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이 내려와 사는 곳

봄철의 티파자 / 티파자로 돌아오다

by 에트랑제

#0 - 들어가기 앞서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와 알제리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1) 알베르 카뮈


알제리에서 태어난 프랑스 작가, 저널리스트, 철학자이다. 1957년 역사상 2번째로 어린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대표작에는 소설 <이방인>, <페스트>, <전락> 등이 있다. 가난한 가정형편에도 기적적으로 학업을 이어갔고, 스승 장 그르니에를 만난 후 그와 평생 교류를 이어간다. 청년기에 공산당을 가입한 적이 있으며, 노동극단을 설립해 연극에 몰두하기도 했다. 첫번째 결혼은 오래지 않아 끝이 났으나, 두번째 결혼은 끝까지 유지되었다. 2차 세계대전시 레지스탕스 조직에 가담하여 나치에 저항하였고, 전세계의 인권활동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었다. 알제리 독립과 관련해 알제리계 프랑스인과 아랍인들과의 공존을 주장하였다가 양측의 비난을 받았다. 1960년 프랑스 파리로 이동하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2) 알제리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세계에서 국토가 10번째로 넓은 나라. 아틀라스 산맥을 기준으로 북으로는 지중해성 기후가, 남으로는 사막 기후를 보인다. 원주민은 베르베르인이나 7세기 이후 아랍인이 국민의 다수가 되었다. 주된 언어는 아랍어와 프랑스어이며, 대다수 국민들은 이슬람을 믿는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며, 우리나라와는 1990년 수교를 맺었다. 카뮈가 살던 시기 알제리는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1954년부터 시작된 끈질긴 알제리 독립전쟁을 통해 1962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1 - 봄철의 티파자


로마 유적과 바다가 서로 어우러진 곳
봄철에는 티파자에는 신들이 내려와 산다. (『결혼 · 여름』, p.13)




"카뮈요? 아... 소설 <이방인>을 쓴 사람이죠?"


내가 카뮈에 관심있다는 말을 하면, 카뮈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대표작 <이방인>을 언급하곤 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 해변에서의 살인 등이 주된 소재인 이 소설보다 내가 사람들에게 먼저 말하고 싶은 카뮈의 책은 다름아닌 산문집 『결혼 · 여름』이다.


"네, 맞아요. 혹시 시간되시면 『결혼 · 여름』을 한 번 읽어 보세요. 카뮈라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구나라는 걸 더 잘 알게 되실거예요."


계속되는 전쟁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그의 중년시절, 이를테면 <전락>과 같은 작품에는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카뮈의 모습이 주인공을 통해 그려지는데, 이 산문집에서는 젊고 역동적이었던 그를 만날 수 있다.


자연에 대한 경외와 감탄이 가득찬 이 산문집은 알제리 수도 교외에 위치한 티파자 Tipasa에서 시작하는데, 나도 티파자를 이 글의 첫 장소로 택했다. 티파자는 수도 알제에서 대략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곳으로, 마치 파리에 간 여행자가 하루 정도의 시간이 남을 때 베르사유를 선택하는 것처럼 알제리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여유가 있을때 이 곳을 찾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알제리는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지 않아 대부분 사람들은 자가용을 타고 이 곳을 찾는다. 나 역시 차를 몰고 이 곳은 찾았는데, 유적지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근처 카페에 들려 따뜻한 차를 한 잔 시켰다. 당시 카뮈는 유적을 둘러보고 나서는 박하 냉차를 마시곤 했는데, 그와는 반대되는 행동. 내가 따뜻한 차를 마신 이유는 단순한데, 지금은 이 곳에서 따뜻한 차만을 팔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 '차가운 초록빛 박하 냉차 한 잔의 환영'에 대해 느껴볼 수는 없는 게 조금은 아쉽다.


