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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bysparks Nov 08. 2017

amenity

[아메니티]: 호텔이나 비행기에서 제공하는 편의용품  


에이스호텔의 샤워로브와 드라이어, 이건 가져오면 안돼요



'아메니티'라는 단어가 생소한 사람도 있고, 여행에서 아메니티가 뭐 그리 중요한 요소일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여행을 하면서 아메니티에 집착하는 부분은 생각보다 상당하다. 왜냐하면 아메니티는 '공짜'에 가깝기 때문이다. 집에 가면 사다 놓은 칫솔이 쌓여있어도, 평소에 담요를 덮을 일이 전혀 없어도 왠지 모르게 그냥 가져가고 싶은 기분.


예전 드라마 <프렌즈>에서 친구들끼리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날,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방을 나가려고 로스가 가방을 들었는데 그 안에서 휴지, 칫솔, 수건 등등 호텔의 온갖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던 장면이 생각난다. 메튜가 그런 로스를 보고 엄청나게 비웃던 내용이었다. 프렌즈에서 로스는 고고학 교수였지만, 공짜 앞에선 장사 없음을, 아메니티라는 게 그런 것임을 보여준다.


스페인 바로셀로나 '칙앤베이직 호텔'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아메니티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면, 그래서 다양한 항공기와 호텔을 접하다 보면 자연히 아메니티에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여기에 취향이 강한 사람이라면 아메니티에 집착하는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요즘의 아메니티는 정말이지 모두 '쓸어오고' 싶을 만큼 예쁜 것들이 많아져 문득 이성을 잃기도 한다. 뭔가를 모으기 좋아하는 사람에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취미가 되기도 하고. 호텔이나 항공회사에서 아메니티에 신경 쓴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와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취향'을 존중한다는 것인데, 이젠 여행도 그만큼 취향에 민감해진 탓이다.


생각해보니 나도 비행을 할 땐 호텔에서 종종 두루마리 휴지를 챙겨 왔다. 나는 그리 알뜰한 사람이 아닌데도 그땐 타지에서 혼자 살다 보니 많은 양의 두루마기 휴지를 사는 게 아깝고 귀찮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내가 주로 선호하는 아메니티는 펜(예전엔 거의 모든 호텔 체인의 펜을 모았다)과 성냥(성냥은 웬만한 센스 있는 곳이 아니고는 없었다), 칫솔(이건 집에 놀러 올 손님이나 친구들을 위한 걸로), 가끔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으면 바디샤워나 로션(이건 아메니티가 별로인 다음 여행지에서 쓸 용도) 그리고 잡지를 좋아하니 비치된 책들은 (모조리) 챙겨 왔던 것 같다. 그러 보고니 나도 로스와 다를 게 없었다.


사람들이 아메니티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가 어디까지가 완전한 공짜이고, 어디까지가 아닌가 하는 부분인데 사실 비행기나 호텔에서 (많은 양의) 아메니티를 가져간다고 해서 절도범으로 몰린다거나 구속되진 않는다. 다만 눈을 찌푸리게 만든다던지, 손가락질을 받는 정도, 뭐 더 심하면 그들끼리 만들어 놓은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수준이다. 경찰서에 끌려가진 않더라도 그 호텔이나 비행기를 다신 이용하지 못하는 불편함 정도는 있을 수 있겠다. 어차피 다신 안 볼 사람들의 평가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면 큰 상관은 없지만 아메니티를 정성 들여 만든, 그러니까 우리의 취향을 존중해준 업계 사람들을 생각하면 '적당한 선'이 중요할 것 같다.


그러면 가져가도 되는 아메티니의 범위는 어디까지 일까. 이건 사실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되는데(많이 당한 곳은 가져가지 말아야 할 아이템을 이해하기 쉽게 적어놓기도 한다) 칫솔, 치약, 샤워캡, 샴푸, 로션 정도까지는 가져가도 되는 물건에 해당하지만 헤어 드라이나 유리컵, 샤워 로브, 카펫, 수건, 샤워기, 침대, 의자는 아니라는 것. 비행기에서 주는 물수건과 안대, 슬리퍼 등은 괜찮지만 기내식 식판이나 숟가락, 포크, 구명조끼, 산소호흡기 등은 아니다.


참, 여기서 담요가 애매하다. 나도 담요를 들고 나온 적이 있고, 담요를 가지고 나가는 사람을 눈으로 목격한 적도 많고, 기내 담요를 실생활에서 쓰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지만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든다. 담요도 사실 (가져올 수 있는) 아메니티에 속하지만, 왠지 담요는 '가져왔어'보다는 '훔쳐왔어'가 더 어울린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담요를 가져가도 되겠냐고 절실하게 묻는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인 적은 있고, 몰래 들고나가는 사람을 적발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애매함을 떠나 (비행을 했던 사람으로 충고하자면) 담요는 들고 가지 않는 걸 추천한다. 여타 아메티니와 달리 담요는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썼던 걸 다시 사용하는 물건이다. 세탁은 하지만 결코 깨끗한 물건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아메니티는 우리의 솔직한 본능을 시험하는 물건 같다. 나의 어떤 취향을 알게 되고, 공짜에 대한 열망과 도덕심까지 발견하게 되는.


그래도 아메니티가 정말 좋은 건 거기엔 내 여행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기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많은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무심코 내가 쓰고 있는 펜에 적힌 호텔 이름을 보면 좋았던 그때 생각이 난다. 하룻밤 집에 와 자고 가는 친구에게 일회용 칫솔을 주면서 '그거 그때 태국에서 가져왔던 거'라고 말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두루마리 휴지는 슈퍼에서 내가 고른 게  내 피부와 제일 잘 맞는다는 것과 향이 너무 짙어 버리게 되는 호텔 로션을 발견하면 그다음부터는 아메니티를 고르는 안목도 기를 수 있게 된다.

 

가끔은 호텔이나 비행기에게 미안하지만,

이렇게 많은 추억을 떠올리게 해줄 수 있게 해주는 점에선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tip.

핀에어(+Marimekko), 루프트한자(+Rimowa), 에미레이트 항공(어린이용 선물이 좋아요), 싱가포르항공(+Kiehl's, Bulgari), 에바항공(+Hello Kitty, 화장실 휴지와 이쑤시개까지 키티로 도배), 뉴욕 에이스 호텔(에이스 호텔이 브랜드인걸),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홍콩(+ACQUA DI PARMA),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타이베이(+Diptyque), 파리 마마 쉘터 호텔 Mama Shelter Hotel(자체 제작), 스페인 칙앤베이직chic&basic(기발한자체브랜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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