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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혜윰 goodlife Oct 26. 2020

환경에 따라 사람은 바뀐다

환경에 따라 삶의 풍경, 모습은 달라진다.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모습. 세상엔 환경에 맞서며 위인 같은 삶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고, 환경에 순리대로 적응하며 자기만족을 찾아가는 사람도 있고, 환경에 완전히 지배되어 병리적인 아픔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맞서든, 적응하든, 지배를 당하든, 그 뭐든 간에 삶의 모습은 환경 변화에 많은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다만, 차이라면 환경을 어떻게 직면해서 대할지, 그 마음의 자세와 선택에 따라 비슷한 환경에서도 서로 다른 삶의 모습을 보일 뿐.     


환경이란 뭘까, 단순히 내가 존재하고 있는 물리적 공간의 구성 요소만 의미할까. 아니다. 사람에게 환경이란 물리적인 요소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에 수없이 상호작용하는 모든 것들이다. 그리고 가장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환경은 물질적인 것과 사람 관계인 듯하다. 어떤 물질과 어떤 사람들로 구성된 환경에 존재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모습, 생활, 나아가 삶의 모습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가만히 보면, 물질이 풍족한 환경에 있어도 사람은 결핍을 호소하고 사람만 좋은 환경에 있어도 사람은 불행을 느낀다. 어느 것 하나만 좋아서는 삶이 행복하지 않다. 사람을 둘러싼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순환하면서 적정한 환경의 분위기가 조성될 때 비로소 안온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듯싶다. 살면서 안온한 환경을 마주하는 일은 행운이다. 살아가면서 최고로 좋았던 시절을 꼽으라면, 잠시라도 그 감정에 머물렀던 그 환경의 분위기가 떠오를지 모른다.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결국 환경에 따라서 그 모습을 달리한다는 생각이다. 신뢰할만한 환경이라고 느낀다면 나쁜 사람이 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신뢰하지 못할 환경에 있으면, 제아무리 애를 써도 좋은 모습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해서 삶의 여러 환경을 겪으며 사람의 모습이 변하는 일에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그다지 의미 없는 일인 것 같다.




한 사람이 일생 겪어야 할 환경은 고정적이지 않다. 실로 수많은 환경 변화에 자극과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으면서 서로의 존재감은 수없이 달라질 수 있다. 어느 동화의 이야기처럼 사람은 누구나 환경에 따라 귀한 백조 같은 시간을 경험할 수도 있고, 반대로 미운 오리 같은 시간으로 경험할 수도 있다.   


떠올려보면, 환경의 요소와 합이 잘 맞는 지점에 있을 때는 여느 시기보다 내 마음이 즐겁고 행복한 에피소드가 넘치던 나날들로 나는 기억한다. 좋은 인연과 좋은 환경이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고 든든하게 받쳐주는 듯했다. 그 환경 속에서는 서툰 몸짓으로 무엇을 시도하고 노력해도 좋게 봐준다는 기분이 가득했다. 백조로 지낼 수 있었던 최적의 환경이었지 싶다. 그때 나를 보듬어주던 크고 작은 애정과 도움이 되는 손길은 내 삶의 성장에 긍정적인 자양분이 되었음을 확신한다. 그 시기에 내 모습은 마음이 풍족했기 때문일까, 그 어느 때보다도 순했고, 세상을 부드럽게 바라보며 착하게 살려고 했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인적으로나 물적으로나 결핍된 환경을 만난 후 내 모습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갈등과 다툼, 미움과 분노 등의 감정이 빈번히 일어났고 그럴수록 내 모습은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졌고, 딱딱해져만 같다. 그때 나는 미운 오리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던 것 같다. 그 감정에 지기 싫었기에 나는 그 환경 안에서 더 악착같이 강한 투쟁을 벌이며 지냈던 것 같다. 마음이 나날이 협소해지는 것을 느꼈고, 내 것을 양보하기보다는 지키기 위한 선택을 했고, 침몰할까 불안해 더 바동 바동거렸지 싶다. 




사람은 환경 흐름에 따라 유기적인 변화를 주며 살아가는 존재다. 환경이 변하면 사람의 의식도, 모습도 바뀐다. 그래서 누구도 변하지 않는 삶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생의 주기를 따라 삶의 환경이 수시로 바뀌니 영원한 백조도, 영원한 미운 오리도 없다. 환경이 어떠한 조합으로 구성되는지에 따라서 백조가 될 수도 있고, 미운 오리가 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지금 마주하는 환경의 분위기에만 젖어서 삶과 자기의 모습을 단정 짓는 생각은 삶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      


여러 환경의 삶을 겪어보며 깨닫게 되는 건 지금 여기 내가 마주하는 환경이 내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환경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수많은 풍경 중 하나다. 환경에 따라서 웃을 수 있으면 울 수도 있고,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면 미움을 받을 수도 있고, 행복할 수 있으면 속상할 때도 있기 마련이다. 결국, 모든 희로애락은 그렇게 삶에 어느 지점에 머물렀다가 지나간다.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으면, 삶에서 잠시 힘든 환경을 겪는 시간이 와도 견뎌내 볼 만한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환경에 따라 삶의 풍경은 달라진다. 어떤 환경은 자기 의지와 선택으로 과감히 바꿀 수 있기도 하지만, 또 어떤 환경은 어느 지점까지 참고 견뎌내야만 하는 일도 있다. 더 좋은 환경으로 바꿔줄 수 있다면 바꿔주는 것이 좋을 테지만, 당장 바꿔줄 수 없다면 환경에 대한 마음의 조절이 필요하다. 환경은 지금의 내가 마주하는 풍경일 뿐이다. 풍경은 지나간다. 그 지나갈 환경에 휩쓸려 그 속에 자신의 삶이 함몰되어 갇혀버리면, 환경이 달라져도 그 감정에서 헤어 나오기 쉽지 않다. 그러면 현실을 바로 마주 보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니 만약 지금 환경의 풍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 풍경도 계절이 지나면 바뀐다는 걸 기억해두자.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지금의 환경에 예민하게 신경을 쓰기보다는 자기의 괜찮은 모습을 다듬는 일에 집중하고 더 좋은 환경, 더 괜찮은 풍경을 만날 수 있는 준비에 그 에너지를 써보자. 기회는 준비해야 붙잡을 수 있는 것이니. 




살아가면서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나는 바람이 생겼다. 나 자신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타인에게도 좋은 환경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이다. 서로에게 좋은 환경이 되어주는 것, 생각만 해도 근사한 일이다. 자연의 순리가 그렇듯, 먹구름이 지나가면 날이 다시 화창한 날이 온다. 그래서 생활 속에서 수시로 마음에 들지 않는 환경을 마주하게 될 때는 나는 마음을 다듬어본다. 지금 더 나은 환경으로 바꿀 것인지, 만약 지금 바로 변화를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더 나은 환경으로 만들어 줄 준비에 마음을 더 집중하자고. 지금의 흐린 나날도 잠시 머물 뿐, 다시 화창 해지는 날을 마주할 기회는 반드시 온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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