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를 타고 학교 가기

전차에서 바라보는 풍경 / 광장에서 학교로

by 에트랑제
학교로 가는 전차 차창 밖으로 카뮈는 저 항구와 바다를 보았다


#1 - 전차에서 바라보는 풍경

카뮈와 그의 친구 피에르(소설 속의 이름)는 말없이 거리로 내려가서 웃지도 않고 전차 정거장까지 걸어갔다. 또 어떤 때는 반대로 서로 쫓고 쫓기며 가방을 럭비공처럼 던지고 받아 가면서 깔깔대거나 달음박질을 치기도 했다.
(소설 <최초의 인간> 중)



동네의 다른 아이들과 달리 다행히 중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던 카뮈. 그가 전차를 타고 만났을 풍경을 만나기 위해 나는 전차의 이동경로를 알아내야 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전차 노선을 찾기 위해 나는 인터넷의 바다를 헤매야 했는데, 알제리 독립 이후 프랑스 본토로 되돌아간 분들이 그들의 개인 홈페이지에 남긴 소소한 글과 사진을 통해 다행히 예전 전차의 이동 경로를 파악할 수 있었다.


당시 전차는 그가 살고 있던 거리에서 출발해 알제 시내로 가는 경로였는데, 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카뮈는 집에서 나와 '연병장'을 따라 달려야 했다. 연병장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실제로 당시 군인을 위한 시설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곳에서는 군인들을 위한 장애물 넘기, 승마 등의 훈련이 이뤄졌다고 한다.


넓은 공터로 이뤄졌지만 1세기를 지나면서 각종 개발을 통해 지금은 높게 솟은 아파트가 '연병장'을 대신하고 있었다.

20세기 초 '연병장'은 점차 공동주택단지로 변해갔다

당시 이 곳에는 서커스도 있었는데,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아마르 서커스 Cirque Amar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서커스단은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데, 다만 장소를 사블레트 해변 근처로 옮겼다.


현대의 아마르 서커스에는 스파이더맨이 등장한다


전기에 따르면, 승객들로 빽빽한 전차는 무스타파 언덕 아래로 곤두박질하듯 내려갔다고 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소년들은 언덕 아래로 질주하는 전차의 속도에 흥분했다. 차장은 무스타파 정류장에서 급브레이크를 걸기도 했다고.


이후 전차는 오른쪽으로 아가 역 Gare de l'Agha을 끼고 클로젤 시장에 이르는데, 벨쿠르의 노동자들 대부분은 사람들로 북적대는 이 교차로에서 내렸다. 알제의 중심부인 중앙우체국 La grande poste에 가기 위해서도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내렸을 것이다.


알제 시내에 가까워질수록 주차가 힘들기 때문에 나는 한참 떨어진 주차장에 세우고 걸어서 아가 역에 걸어올랐다. 정확한 시각을 보여주지 않는 아가 역의 시계. 언젠가 한 번은 오랑 Oran에 가기 위해 이 곳을 이용한 적이 있었는데, 내 손목시계와 역의 시계가 서로 시간이 달라 나는 잠시 혼란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 철도산업은 프랑스 식민시대에도 충분히 발달되었던 터라 카뮈도 지방인 오랑지역 등을 가기 위해 이 곳을 이용했을 것이다.

아가 역의 입구 모습. 사진에서의 시계는 정확한 시각이 아니어서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곧이어 전차는 그 노선에서 가장 경관 좋은 지점에 이르게 되는데, 전차의 승객들은 오른쪽으로 바다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당시 알제 항구에는 유럽 대륙에서 온 증기선과 화물을 하역하기 위해 예인선들이 끊임없이 움직였고, 때로는 승객을 가득 태운 대형 유람선 또는 전함 함대가 해안 저편에 정박하기도 했다.

사진 우측의 건물들 바로 아래에 전차가 지나갔다

이 부근의 경관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해안선을 따라 길게 늘어선 건물들도 여전히 그대로이고, 항구 역시 지금까지 그 기능을 다하고 있으니까. 전차는 사라지고 없지만, 건물로 한정해보면 항구의 부속건물들까지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20세기 초의 알제 도시계획은 계획 자체도 기능적이고 아름답지만 무엇보다 지금까지도 특별한 공사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의 견고하게 시공되었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놀라운 일이다.


당시 전차는 그다음 정류장인 브레송 광장 Square Bresson (지금은 포르 사이드 광장 Square port Said으로 불린다)에 들렀다. 이 광장 주변에는 오페라와 탕통빌 Café Tantonville이라 불리는 과거에 유명했던 카페가 자리 잡고 있기에 한 번 들러보았다.