카뮈는 등대가 있는 동쪽 루트를 통해 유적지에 진입했지만, 현재 동쪽 진입로는 막혀있어 일반 사람들은 이용할 수 없다. 남쪽에 위치한 정문을 통해 유적지 안에 들어서면, UNESCO 기념표지판이 처음 우리를 맞이한다.


입구에서 쭉 걸어가다 우측으로 90도로 꺾어 바다로 향할 때 양쪽으로 시야를 가리는 숲을 맞이한다. 조금 더 걸어들어가면 점차 숲이 우리의 시야에서 벗어나는데, 그 순간 지중해 바다는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다. 뻥 뚫린 시야를 통해 드넓은 바다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그 곳으로 우리의 몸은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극장의 아직 걷히지 않은 커튼처럼 아직 바다는 숲에 의해 가려져 있다

바다 바로 옆에는 구운 식빵 색을 하고 있는 로마 시절의 각진 기둥들이 열지어 서있다. 알제리에는 이 곳 티파자를 비롯한 많은 로마 유적을 가지고 있는데, 유적의 숫자로만 보면 이탈리아 다음으로 그 수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여행자 입장에서 가장 생생하게 로마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은 그 어느 곳도 아닌 알제리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많은 관광객들과 통제하는 관리인으로 인해 누군가에 떠밀리듯이 관람을 하게 되지 않던가. 그로 인해 유적와 나 사이의 교감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적어질 수 밖에 없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머물 수 있고 또 만져볼 수 있다

티파자를 자주 다녔지만 이 곳에 올 때마다 무언가 새롭게 발견하는 것들이 있다. 날씨가 변할 때마다 바다와 하늘이 주는 느낌이 달랐고, 또 계절에 따라 식물은 변화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아름다운 곳이지만 카뮈의 산문집 첫 장의 이름처럼, 이 곳은 특히나 봄날이 가장 아름답다.

맑은 날 티파자의 모습
흐렸다가 날이 개인 날의 바다


태양 속에서, 압생트의 향기 속에서, 은빛으로 철갑을 두른 바다며, 야생의 푸른 하늘, 꽃으로 뒤덮인 폐허, 돌더미 속에 굵은 거품을 일으키며 끓는 빛 속에서 신들은 말한다. (위의 책, p.13)


카뮈의 이 공간에 대한 묘사는 압도적이라 할 수 있다. 유적과 바다가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곳에서 발 밑 아래를 내려다보면, 돌들의 틈 사이에서 지중해의 파도는 길을 잃고 이리저리 부딪히며 큰 소리를 낸다. 이러한 풍경을 '빛이 끓는다'라고 표현한 그가 경탄스럽다.

돌더미 속에 굵은 거품을 일으키는 파도

우리나라의 들판에 쑥이 흐드러지게 자라듯이 이 곳 지중해 지역에 지천으로 널린 것은 쑥 종류다. 흔히 압생트 absinthe로 국내에 소개된 이 향쑥은 화가 고흐를 통해 유명해졌는데, 카뮈의 경우는 술이 아닌 식물로서 향쑥이 언급한다. 지천으로 널려있는 향쑥 한가운데 해수욕을 마친 그가 누워있는 모습을 잠시 연상해보았다.


또한 양유향이 사방으로 뒤덮여 있다. 국내 번역서에 유향나무로 번역되어 있지만, 양유향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아니면 피스타키오 속에 있는 식물이니 피스타키오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양유향 나무의 잎과 열매

카뮈에게 바다는 바라봐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직접 그 안에 들어가 체험해야 하는 대상이다. 덧붙여 그는 말한다. 전라의 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나는 전라의 몸이 되어 아직 대지의 정수로 향기가 배어 있는 몸을 풍덩 바닷물에 던져 땅의 정기를 바다에 씻어야 한다. 그리고 그토록 오래전부터 땅과 바다가 입술과 입술을 마주하고 열망하던 포옹을 나의 피부 위에서 맺어주어야 한다. (위의 책, p.17)


그의 말대로 티파자의 바다에 전라의 몸으로 뛰어들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실행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 번은 큰 맘을 먹고 티파자 바다에 향했고, 이 날 반드시 바다에 뛰어들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하지만 해변가에 관광객이 있었기에 나는 배를 빌린 후 좀 더 먼 바다로 향했다.


