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도 충전이 필요해

편안함이 가벼움으로 바뀔 때

by HJ

사람들 속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 있다. 혼자가 아닌 시간이다. 좋든, 싫든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그들과 내가 함께 존재해야만 하는 사회적 공간의 시간이다. 얼마의 시간을 보내건 간에 일정 시간을 규칙적으로 같은 공간에서 같이 보내야만 하는 그런 시간은 누구에게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학교든, 직장이든, 또는 그 외 어느 단체이든, 그 어느 활동 모임이든지. 그렇게 같이 보내야 하는 시간에서는 사람들의 관계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또한 좋든, 싫든 상관없이 함께 존재해야만 하는 공간이 시간이니까. 기왕이면 함께 존재하는 시간, 좋은 분위기로 보내고 싶은 마음이지 싶다. 대부분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각자의 방식을 자연스레 시도하면서 마음을 나타내고 있으니 말이다.




보통은 서로가 가벼이 눈인사를 건네며 약간의 호의를 표시한 후 분위기를 봐서 통성명을 나누거나 이런저런 가벼운 이야기를 건네 보는 등의 행위를 더해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탐색해보곤 한다. 어떠한 사람인지가 궁금하니까. 이상한 사람인지 아닌지, 같이 지내도 될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등을 각자 나름의 기준으로 탐색 과정을 가지면서 예측한다. 대화나 행동에서 엿보이는 상대의 말투에서든, 습관적으로 나오는 행동에서든, 나이에서든, 취향에서든, 사고방식이든, 또는 생활방식에서든 두루 살펴보게 된다. 그러던 중에 자신과 공감대가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거나, 관심을 끄는 무언가를 느끼게 되면, 그때쯤 자연스럽게 건네는 말이 있다. “서로 편하게 지내요”라든가, ”편하게 대하세요”와 같은 말. 이런 말을 건넨다는 것은 대개 앞으로 좀 더 편안한 관계로 알고 지내고 싶다는 마음을 나타내는 표현일 것이다.


솔직히 나는 이 표현이 말처럼 편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서로가 평안한 마음으로 좋게 지낼 수 있게 노력해보자는 마음의 손짓이다. 아무렇게 또는 무심코 가벼이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평안만 마음으로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관계를 찾아보자는 의미로 건네는 표현에 가깝다.


서로에게는 처음인 관계이니까 어색함이 있으니, 앞으로는 함께 공존하는 이 시간 속에서 서로의 관계가 덜 어색해지도록 노력하자는 의미로 다가온다. 서로에게 불편해하지 않을 정도의 선, 그 방식을 찾아서 이 시간을 편안하게 보내자는 의미로써 와닿는다. 그런 느낌 때문인지 이 표현을 건네는 순간부터, 당신과 내가 앞으로 어떠한 관계를 만들어나갈지 서로를 연결해보는 줄을 조심스럽게 건네는 것 같다. 첫 관문처럼 느껴진다.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첫 관문. 그래서 나는 이 표현을 건네고 싶을 적에 섬세하면서도 조심스러운 마음의 길목 앞에 서 있는 기분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곳저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자주 마주하다 보면, 그중에는 가끔 이 표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 종종 만난다. 이 말이 담고 있는 편안한 관계를 가벼움으로 착각하는 이들이다. 방만한 편안함을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런 표현 직후부터 빨리 편해지려고 하는 습성을 보이기도 한다.


그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대개 정제하지 않은 표현, 불편함을 줄 수 있는 언행을 아무렇지 않게 쏟아내서 불편을 자초하고 만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잘 연결되기도 전에 예의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긴다. 그들의 부주의한 언행은 타인에게 마음의 생채기를 남겨 갈등의 화근이 되기도 한다. 가까이에 두면, 주변이 시끄러울 일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을 연결해줄 선이 금세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선이 사라지니, 관계는 좀처럼 편안해질 수가 없다. 방만한 편안함을 보이는 이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편안함과 가벼움을 구분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라는 것을 모르는 듯하다.




삶이 참 피곤하다고 느끼는 기분은 어쩌면 방만한 편안함을 가진 사람들까지 신경 쓰느라 불필요한 건인지도 모른다. 또 불필요한 일에 신경 쓰느라 마음이 고되고 힘겨운지도 모른다. 사회에서 인맥 관리도 중요하다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시끄럽지 않은 편안한 관계를 나눌 수 있는 사람만 곁에 두고 싶어 진다. 시끄러움을 상대할 만큼, 에너지가 남아돌지도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에너지가 줄어드는 걸 느끼니, 쓸데없이 심신의 에너지를 사용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진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을 사귀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서 마음을 주는 일이 쉽지 않은 건지도 모를 일이다.




편안함이 익숙해진 사이에서도 어느 순간 우리의 마음이 방심한 틈을 타서 가벼움으로 바뀌려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평소 편하게 잘 지내던 관계도 어느 날 뭔지 모를 불편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다면 관계의 편안함이 가벼움으로 전환되지는 않았는지 먼저 서로 관계의 온도부터 살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관계도 충전이 필요하다. 너무 편해져서 그만 실수를 하는 순간들. 이를 잘 경계할 수 있어야, 서로 연결한 선이 끊어지지 않고 오래도록 유지하면서 관계를 잘 이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럼 어떻게 관계를 충전해주면 좋을까. 내 마음부터 점검이 필요한 것 같다. 사람을 대할 때 편안함을 넘어서 방만해지지 않았는지 되돌아보는 일이다. 서로가 지켜야 할 정도의 선이 느슨하지는 않은지, 또는 너무 팽팽하지는 않은지 틈틈이 돌아봐줄 때 관계의 선은 더 유연해지고 지속해나갈 수 있다.


편안함과 가벼움과는 분명 다르다. 편안함과 가벼움의 차이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말이다. 틈틈이 관계도 충전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서로의 안정을 지켜줄 수 있는 적절한 선을 다듬어 가는 것이 진정한 관계의 기술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