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구속력 '00이니까'

무분별한 역할 놀이에서 벗어나기

by HJ

역할은 사람을 정제시키고 통제하는 마력이 있는 듯하다. 누군가에게 어떠한 역할을 부여하면, 보통은 그 역할에 맞춰서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니 말이다. 직접 선택하지 않은 역할일지라도 사회적인 관습이나 이념에 따라서 최소한 어울리는 구실이라도 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며 살아간다.


자식의 역할로서, 부모의 역할로서, 학생의 역할로서, 선생의 역할로서, 팀장의 역할로서, 팀원의 역할로서, 구성원의 역할로서, 리더의 역할로서, 아내의 역할로서, 남편의 역할로서, 부부의 역할로서, 어른의 역할로서 등등. 이외에도 수많은 역할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좋든, 싫든 여러 역할이 따라붙는다.




여러 역할 속에서 치이는 상황을 마주하면 무슨 역할 놀이를 하는 것도 같고, 등장인물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역할이 욕심이 나서 과욕을 부리기도 하고, 여러 역할에 허덕이기도 하며, 역할에 삶이 지배되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등의 모습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또 상대를 향해 이 역할, 저 역할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쉬이 떠들어대기도 하고, 상대에게 역할을 부여해 그 사람의 고유한 삶을 좌지우지 흔들어 놓는 행위까지 아무렇지 않게 일삼는 사람들도 적잖이 마주하니 역할에 대한 여러 상념과 감정이 생겨난다.


우리에게 따라붙는 여러 역할을 하나씩, 찬찬히 들여다보면 명확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 역할을 생각하는 기준이 달라서 갈등도 많고, 모호하거나 중첩되어 역할을 두고 다툼도 많이 벌어진다. 일반적인 관념을 한두 가지 명분으로 포장해서 서로를 역할에 가두며 공격하는 행위를 보일 때도 많다. 그래서 갈등이 있는 지점에서는 서로가 역할에 대한 책임을 운운하고, 상대를 향해 원망하고 힐책하기 바쁜 광경을 쉬이 볼 수 있다. 가만히 보면 그 상황에서 서로가 힐책하는 용도로 많이 사용하는 표현이 역할에 대해 ‘00이니까’라는 말을 자주 꺼내 쓰는 듯하다.


당신은 부모니까, 자식이니까, 학생이니까, 선생이니까, 직원이니까, 점원이니까, 팀장이니까, 팀원이니까, 리더니까, 대표니까, 남편이니까, 아내이니까, 부부니까 등등. 역할 속에 사람을 가두고 그럴듯하게 인신공격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표현이 돼버린다. 서로를 역할에 묶어 놓고 공격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상대에 대한 책망이 지나치면, 소위 ‘갑질’ 한다는 소리로까지 번지게 되는 듯하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길 수 있는 역할의 올바른 모습은 어떤 것일까. 살아가면서 정말 역할이 중요한 것인지, 우리가 붙잡고 있는 그 역할이 진정 왜 필요한 건지, 필요하다면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신경을 써야 하며, 역할이 가진 자율성은 무엇이며, 어디까지 보장되는지, 그리고 역할이 가지는 권한과 책임은 무엇이며,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등등. 역할을 올바르게 규정하기 위해 수많은 물음이 생긴다. 저마다 역할을 바라보는 기준이 달라서 역할에 대한 해석의 논쟁도 끊이지 않는다. 각자 역할 속에서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자평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다는 걸 자신도 느끼고 있지 않던가.


역할 속에서 살아가는 이 세상. 역할로 자존감이 커지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이 역할 저 역할 속에서 자신의 삶을 잃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사람에게 부여된 여러 역할이 나 자신은 물론 타인과도 인식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이 역할 저 역할에 무분별하게 수용하며 살기에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할은 중요하다. 목적하고 있는 일을 진행하고, 완성하고, 발전해 나가는 데 역할처럼 효과적이면서 효율적인 방법도 없지 싶다. 살아가면서 한 사람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해낼 수도 없고, 또 다양한 역할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같은 세상도 없을지 모른다. 삶을 다양한 역할로 풀어갈 수 있었기에 여러 분야가 탄생하고 여러 기술이 발전하며, 다양성이 존재하는 모습의 세상 속에 살아갈 수 있는 걸 테니까.




그러나 모호한 역할이란 옷을 입게 되면, 문제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서로 다른 인식의 차이와 각자의 다른 기준으로 역할을 바라보기 때문에. 부족해 보이거나, 문제가 있을 때마다 서로를 힐책하며 책임을 전가하는 등의 모습들도 역할의 모호성과 무분별한 인식 상태에서 자주 나타나니까.


특히 역할 중에서 가장 힘든 역할은 책임만 따라오는 역할인 것 같다. 그것은 역할이 아니다. 그것은 포로다. 모호한 명분에 제 기능을 다 할 수 없는 환경에서의 역할의 책임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 고통의 상흔만 짙게 남는다. 그리고 역할 중 에서 가장 나쁜 역할은 권한만 있는 역할이다. 이는 독재다. 그것만큼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다운 삶을 위협하고, 모독하는 일도 없지 싶다. 권한만 행사하려는 역할 놀이에 빠진 사람에게는 미래가 없다.


주변을 둘러보면 좋은 역할과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다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많이 쓴다. 그 마음에 갇혀서 무분별한 역할에서 고통을 받는 이들도 적잖이 본다. 역할도 역할 나름이다. 모호한 역할 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지속하기는 어렵다. 이상만 좇는 모호한 역할 놀이에 그치기 쉽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역할 놀이가 아니다. 이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제 삶답게 살아내는 일이다. 역할에 빠져서 자신답게 살아가지 못한다면 이는 역할놀이라는 굴레에 빠지고 만 것이다. 자기 자신을 잃은 역할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역할을 포기한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