광장 내부 모습
오페라 건물과 야자수

지붕과 기둥은 사라지고 없는 광장의 야외음악당을 지나 오페라 건물 앞에 섰다. 지금까지도 가끔 있는 음악행사에 이 시설은 사용되는데, 나 역시 클래식 연주회를 듣기 위해 이 곳을 찾은 적이 있다.


오페라 건물 옆에 있는 탕통빌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시키고 나서 카페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이 테라스는 지면보다 살짝 낮아 사람들의 움직임이 더욱 잘 보이는데, 무엇보다 이 카페는 카뮈의 시대에도 오페라와 가까우면서 테라스에서 바다와 광장을 볼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인해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만큼의 인기가 있지는 않다.

탕통빌 카페에서 바라본 모습

당시 전차의 종점은 지금은 순교자의 광장 Place des martyrs이라 불리는 곳으로 과거의 전차 대신에 지금은 지하철역이 존재하고 있다. 이 곳을 찾던 날 현지인 한 명이 내게 퀴즈를 하나 낸 적이 있다.


"이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이 보이죠? 근데 건물들이 북쪽으로 갈수록 디자인이 점점 단순해지고 있어요. 이유가 뭘까요?"


잘 모르겠다는 대답에 그가 설명했다. 당시 프랑스는 광장 남쪽에서부터 건축물 공사를 시작했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을 때의 건물들의 디자인은 화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면서는 재정에 부담이 오자, 그 이후에 지어진 건물의 디자인은 단순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야외음악당 뒤편으로 보이는 건물들의 디자인을 살펴보면, 우측으로 갈수록 디자인이 소박해진다

카뮈의 작품에는 광장 한복판의 오를레앙 공이 말을 타고 있는 동상에 대해 나오지만 지금은 그 동상을 찾아볼 수는 없다. 프랑스의 알제리 정복군 지휘관을 기념하는 동상이 지금까지 남아있을 리가 없다.


광장에서 바다 방향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17세기에 지어진 알-즈디드 모스크 Jamaa al-Jdid라는 작고 하얀 모스크를 만나볼 수 있다.

모레스크 Mauresque 양식의 모스크. 근처에 어항이 있어서 어항 모스크라고도 불린다.
밤에 찍은 모스크의 옆면

벨쿠르 동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그의 세계는 학교를 통학하기 위해 이용한 전차 여행을 통해 그 경계를 확장하게 된다. 때로는 전차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바깥 발판에 겨우 매달려 가기도 했지만 대개 앞이나 뒷 승강장에 선 소년들은 수다스러운 대화를 나눴다.

지금은 전차가 없어지고 도로에는 차만 지나다니게 되었다




#2 - 전차에서 학교로


순교자 광장에는 오랜 공사를 마치고 새롭게 지하철 역사가 개설되었다.

나는 예민한 감각을 지닌 여행자에게는 알제에 가거든...(중략)... 저녁 여섯 시경에는 구베른망 광장에 있는 오를레앙 대공 상 아래로 가서 땅바닥에 앉아 있어 보라고 하겠다(대공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결혼 · 여름』, <여름>, p.128)


내가 광장을 다시 찾은 날은 금요일 오전이었는데, 대개 알제리 사람들은 휴일인 금요일 오전에는 집에서 쉬는 편이라 밖을 다니는 사람들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바다에 가까운 쪽 선원 지구에는 무채색의 아파트이 무심하게 서있었다.


왼쪽 아래에 보이는 아케이드가 카뮈의 등굣길이었다. 우측의 구 선원 지구는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다.


전차 종점인 광장에서 학교까지 약 10분 정도 걸린다. 이 구간을 카뮈와 친구들은 아케이드 아래로 뛰어다니곤 했는데, 아이들은 동방의 각종 물품들이나 기름에 튀긴 디저트, 벌꿀을 발라 구운 즐라비아 판매대 앞에서 걸음을 멈추곤 했다. 하지만 그는 가난했기에 마음껏 간식거리를 사 먹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알제리 디저트 중 즐라비아를 좋아하는데, 이 과자는 주황색 혹은 노란색의 형태를 띤 튀김에 벌꿀을 바른 형태를 가지고 있다. 사실 우리 입맛에는 단 맛이 강한 편이라 한국인들은 즐겨 드시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혹시나 즐라비아라도 파는 상점이 있나 둘러보았지만 금요일이라 대부분의 상점은 문을 닫고 있었다. 카스바 방향으로 조금 올라간 골목길에서 대추야자를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가 있길래 그 안에 들어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진열대를 둘러보았지만 즐라비아는 없었다. 대추야자를 그대로 혹은 짓이겨 만든 다양한 식품들이 있었고, 나는 선물용으로 투구르트에서 난 대추야자 한 박스를 샀다.