전라의 몸이 되고 싶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수치심을 내려놓지 못했다. 옷을 모두 벗지는 못한채 바다에 뛰어들긴 했지만, 하필 그 때가 겨울이었다. 개인적으로 '찬 것'과 '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나는 깊은 바닷속에서 무엇인가가 내 몸을 끌어당길 수도 있다는 공포를 느꼈기에 '대지의 정수를 씻는다'는 등의 카뮈의 말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그저 양팔을 허우적대면서 다급하게 배 위로 다시 올라왔다. 나를 보고 껄껄 웃기만 하던 선장 아저씨가 내 손을 잡아줬다.

바다로 뛰어들겠다고 마음먹은 때가 하필 겨울이었다

그를 따라 한다면 해수욕을 즐기고나서 소금 맛이 나는 몸을 땅에 뉘어야 하지만, 너무 추웠다. 서둘러 물을 닦아내고 나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이 태양, 이 바다, 젊음이 용솟음치는 이 가슴, 소금 맛이 나는 나의 몸, 그리고 부드러움과 영광이 노란빛과 푸른빛 속에서 서로 만나는 무대장치가 바로 그것이다. (위의 책, p.18)


노란빛과 푸른빛이 서로 만나는 이 곳

그는 예술을 통해 단순하고도 위대한 이미지를 찾는 것이라 했다. 오래된 유적의 공간에서 그가 얻은 교훈 중 하나.

적어도 내 그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나니, 바로 이 유적의 시간에일지라도 인간에 의하여 이룩되는 작품이란, 예술이라는 우회의 길들을 거쳐서, 처음으로 가슴을 열어 보였던 두세 개의 단순하고도 위대한 이미지들을 다시 찾기 위한 기나긴 행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꿈꾸어보지 못하게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안과 겉>, p.32)


내게도 티파자에 대한 이미지가 있다. 돌 틈 사이에 난 들꽃, 유적과 바다가 만나는 모습 등이 그것. 마땅히 그릴 종이가 없어서 이면지에 스케치를 한 탓에 군데군데 의도하지 않았던 선들이 그림에 보이지만, 알제리 생활 초기에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기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2014년 봄날의 티파자




#2 - 티파자로 돌아오다


성인이 되어 알제리를 떠난 카뮈. 그렇지만 유럽생활은 그에게 맞지 않았고, 알제리에 돌아올 때면 젊은 시절 자주 찾던 티파자를 그는 찾았다.

티파자로 돌아가게 될 순간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잘 알지 못하면서도 나는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었다. (『결혼 · 여름』, p.158)


맑다가 갑작스레 한껏 비가 쏟아지고 그러다 아무 일도 없던 듯이 날이 개는 게 이곳의 날씨인데, 그가 그런 이 곳의 특징을 놓칠 리 없다.

변덕이 많은 날씨라 무지개를 한국에서보다 더 자주 볼 수 있다
나는 알제의 비가, 마치 단 두 시간 만에 범람하여 여러 헥타르의 땅을 쑥밭으로 만들어놓다가도 돌연 물이 말라버리는 내 고장의 그 시내들과 마찬가지로, 절대로 그치지 않을 것만 같이 보이다가도 어느 한순간에 뚝 그쳐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았던가? ...(중략)... 세계가 처음 생겨나던 아침에 대지는 필경 이런 빛 속에서 솟아났을 것이다. 나는 다시 티파자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위의 책, p.162)


