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카뮈의 바다

바다로 가는 길 / 그가 수영하던 해변

by 에트랑제
04-309-s.jpg 어린 카뮈가 자주 수영했던 바다. 해변에 별다른 것은 없었고 멀리 선박 몇 척이 보였다.


#1 - 바다로 가는 길

나로서는, 나의 원천이 『안과 겉』 속에, 내가 오랫동안 몸담아 살아온 그 가난과 빛의 세계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안과 겉』, p.17)
자르댕 데세의 북쪽 입구에서 들어오면 마주하는 길. 길 양쪽으로 용혈수가 짙은 그늘을 만들어낸다.




가난하지만 빛만큼은 마음껏 향유하였던 카뮈. 그가 어릴 적 벨쿠르 동네를 떠나 바다를 향해 걸었을 길을 한 번 따라가 보고자 한다.


바다를 가기 위해서는 그의 집에서 나와 그는 동쪽을 향해 걸어야만 했을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북쪽에 지중해가 자리 잡고 있으나 북쪽으로 직진하게 되면 알제항이 나오기 때문에 우회는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의 집에서 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르댕 데세 Jardin d'essai라는 이름의 공원이 있는데, 그는 이 곳을 들러 바다로 향했다. 그런데 상당한 거리의 이 길을 어린 카뮈는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이유는 가난 때문이었다.


그들(카뮈와 친구들)은 전차를 탈 돈이 없었기에 쟈르댕 데세까지 오랫동안 걸을 수밖에 없었다. (소설 <최초의 인간> 중)


공원 입구에 들어서기 전, 도로를 사이에 두고 공원과 마주하고 있는 보자르 미술관 Musée national des Beaux-Arts에 들렸다. 이 미술관은 1930년에 문을 열었으니 그가 어린 시절에 들린 곳은 아니었겠지만, 이 건물 위에서 보는 공원의 경관이 멋지기 때문에 옥상까지 오르는 수고로움을 감수할 만 한 곳이다.


미술관 입구
미술관 옥상에서 바라본 공원의 전경

미술관 구경거리는 옥상의 전경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들라크루아, 르느와르, 모네와 같은 인상파 화가에서부터 고갱, 마티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보유하고 있으니, 미술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다. 한 때 알제리는 인상파 화가들이 가장 여행을 하고 싶어하는 나라에 손꼽히기도 했고, 알제리를 배경으로 하는 다수의 인상주의 그림이 여전히 남아있다.


미술관을 나와 길을 건너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강한 힘이 느껴지는 중심축을 마주하게 된다.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정원에서도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프랑스식 조경양식. 한편 공원 내의 다른 곳에는 오래된 고목 사이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영국식의 자연스러운 공간도 있으니 우리는 딱딱한 직선과 부드러운 곡선을 한 곳에서는 모두 느껴볼 수 있다.


바다에 이르기까지 분수들과 꽃들의 장관을 활짝 펼쳐놓고 있는 넓은 길에 들어서면 그들은 경비원들의 경계하는 눈초리를 의식한 나머지 무심하고 교양 있는 산책하는 사람처럼 점잖은 표정을 지었다. (위의 책)


카뮈가 말한 '넓은 길'. 양측에 높이 솟은 와싱토니아 야자수가 인상적이다.
조성된 지 2세기가 가까워지는터라 고목이 많다
주말에 산책과 휴식을 즐기고 있는 시민들

공원의 면적은 32ha에 도심에 있는 녹지로서는 상당히 큰 크기에 해당된다. 이 안에는 동물원, 온실, 교육장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고, 프랑스의 알제리 침략이 시작된 즈음인 1832년에 지어진 터라 그 오랜 역사로 인해 나무들도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영화 '타잔'의 초기 버전이 울창한 산림을 가진 이 곳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밀림 속에서 아아아~ 외치던 그 장면이 아직 내게도 희미하게 남아있다.


내가 알제리에 막 도착했을 때 주변에 놀러갈 만한 곳을 추천해달라고 현지인 친구들에게 부탁하면, 그들은 자르댕 데새 공원을 추천하곤 했다. 그러면서 내게 그 곳은 영화 '따르장'을 찍은 곳이야라고 부연설명을 하곤 했는데, 나는 그 때 타잔의 불어발음이 '따르장'일 거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터라 대체 무슨 영화를 말한 건지 바로 알아채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어린 카뮈와 친구들은 공원의 동쪽 구역으로 가서 조약돌로 코코넛 열매를 맞춰 떨어뜨렸다고 하는데, 나는 공원의 동쪽에서 코코넛 야자수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열매를 따서 공원 울타리 밖으로 나갔는데, 그 곳에서 만찬을 즐겼다고 한다.


