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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Jun 11. 2024

인간의 생각 체계를 본 뜬 존재

BC(Before ChatGPT), AC(After ChatGPT)

최근 입사한 회사는 요즘 가장 핫한 AI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곳이다. 콘텐츠 에디터로 회사의 서비스와 관련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AI에 대해 공부하게 된다. 나로선 평소에도 AI와 인공지능이라는 분야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관심을 갖고 있었던 터라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회사가 팔자에도 없던 농업 기반 회사라 농사를 공부해야 했던 것에 비하면… 훨씬 이해도 쉽고 재미도 있었다.


인공지능, AI란 말 그대로 ‘인공(Artificial)'적으로 만들어낸 지능(Intelligence)이다. 컴퓨터 언어와 전기 신호를 갖고 인간의 두뇌를 본뜬, 인간과 흡사하게 사고하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라고 거칠게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은 물론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기반으로 이루어지지만, 학부 시절 배웠던 언어학 이론도 상당 부분 포함된다. 통사론과 구문론, 화용론 등 인간의 언어행위를 이해하기 위한 이론들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소쉬르와 촘스키 같은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이름들도 등장한다. 잠깐 찍먹 했던 전공인 문헌정보학 수업 시간에 들은 Corpus(말뭉치)와 같은 용어들도 등장한다.


이쯤에서 학부시절 들었던 언어학 수업의 내용을 가만 돌이켜보니, 인간이 언어를 학습하고 사용하는 것에 대한 메커니즘 역시 우리는 아직까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다. 막연한 가설만 존재할 뿐, 인간이란 종족이 행하는 언어활동의 신비에 대해서도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컴퓨터, 인공의 전기 두뇌가 인간의 언어를 학습하는 과정을 공부하고 나니 더더욱 생각해 볼 지점들이 많게 느껴졌다. 어쩌면 인간 언어활동의 비밀이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컴퓨터에게 인간의 언어를 학습시키며 풀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확장됐다.

컴퓨터는 사실 자연어, 그러니까 우리가 말하고 쓰는 언어를 이해하고 답변하는 것이 아니다. 컴퓨터의 언어는 여전히 0과 1로 이루어져 있다. ChatGPT와 같은 AI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이를 흉내 낼 수 있는 것은 순전히 ‘통계적 확률'에 기반한다. 예를 들어, ‘나는 내일 회사를 –’라는 문장에서 빈칸에 들어갈 단어를 학습한 AI는 자연어 말뭉치에서 확률에 기반해 적절한 단어를 채워 넣는 것이다. 여기에 가장 알맞은 단어는 ‘간다’ 혹은 ‘갈 것이다’와 같은 단어일 것이고, AI는 이를 학습을 통해 습득하고 각각의 단어에 가중치를 부여해 확률적으로 채워 넣는다. 물론 세세하게 들어간다면 이는 다소 많은 부분이 생략된 간단한 예시일 뿐이고, 실제로는 훨씬 더 복잡하다.


이 과정을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어 처리(NLP, Natural Language Processing)와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의 기초 개념을 알아야 한다. NLP는 컴퓨터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처리할 수 있게 하는 기술로, 형태소 분석, 구문 분석, 의미 분석 등 다양한 단계가 포함된다. 형태소 분석은 문장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의미 단위인 형태소를 분석하는 과정이며, 구문 분석은 문장의 구조를 파악하는 단계, 의미 분석은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들은 모두 딥러닝 알고리즘을 통해 수행되며, 대규모 데이터셋을 기반으로 학습된다(아마 대부분의 문과생은 여기서부터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할 것이다).


또한, 머신 러닝은 대규모 데이터에서 패턴을 발견하고 이를 기반으로 예측하는 알고리즘이다. 지도 학습(supervised learning), 비지도 학습(unsupervised learning), 강화 학습(reinforcement learning) 등 다양한 학습 방식이 존재하며, 각각의 방식은 데이터의 특성과 문제의 유형에 따라 적절히 선택된다. 예를 들어, ChatGPT와 같은 모델은 대규모 텍스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지도 학습을 통해 훈련되며, 언어 모델링 기법을 사용해 다음에 올 단어를 예측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러니까 ChatGPT는 의사소통을 하는게 아니라 단지 통계적 예측으로 출력값을 내보내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기술적 배경을 바탕으로, AI의 언어 처리 능력을 이해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나라는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 습관도 돌아보게 된다. 인간의 발화 과정도 사실은 저런 알고리즘을 거치는 것이 아닐까? 나라는 인간의 뇌도 결국은 학습을 통해 다음에 어떤 단어, 어떤 문장, 어떤 글자가 나올지를 확률적으로 판단한 뒤 출력기관인 입으로 내뱉고 있는 것이지 않을까? 사실 인간도 의사소통을 하는게 아니라 단지 통계적 예측으로 출력값을 내보내는 게 아니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인간도 일종의 바이오 컴퓨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이전부터 내가 항상 천착해왔던 문제-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을 지녀 인간과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느끼는 쇳덩이로 이루어진 ‘무언가'를 우리는 과연 인간과 어떻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답을 나는 더더욱 내릴 수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결국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사를 관통하는 영원불멸의 존재론적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인간이 기계와 다른 것은 ‘영혼'이 있다는 말 따위를 하고 싶다면 과연 그 ‘영혼'이란 것은 무엇인가? 저런 존재에는 영혼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와 같은 철학적이면서도 답이 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드는 것이다.

AI를 다루는 회사에 온 지 이제 겨우 한 달 남짓이 되었고, 나는 AI를 개발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이 분야를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미래에 다가올 ‘멋진 신세계'가 막연히 두려우면서도 기대된다. 이건 어쩌면 우리가 컴퓨터를 들고 다닐 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스마트폰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 보다도 더 큰 획을 그을 기술의 발전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다고 무슨 AI의 발전이 두렵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단지 상상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함이 불안할 뿐이다.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내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스마트폰이 나온 지 이제 겨우 10년 남짓인데, 우리는 그 전의 세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마 AI에 대해서도 우리는 비슷한 평가를 내리게 될 날이 멀지 않았을 듯하다. “ChatGPT가 등장한 지 이제 겨우 1년 남짓이다. 어쩌면 세상은 BC(Before ChatGPT)와 AC(After ChatGPT)로 나뉠지도 모른다.


과연,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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