티파자 가는 길의 바다

카뮈는 티파자에 갈 때면 아마도 오른편에 앉았을 것이다. 그쪽에 앉아야 바다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내게는 그 69킬로미터의 길에서 어느 곳 하나 회상과 감동으로 뒤덮여 있지 않은 데가 없다. 치열했던 어린 시절, 부르릉거리는 버스를 타고 가던 청소년 시절의 몽상들, 아침나절들, 싱그러운 처녀들, 해변, 언제나 힘을 주어 팽팽하기만 하던 젊은 근육들, 열여섯 살 가슴속에 찾아드는 저녁나절의 가벼운 불안, 살려는 욕망, 영광,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늘 한결같은 하늘, 힘과 빛이 무진장인지라 제 스스로도 달랠 길 없어 정오의 무시무시한 시각이면 십자가 모양을 하고 바닷가 모래밭에 바쳐진 제물들을 여러 달에 걸쳐 하나씩 삼켜버리는 하늘... (중략)... 단 한 덩어리로 도려내진 육중하고도 단단한 그 산, 저 스스로 바다로 들어가 잠기기 전에 서쪽으로 티파자 물굽이를 끼고도는 슈누아를 다시 보고 싶었던 것이다. (위의 책, p.162)


물굽이를 끼고도는 슈누아

육중하고 단단한 산, 슈누아에 대한 그의 또 다른 표현도 있다.

옆에 가 닿기 훨씬 전에, 그것은 아직 하늘과 혼동되어 보이는 푸르고 가벼운 수증기 같은 모습으로 멀리서부터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그것은 조금씩 조금씩 짙어져 가고 그걸 둘러싼 바닷물 색깔을 띠기에 이르는데 마치 그 굉장한 충동이 대번에 잔잔해진 바다 저 위에서 갑자기 딱 정지되어버리기라도 한 것 같은 요지부동의 거대한 파도다. (위의 책, p.163)


갑자기 멈춰 선 파도와 같다는 슈누아

그의 작품들에서 대개 슈누아 산은 원경으로 등장한다. 가까이 있는 존재가 아닌, 저 멀리 손에 닿지 않은 존재로서 '갑자기 멈춰 선 파도'가 되거나 혹은 '단단한 등줄기'로 표현될 뿐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 나는 그가 산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을 것이라 보는데, 프랑스에서 건강이 좋지 않아 산에서 요양을 해야만 했을 때도 그는 산을 선호하지 않았다.


싸늘한 저 산맥 위에 흐르는 저녁이 마침내 가슴을 얼음같이 차갑게 하고 만다. 나는 프로방스나 혹은 지중해변 바닷가 밖에서는 이런 저녁 시간을 견딜 수가 없다. (<작가수첩Ⅱ>, p.236)


하지만 산에 비해 바다의 존재는 그에게 절대적이다. 사랑과 찬미의 갈증을 채워주는 바다에 예찬을 멈추지 않는다.


정오에, 지난 며칠 동안의 성난 파도가 물러가면서 남겼음직한 거품과도 같은 향일성 식물의 꽃이 뒤덮인 반은 모래땅의 비탈 위에서, 나는 그 시간이면 기진한 동작으로 간신히 조금씩 부풀어 오르곤 하는 바다를 바라보았고 존재가 말라붙어버리지 않고서는 오랫동안 속여서 달랠 길은 없는 두 가지의 갈등, 즉 사랑과 찬미라는 갈증을 충분히 채우고 있었다. 왜냐하면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그저 운이 없는 것이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이니까 말이다.(위의 책, p.164)


석관에 담긴 향일성의 꽃들
가만히 멈춰섰을 때 그제서야 보이는 작은 식물들도 있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그저 운이 없는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그러나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이다.

로마 유적지 안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는 생트-살사 바실리카 La basilique Sainte-Salsa가 존재한다.

