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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outjina Dec 07. 2022

이토록 사적인 독서모임이라니_Ep.12

올리버 색스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2022년 11월 4일(금) BnJ의 제12회 독서모임.

오랜만에 바로 진행된 독서모임이다. 이제 우리에게도 여유란 것이 생겼나 보다.






※ 본 글에는 일부 스포가 포함돼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B: 생각했던 것보다 재미있고 흥미로웠어. 너는 어땠어?


J: 나도 재미있었어요. 이 책을 읽기 전에 겁을 먹었거든요. 장르도 과학인 데다가 이전에 살짝 책을 열어봤을 때도 어려웠던 것 같아서 겁이 났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어요.


B: 나는 오히려 쉬울까 봐 걱정했어. 어차피 전문적인 영역을 모두 다루지는 못할 테니까 쉽게 에세이처럼 쓰였을까 봐 안 읽고 싶었거든. 그런데 비교적 전문 영역을 쉽게 잘 풀어서 썼고(물론 중간중간에 이해되지 않는 맥락도 있기는 했는데) 여러 사례를 제시해 줘서 재미있게 읽었어.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더 전문영역을 깊게 다뤄줬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 그런데 일반 대중들을 위해서 쉽게 연재했던 글을 묶은 거라서 나름 의미가 있는 책인 것 같아.

 

J: 올리버 색스가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알고는 있었지만, 책을 읽은 적은 없었거든요. 특히 내가 소설 외에는 책을 거의 안 읽잖아요. 그래도 언젠가는 꼭 읽어봐야지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깐 왜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어야 하는지 알 것 같았어요.


B: 맞아. 게다가 소설 속에 나올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마치 소설을 읽는 것 같았어. 그래서 재밌기도 했고, 일부는 완성되지 않은 소설의 일부만 읽은 것 같아서 그 후일담이 궁금해 아쉽기도 했어. 사례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 어떻게 치료가 됐다든지 혹은 병이 더 진전이 된 건지와 같은 후일담이 더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아.


J: 나는 그게 오히려 작가가 의도한 것처럼 보였어요. 병을 가지고 있는 어떤 한 인물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가 아니라 다양한 의학적 사례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리고 이 작가는 환자가 가지고 있는 뇌기능장애를 완치해야 하는 병이 아니라 이런 증상을 가지고 있는 인간도 있다는 것을 소개하려고 하는 목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본인이 환자를 대할 때도 늘 그렇게 대했던 것 같아서 이런 글을 쓴 것이 아닐까 싶어요.


아무리 기묘하고 이상하게 여겨질지라도 이를 '병적'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우리들에게는 그렇게 부를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중에서...


B: 너는 여기 등장했던 사람들 중에 어떤 사례가 제일 기억에 남았어?


J: 나는 쌍둥이 형제 이야기요. 그래서 실제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검색해보고 그랬거든요. 꽤 유명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기사가 많이 검색되진 않더라고요. 그 외에도 '길 잃은 뱃사람', '대통령의 연설' 파트가 인상 깊었어요.


B: 나는 '살인'이란 제목의 사례가 기억에 남아. 본인이 살인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기억을 떠올리잖아. 잔인하게 벌인 살인행각에 아무런 의도도 없었고 의식도 없었다는 것 자체가 의심스럽고 놀라웠어. 근데 그걸 기억 못 하는 게 진실이고, 이후에 다시 기억을 찾았을 때 그걸로 극단적 선택을 하려 할 만큼 고통스러워했다는 것도 놀랍고, 다시 자신의 삶을 찾아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의뭉스러웠어. 그래서 하나의 이야기를 상상해 보기도 했는데, 살인당한 사람이 영혼이 돼서 '날 죽인 걸 잊어버렸다니 참을 수 없어.' 하고 기억을 되돌릴만한 사고가 일어나게 하는 거지. 이런 줄거리를 바탕으로 책을 한 편 쓰거나 영화를 만들어도 재밌겠다 싶었어.


J: 이 책이 상식, 과잉, 이행, 단순함의 세계 이렇게 4부로 나눠져 있잖아요. 그중에서 상실 부분이 가장 재미있었어요.