과일 때문에 주머니와 두 손이 끈적끈적해진 채 그들은 정원을 벗어나 바다 쪽을 향하여 달려갔다. (위의 책)




#2 - 그가 수영하던 해변

나의 어린 시절 위로 내리쬐던 그 아름다운 햇볕 덕분에 나는 원한이란 감정을 품지 않게 되었다. 나는 빈곤 속에서 살고 있었으나 또한 일종의 즐거움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무한한 힘을 나는 나 자신 속에 느끼고 있었다. 다만 그 힘을 쏟을 만한 곳을 발견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가난은 그러한 나의 힘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아프리카에서 바다와 태양은 돈 안 들이고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장애는 차라리 편견과 어리석음 속에 있었다. (『안과 겉』, p.18)




자르댕 데세 공원을 빠져나와서 과거 '양의 길 Route moutonnière'이라 불리던 넓은 도로를 건너면 드디어 카뮈는 바다를 만날 수 있었다.

P1570805-s.jpg 사블레트에서 햇볕을 즐기고 있던 아저씨

최근 해안선 개발로 인해 다소 난잡한 상태인 사블레트 Sablette라고 불리는 이 곳에서 그는 벌거숭이가 된 채로 바로 물속에 뛰어들어 헤엄을 치거나 친구들과 물속에서 누가 오래 버티는 내기를 하면서 놀았다. 그들은 코르크로 만든 띠를 매고 물에 떠다니면서 수영을 익혔는데, 이는 예전부터 코르크 생산 및 수출이 알제리의 주된 산업 중 하나였기 때문에 주변에 코르크를 발견하기 쉬웠을 것이다. 지금도 알제리 동쪽 산맥을 따라가다 보면 나무껍질의 일부가 벗겨진 코르크나무를 볼 수 있는데, 와인의 코르크 마개가 플라스틱으로 대체되면서 이 산업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P1570806-s.jpg 수질이 좋지 않지만 여전히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더운 날 저녁 시간이면 알제 사람들은 사블레트로 나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현재 사블레트 지역은 지도에서 보면 서쪽으로 산업항에서부터 동쪽의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수영장에 이르기까지 길게 개발이 진행되고 있어서, 돌과 흙 무더기가 여기저기서 보였다.


당시 카뮈는 해수욕을 끝내고 나면 숨이 턱 끝에 닿도록 뛰어 집으로 돌아갔는데, 집에 돌아온 그를 보고 할머니가 이렇게 질문했다.


"어디 갔다 오는 거냐?"


카뮈가 대답했다.


"친구하고 같이 산수 숙제했어요."


이대로 넘어갈 할머니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카뮈의 머리냄새와 발목 상태를 확인한 후 채찍질을 시작했다.

P1570808-s.jpg 바다, 도로와 나란히 설치된 산책로. 저 멀리 알제의 새로운 상징인 그랜드 모스크의 모습이 보인다.

주로 나의 생활 반경이 알제 남쪽이다 보니 알제 북쪽에 위치한 이 곳을 찾는 일은 잘 없었다. 가끔 해안도로를 타고 운전하면서 이 곳을 지나칠 때마다 풍경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눈치만 채고 있었는데, 직접 둘러보니 생각보다 많은 시설들이 있었다. 관람차에서부터 바이킹, 아이들은 위한 작은 시설물까지.


P1570804-s.jpg 가족과 연인들을 위한 놀이시설물들


현재의 사블레트 해변은 사실 해수욕에 적합할 정도의 수질은 아니다. 몇십 년 전부터인지 심한 오염이 시작되었는데, 이는 인근 엘 하라쉬 하천 Oued El Harrach에서 흘러드는 오염물질 때문이다. 하천의 상류에서 각종 공장 지대에서 산업 물질에 의한 오염이 주된 원인인데, 하수처리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않아 하천수는 제대로 정화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


한 번은 택시 아저씨에게 이 곳의 오염이 시작된 시기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가 말하길 이 곳은 70년대에도 이미 하천이 더러웠다는 대답을 들은 적이 있다. 어린 카뮈가 즐기던 당시는 그나마 수질이 좋았기에 해수욕이 가능했겠지만, 지금은 해수욕을 지양하는 편이 낫다.


일부 책에서는 어린 카뮈가 수영한 해변이 밥 엘 우에드 해변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 해변은 카뮈의 집에서 걸어갈 정도의 거리가 아닌데다 그와 관련된 기록이 보이지 않기에 사블레트 해변으로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게다가 카뮈가 밥 엘 우에드까지 생활반경을 확장된던 때는 그가 성인이 된 이후였다.


나는 바다에서 자라 가난이 내게는 호사스러웠는데 그 후 바다를 잃어버리게 되자 모든 사치는 잿빛으로, 가난은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 후부터 나는 기다리고 있다. 돌아오는 선박들이며 물의 집들, 청명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결혼 · 여름』, <가장 가까운 바다>,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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