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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혜윰 goodlife Oct 26. 2020

치유의 산책길, 그리고 성찰

‘무엇이 나를 이렇게 지치고 아프게 하니’

그렇게 정신 못 차리게 치우쳤던 일 중독된 생활에서 건강의 적신호는 나를 단번에 멈추게 했다. 휴직한 후 물리적 조치로 받은 수술은 잘 됐고 몸의 상처도 잘 아물었다. 그러나 뿔난 마음을 마주하면서 앞으로의 삶은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주마처럼 살라고 삶이 주어진 것이 아닌데, 이기고 지는 결과에 집착해서 경기하듯이 살려고만 했던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전력 질주하는 경주마 기법은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방식이다. 속도의 짜릿한 맛과 몰입에서 오는 쾌감의 순간도 분명 있지만, 그럴수록 장애물에 민감하고 속도에 따라 감정의 기복도 커져 에너지가 빠르게 소진된다. 가쁜 호흡으로 달리니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경주마처럼 살면 세상 만물이 변하면서 발산하는 아름다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만 간다. 삶이 각박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건 어쩌면 내가 경주마처럼 살려고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에너지가 많이 채워져 있을 때 경주마 기법을 잠깐잠깐씩 부스터처럼 적용해서 쓰긴 좋으나, 지속적으로 쓸 수는 없다. 단거리에서나 어울리는 이 기법을, 페이즈 조절이 중요한 장거리에서 사용하면 정상적으로 완주하기는 힘들어진다. 삶은 장거리다. 그리고 삶은 경기가 아니라 여정이다. 경주마 방식대로 계속 살다가는 얼마 못 가서 나는 또 이렇게 퍼지고 말 것이다. 삶의 다양한 아름다움도 발견하지 못하고, 건강하게 완주도 못한 채 말이다. 충분히 예측이 되는 인과응보의 결말이다. 결국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마음의 소리에 나는 귀를 기울였다. 




물리적 수술을 받고 한 달간 누워 지내며 몸의 상처를 돌봤고, 가벼운 산책 정도 해도 된다는 의사의 확인을 받은 후부터 매일 걷고 또 걸었다. 걸으면서 아픈 마음이 더 잘 보였다. 걷는 내내 내 마음이 내는 소리에 집중했고 내 마음에 쌓인 자책과 울분, 아픔을 겨워 내기 시작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아프고 지치게 한 거였니     


매일같이 빠짐없이 서너 시간을 걷고 또 걸으며 내게 질문하고 또 질문했다. 발등이 계절의 볕에 진하게 그을려 오래된 화상 자국처럼 되었지만, 그렇게 매일 산책하며 마음을 돌보니 거칠었던 마음도 조금씩 진정되면서 문제의 실마리를 하나둘 찾아갈 수 있었다.      


이 시기는 내 삶에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되었다. 산책의 정화에 대한 효과를 몸소 체험하며 나를 돌보는 방법을 하나씩 터득해나갔으니 더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산책은 내게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요, 비워내고 아물게 하는 치유의 순간이며, 내 마음을 충전하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




삼 개월 휴직하는 동안, 산책이 내게 가장 중요한 일정이었고 나를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되었다. 내 마음에 염증난 감정은 생각했던 것보다 꽤 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번만큼은 내 감정을 서둘러 달래며 누르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복직이 아닌 퇴사를 선택했다. 눈앞에 잡히는 일에 대한 욕심과 성취욕은 일단 내려놓고, 나 자신에게 더 시간을 주기로 했다. 삶의 한가운데서 나는 왜 지금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지. 나는 진정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앞으로 나는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지.. 내 안에서 내가 직접 느끼고 깨닫는 뭔가를 더 찾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던 것 같다.      


걷고 또 걸으면서 어느 날은 토해내는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주고, 또 어느 날은 조금씩 안정을 찾는 내 마음을 다독이며 위로해 주었다. 또 어느 날은 움틀 거리는 새로운 희망을 느껴서 용기를 주면서 마음을 돌봐주었다. 마음의 산책길은 쓰러진 나를 이렇게 조금씩 다시 일으켜줄 수 있게 해 준 시간이 됐다. 내게 산책은 이제 치유의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스가 되어 있다. 만일 그대도 삶이 지친다면 눕지 말고, 자연 곁에서 편한 걸음으로 걷고 또 걸어보자. 지친 심신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 효과를 경험한 사람들은 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산책만큼은 챙기려고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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