티파자 동쪽에 있는 생트 살자 언덕 위에서는 저녁 속에 무엇인가 깃들여 살아 있다. 아직은 밝은 것이 사실이지만 빛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쇠잔한 기미가 낮의 끝을 예고해 주고 있다. 밤처럼 가벼운 바람이 일고 돌연 파도가 없는 바다가 어떤 방향을 잡으면서 수평선의 한쪽 끝에서 다른 끝으로 거대하고 메마른 강처럼 흐른다. (위의 책, p.167)
바다가 수평선의 한쪽 끝에서 다른 끝으로 거대하고 메마른 강처럼 흐른다고 했던 풍경이 바로 이 곳이다
나는 잊히지 않는 어떤 자유를 거기서 다시 찾게 되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20년도 더 전에 나는 그곳에서 폐허 사이를 헤매어 다니고 압생트 풀 냄새를 맡고 돌에 기대어 몸을 데우고 봄이 지나도 살아남았다가 금방 꽃잎 지는 작은 장미꽃들을 찾아다니며 수많든 아침나절들을 송두리째 다 보냈었다...(중략)... 그때 나는 그야말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15년 후에 나는 지척에 첫 번째 물결이 밀려드는 내 폐허들을 다시 찾아내었고, 씁쓸한 나무들이 뒤덮인 벌판을 가로질러 잊힌 옛 마을의 길들을 따라 걸었으며 만을 굽어보는 언덕들 위에서 빵 색깔의 원기둥들을 다시 한번 어루만져보았다. (위의 책, p.158)
첫 번째 물결이 밀려드는 그의 폐허들은 어디일까
내가 좋아하는 공간으로 대학로 소극장과 같은 공간감을 준다

이제 카뮈의 추모비 La stèle d'Albert Camus에 찾아갈 시간이다.


저기 카뮈의 추모비가 보인다

이 곳은 로마유적지에서 서쪽으로 한참 더 가야지만 만나볼 수 있다. 1961년 4월 알제리에서 카뮈의 친구들이 이 추모비 건립식에 참석했는데, 비석은 티파자의 폐허에서 발견된 페니키아의 묘석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상황은 전쟁이 끝나지 않았던 때라 현장에서는 작업을 할 수 없었고, 루이 베니스티 Louis Bénisti가 알제에서 조각을 했다.


추모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있다.

여기서 나는 사람들이 영광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그것은 거리낄 것 없이 사랑할 권리이다.


거리낄 것 없는 사랑. 그가 말한 사랑에 대해 다른 설명이 있다.


이 세상에는 사랑이란 단 한 가지뿐이다. 여자의 몸을 껴안는다는 것, 그것은 또한 하늘에서 바다로 내려오는 신기한 기쁨의 빛을 자신의 몸에 껴안는 것이다. (『결혼 · 여름』, p.17)
여기에 올 때마다 항상 기분이 좋다. 그가 옆에 있는 것만 같다.

그는 티파자에서 하늘에서 바다로 내려오는 신기한 기쁨의 빛을 자신의 몸으로 껴안는 행위를 했음은 분명하다. 알제리 내에 그의 추모비가 다른 곳이 아닌 티파자에 세워진 나름의 이유인 것.

티파자는 오늘 나의 인물이다. 그 인물을 쓰다듬고 묘사하노라면 나의 도취감은 끝이 없을 것만 같이 여겨진다. 사는 시간이 따로 있고 삶을 증언하는 시간이 따로 있는 법이다. 그리고 창조하는 시간도 따로 있다. 그건 좀 덜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나는 오직 내 몸 전체로 살고 내 마음 전체로 증언하면 된다. 티파자를 살고 그것을 증언할 일이다. 예술 작품은 그 뒤에 올 것이다. 거기에 바로 자유가 있는 것이다. (위의 책, p.20)


나는 오직 내 몸 전체로 살겠다고 다짐해본다


* 참고: 이 곳은 국내에 '티파사'로도 번역되어 있지만, 현지에서의 발음과 표기를 고려할 때 '티파자'로 적어야 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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