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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Jan 20. 2018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추억

사운드 오브 뮤직, 잘츠부르크-미라벨 궁전

<사운드 오브 뮤직> 에서 폰트랩가의 저택으로 나온 레오폴츠크론궁(Schloss Leopoldskron) 앞에 이르자 커다란 호수 저편으로 마리아가 고요한 수녀원을 나와 도착한 폰트랩가의 저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눈에 봐도 위압적인 이 집의 외관은 그녀가 바꿔놓기 전의 폰트랩가가 어떤 곳이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아름답고 고요해 보이지만 왠지 차갑고 위압적이어 보이는 저택은 마리아가 처음 마주했던 폰트랩가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군대식의 제식에 길들여져 군기가 바짝 든 아이들과 얼음같이 차가운 폰트랩 대령. 이것이 그녀가 마주한 폰트랩가의 첫인상이었다. 게다가 아이들은 가정교사가 자주 바뀌는 통에 가정교사에게 정을 붙이기는커녕 어떻게 골려먹을 수 있을지 궁리만 하는 말썽꾸러기들이었다.


그러나 마리아가 이런 아이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 날 천둥 번개를 무서워한 아이들이 마리아의 방으로 오자, 마리아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마리아의 매력은 바로 이렇게 아이들과도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소통에서 비롯한다.

“천둥이 왜 화났죠? 난 울 뻔했어요.”
“난 기분이 나쁠 땐 좋은 일만 생각한단다.”
“어떤 거요?”
“좋은 것들이지! 수선화, 푸른 초원, 하늘의 별들, 장미 꽃잎의 빗방울과 아기 고양이의 수염, 주전자와 예쁜 장갑, 잘 포장된 소포 꾸러미들.”
_ ‘ My Favorite Things’ 중에서

노래 하나로 아이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마리아는 폰트랩 대령이 일 때문에 빈에 간 사이 아이들과 노래를 부르며 잘츠부르크 시내를 돌아다닌다. 이건 그녀만의 교육 방식이자, 영화의 대사에 따르면 그건 아이들이 아버지에게서 배우지 못했던 ‘놀이’였다.


이때 그들이 미라벨궁전(Schloss Mirabell)을 비롯해 잘츠부르크 전역을 돌아다니며 부르는 노래가 바로 뮤지컬과 영화사를 통틀어 가장 성공한 넘버 중의 하나일 ‘도레미 송(Do Re Mi)’이다. 이 노래의 선율은 듣고 있으면 함께 흥얼거리게 되는 매력이 있다. 당연하게도 잘츠부르크를 여행하는 동안 내 머릿속에선 이 노래의 선율이 떠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마리아와 폰트랩가의 아이들이 잘츠부르크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도레미송’을 부르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런 장면들을 떠올리고 있으면 자연스레 고전이 가지는 따스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도레미 송’을 부르며 마리아와 아이들이 계단을 뛰어오르던 미라벨궁전의 장소에 서서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보던 15년도 훨씬 전의 나를 떠올렸다. 잘츠부르크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떠올리며 도시로 온 사람들을 과거로 보내고 있었다. 그곳에서 과거는 추억과 회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로 다가와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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