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에 남 인생을 위해서만 살면 지독한 공허함에 빠지네
하루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균등하다. 다만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가 서로 다를 뿐이다. 시간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시간의 이용 방식은 각자의 몫이며 개념상 그 누구도 타인에게 주어진 시간의 몫을 이렇게 저렇게 사용해야 한다고 강요할 권리는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대개 그렇지는 않다. 좋든 싫든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는 누군가로부터 나는 시간을 강요받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는 시간을 강요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또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 속도에 맞춰서 살다 보면 내 몫으로 주어진 그 시간을 무엇을 위해서 사용했는지조차도 모른 채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다.
시간도 소비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을 써야 하니까 말이다. 사회 공동체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의든, 타의든 내 시간의 일정 부분을 떼어서 의무적으로 소비하여야만 한다. 함께 하는 세상에 대한 일종의 공용 시간 이용료를 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온전히 나만의 세상도 아니고,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맞춰가면서 같이 시간을 보태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여기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점은 시간의 배분이다. 사람에게 주어진 삶으로 소비할 수 있는 시간은 유한하니까. 또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따라서는 내 인생의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남 인생의 시간이 될 수도 있으므로. 어디까지 어떻게 시간을 배분해서 사용할지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남 인생을 사는 일에 내 인생 살라고 주어진 시간을 무분별하게 써버릴 수가 있다.
물론 사회와 타인의 시선에 맞춰가며 사는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심신 조차 돌보는 시간을 남겨두지 않은 채 너무 많은 시간을 분별없이 타인에 의해 소비하며 산다는 건, 그리 바람직한 삶의 방식은 아니다. 타인이 요구하는 것들에 맞춰서 살아가는 생활만 챙기면 정작 나다운 모습은 외면하게 되니까.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으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감정이 있다. 공허함이다. 환경이든, 방식이든 나 자신이 추구하는 것과 너무 다른 결을 애써서 맞추려고 하면 부작용은 늘 있기 마련이다. 나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욕구가 모자라면 공허함은 밀물처럼 자주 스며든다. 그렇게 충족되지 못한 공허한 감정은 처음엔 환경과 타인을 탓하며 채근과 원망을 반복하게 되지만, 결국 그 공허함은 외부가 아닌 내면에서 원인을 찾고 수정해줘야 치유할 수 있다.
세속적인 성취를 쫓아가며 살던 내게도 지독한 공허함이 찾아왔었다. 공허함이 너무 싫어서 처음에는 환경과 외부 사람들을 탓하며 채근하고 원망했지만, 그 감정을 직면하면서 깨닫게 된 건 나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소비를 내가 잘못 쓰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음이 원하던 삶의 방식은 외면한 채 얼마나 사회적 가치 조건에 맞춰서 생활하려고 했는지를 알게 됐다. 나를 완전히 집어삼키기 전에 얼른 탈출해야겠다는 강한 위기의식이 본능적으로 발동했다. 공허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의식을 강하게 붙들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환골탈태하는 마음가짐으로 환경을 과감히 바꾸어서라도 나는 시간의 쓰임을 강제로 재조정했고, 지독한 공허함에서 탈출하기 위해 나는 삶의 생활 습관과 방식도 새로이 바꾸기로 마음을 먹었다.
극단적이더라도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나를 둘러싼 기존의 생활 방식과 안위를 잠시 내려놓고 시간의 쓰임을 초기화시켰다. 확실한 변화를 위해선 때로는 이러한 선택도 필요한 듯싶다. 쉽지 않은 전환이었지만, 나를 지독한 공허함에서 질식하게 둘 수는 없었기에 용기를 낸 것이다. 그 덕분의 나는 지독한 공허함에서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일상에서 자주 공허함을 느끼고 지금의 생활에서 정말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든다면, 한 번쯤은 진지하게 지금의 삶의 길을 돌아보는 것이 좋다. 이 감정은 본연의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지 않다는 신호이니까. 공허한 감정이 커질수록 내 마음이 알려주는 길에서 많이 벗어난 걸 의미한다. 자신의 길이 아닌, 타인의 길에 들어가서 살고 있으니 자신의 길, 자신의 시간, 나 자신을 찾으라는 신호다. 타인의 인생에, 환경에서 남 인생을 살지 말고, 내 인생을 살라고, 내 모습으로 살라고 자신의 마음을 알려주는 감정이다.
내 인생 살라고 준 이 삶의 기회를 나 자신을 지나치게 잃어가면서까지 세상과 타인을 맞출 필요는 없다. 개인의 행복과 인권을 보장하는 이 나라에서는 적합한 방식으로 사는 것이라면, 누구도 강요할 수 없다. 위법하지 않고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신을 우선으로 챙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본능이다. 내 본연의 마음을 잃어가면서까지 무조건 맞춰주는 의무와 책임은 어떤 면에서는 무모함이요, 타락이다. 삶을 살라고 주어지는 시간 가족을 위해, 회사를 위해, 사회를 위해, 타인을 위해 더불어 사는 시간이 중요한 만큼, 나 자신도 보듬고 챙겨주는 온전한 내 시간도 중요하다.
일상에서 잦은 공허함에 걸리면, 지독하게 앓게 된다. 벗어내든 바꾸든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내 삶을 살라고 주어지는 시간, 얼마나 잘살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의 몫을 공허함보다는 충만한 삶으로 차곡차곡 채워가며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