각종 식품을 파는 어느 가게의 주인

어린 카뮈는 광장에서 아케이드를 따라 학교를 갔지만, 이 통학로에서 조금 벗어난 밥 아준 가 Rue Azoun 또한 자주 들렸기에 이 곳 또한 잠시 들리기도 했다. 내가 아는 짧은 아랍어 실력으로 Bab은 '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에 나는 이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어떤 오래된 문이 있을 것이라 추정했다.


내 근처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아저씨분들이 계시길래 그런 존재에 대해 물었는데, 그분들은 말하길 그런 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보고 있는 그 '길' 자체를 밥 아준이라고 한다고 했다. 즉, Bab은 문 이외에도 입구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친절하고 유쾌한 알제리 사람들. 밥 아준 거리에는 문이 없다.
밥 아준 가는 양쪽으로 엄청나게 크고 네모난 기둥들이 받치고 있는 아케이드들이 촘촘히 늘어서 있어서 더욱 좁아 보였고 이 동네와 도시의 가장 높은 지대를 연결하는, 회사가 다른 전차가 간신히 다닐 수 있는 공간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더운 날이면 짙은 푸른색 하늘이 마치 타는 듯이 뜨거운 뚜껑처럼 골목을 덮었고 그래서 아케이드 아래의 그늘은 서늘했다. (소설 <최초의 인간> 중)


이 날 하늘이 짙은 푸른색이 아니었다는 것만 빼고는 카뮈의 묘사에 딱 들어맞는 풍경이었다. 전차까지 다닐 정도로 넓은 길은 아니지만 전차가 다녔다고 하니 믿을 수밖에 없다. 또한 아케이드 밑은 뜨거운 햇빛에 달궈지지 않아 걷기에 시원했다.

밥 아준 가의 중앙 부분에서 찍은 사진

밥 아준 거리를 지나 북쪽으로 계속 걷다 보면 카뮈의 학교에 이른다. 당시 교육과정은 중학교 및 고등학교 수업을 한 학교에서 모두 교육받는 시스템이었다. 그랑 리쎄 Grand lycée라는 별칭으로도 불린 알제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이 학교는 카뮈를 비롯해 노벨상 수상자를 2명이나 배출한 명문학교였다. 알제리 독립 이후에는 알제리인들의 국가 영웅 에미르 압델카데르 Emir Abdelkader의 이름으로 학교명은 변경되었다.


도로에 면한 큰 철문은 열려 있었으나, 그 안에 있는 건물의 문은 닫혀있었다. 여기저기 가림막과 공사용 비계가 보이는 걸로 봐서 건물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듯 했다.


건물 정면.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열린 좁은 창문 사이로 우측 방을 살짝 엿보려 했지만, 카뮈를 기념하는 명패가 보이지는 않았다. 그 명패는 내가 있던 쪽의 벽에 걸려있었기 때문이었다.


2018년 이 학교 안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는 건물 문이 살짝 열려 있어서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안을 살피는데 경비원 아저씨께서 웃는 낯으로 나를 맞아주었던 기억이 난다. 아저씨에게 카뮈 얘기를 꺼냈고, 그는 나를 데리고 카뮈의 명판이 있는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건물 안에 들어서면 보이는 모습. 높은 천장이 인상적이다.
카뮈를 기억하는 흔적을 발견하는 즐거움

카뮈 기념명패를 통해 당시 학교 이름이 뷔조 고등학교 Lycée Bugeaud 였음을 알 수 있다. 명패에는 카뮈가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이 학교를 1924년부터 1933년까지 다녔다고 쓰여있다.


학교 옆은 마랑고 정원 Jardin Marengo이 위치하고 있는데, 학교 높은 곳에서는 이 정원이 잘 보였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소설 <이방인>에 나오는 지역 이름도 정원의 이름과 같은 마랑고이다.

마랑고 정원의 내부

정원의 초기 설계는 다소 정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으나,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대부분 유선형의 형태를 보이고 있었다. 중앙의 분수와 점경물에서 정원의 오랜 역사가 느껴졌다.


특히 학년 말 무렵이면 공원의 큰 나무들과 화단, 그리고 무더기로 서 있는 바나나 나무들 위로 저녁 빛이 내리 덮었다. 도시의 소음이 멀고 나직해짐에 따라 하늘은 녹색으로 변해 가면서 긴장이 풀리는 것이었다. 날이 몹시 덥고 창문이 하나 열려 있을 적이면 작은 정원 위에서 마지막 제비들이 내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고 고광나무와 큰 목련 냄새가 흘러 들어와서 잉크와 자에서 나는 더 새큼하고 쌉쌀한 냄새를 적셔 놓았다. (소설 <최초의 인간> 중)


keyword
이전 04화어린 카뮈의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