위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 것에도 안일하게 생각하고, 그렇게 선택한 것도 결국 나였으니 말이다.


사람은 과욕을 부릴수록 정신은 더 예민해진다. 또 그러면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는 따라오게 된다. 지금 당장이야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이를 방어해주느라 아프다고 자각하지는 못할 수 있지만, 그렇게 스트레스를 쌓아 놓는 일은 심신 어딘가를 곪게 만드는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멈추지 않고 계속 풍선을 불면 결국 펑하고 터지듯, 어느 순간에 다다르면 어떤 질환명을 달고서 우리의 삶 표면 밖으로 펑하고 터져 나오게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심신이 아프다는 결과를 찬찬히 곱씹을수록, 원망하는 마음보다는 나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져만 갔다. 이런 결과는 결국 누군가의 탓으로 돌려본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않으니까. 병의 가장 큰 원인일 수도 있는 스트레스는 그 누구에게 받았든, 또는 어느 환경에서 받았든, 또는 내 과욕에서 비롯된 것이었든, 스트레스를 비처럼 맞고만 있던 내 어리석음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을까. 그 비를 피하고자 또는 비를 막기 위해서 나 자신을 지켜줄 우산을 스스로 챙겨볼 노력은 시도해보지 않았던 점이 이토록 미안하게 될 줄은 몰랐었으니. 비가 내리면 내리나 보다, 하며 그저 그 비를 맞으면서 지나가야 한다고만 여겼으니 그런 내 안일함이 나를 가장 아프게 했는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슈퍼맨, 슈퍼우먼이 되려고 너무 애를 쓰고 살지는 않았는지, 자아성취라는 욕심이 내가 수용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 예민하게 살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결국 내 건강까지도 위협하고 있지는 않은지... 바쁜 생활 속에서 항상 삶을 돌아보며 살 수는 없다 치더라도, 이제는 비가 내리면 그대로 맞지는 않으려고 한다. 심신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날에는 잠깐이라도 멈춰서 어디가, 어떻게, 왜, 불편한 상태인지를 살펴보는 시간을 주려고 한다. 살아가면서 내리는 비를 피해만 갈 수는 없지만 비에 덜 젖도록 나 자신에게 따뜻한 우산을 챙겨주며 사는 일은 가능하다. 비에 덜 젖도록 챙겨주는 일, 이런 노력이 자기 돌봄이 아닐까.


심신이 지치고 아플 정도로 과욕을 넘지 않는 선을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지 싶다. 과욕은 언제라도 폭풍이 될 수 있으니. 가장 어려운 선이 적당한 선이라고 했던가. 그래도 적정선은 놓지 말자. 비록 긍정에서 비롯된 욕심일지라도, 내 심신이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 적당한 선 내에서 일도, 관계도 풀어가야 좀 더 건강하게 오래 나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