B: 나는 이행이 재미있었나 봐. '힐데가르트의 환영', '살인'이 그 챕터에 들어 있거든.  상실 부분에 '몸이 없는 크리스티너'를 읽으면서 두렵기도 했어. 실제로는 몸이 있지만, 감각이 사라지면서 몸이 없어지고 있다고 느끼는 거잖아. 근데 이런 질병이 발생하기 전에 어떤 증후나 징후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고를 당한 것도 아닌데,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게 되게 무섭더라고.


J: 작가가 계속 '인간의 영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저도 책을 읽으면서 비슷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쌍둥이 형제 이야기에서도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하길 바라서 둘을 떼어 놓잖아요. 그 결과 그들이 스스로 버스도 타고 어느 정도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됐고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들이 정말로 행복했을지는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말하는 '정상적인 사회인'이 되지 못하더라도 두 사람이 함께하면서, 둘만 아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때,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썩 좋지는 않더라고요.


B: 맞아. 나도 그랬어. 왜 꼭 분리해서 독립시켜야만 했을지 의문이야. 물론 그때는 지금이랑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고 내가 이 쌍둥이의 부모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마음일지 모르겠지만 그 쌍둥이들은 불안했을 것 같아.


J: 내가 지금 이 사회에서 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고 생각한다면, 나 역시 이 아이를 어떻게 사회에 적응하게 만들 것인가가 가장 중요할 것 같거든요? 언젠가 나는 죽게 될 것이고 그럼 부모의 그늘 없이 혼자 살아야 하잖아요. 그러면 나도 그 아이가 원치 않더라도 계속 사회의 일원이 되게끔 막 밀어 넣을 것 같아요.


B: 둘이 함께 사회의 일원이 될 수는 없었을까?


J: 아마 이 쌍둥이가 둘이 붙어있는 한 사회로 들어갈 수 없다는 판단을 해서 둘이 떨어져야 했던 것 같아요.


B: 그래, 그런 생각 때문에 떼어놨겠지. 하지만 둘 사이의 유대감을 동력 삼아 사회에 나갈 수 있도록 도울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어. 나는 가정에서 안정적인 정서를 쌓고 가족끼리 깊은 유대감을 느끼는 아이가 건강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다고 믿거든. 그래서 그 둘의 유대감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자라는데, 하나의 좋은 씨앗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J: 여기서는 결국, 둘이 떨어져서 사회의 일원이 되거나, 둘이 붙어있으면서 사회의 일원이 되지 못하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 같은데, 저는 왜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행복을 빼앗긴 것 같다는 생각을 드는 걸까요. 그래서 생각한 건데요. 사회적 제도가 개선돼서, 꼭 '경제활동을 하는 사회의 일원'이 되지 않더라도 문제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건 너무 이상적인 거겠죠?


B: 실은 나도 너와 같은 이상적인 바람에 도달하긴 했는데, 나는 여기서 좀 다르게 생각한 부분이 있어. 사회의 일원이 된다는 게 장애가 없는 사람이랑 동등한 방식으로 동등한 양의 생산 활동(=경제활동)을 해야지만 삶을 영유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인간(?) 무리 안에 들어가서 어떤 활동이든 하면서(경제활동이 아니어도) 살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거든. '사회로 나간다' '사회의 일원이 된다'는 건 그런 의미여야 하지 않을까? 경제활동은 더 많이 버는 사람이 나누는 거고 여러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게 중요한 셈인 거지. 그런 게 복지사회인 거고.

 

올리버 색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올리버 색스: 그의 생애> 스틸컷 ⓒ 하준사


J: 책 뒤표지에 이 작가를 '우리 시대의 위대한 의사'라고 칭하잖아요.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정말 존경받아야 되는 사람이야. 우리가 흔히 보지 못하는 걸 볼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쌍둥이 형제'를 읽으면서, 이 작가는 분명 남들이 보지 못했던 것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쌍둥이들 대화를 듣고 그들이 말하는 숫자를 적어와서 분석해보고, 알고 보니 그 숫자들이 소수였고, 그래서 본인도 소수를 적어가서 그들의 대화에 참여해보고... 이런 것이 흔히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접근법은 아닌 거 같거든요. 내가 있는 세상에 그들을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세상에 내가 들어가 본다는 것이 대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B: 맞아. 그런 점에서는 정신과 의사가 갖춰야 할 응당 마땅한 자세를 보여주는 의사랄까? 이 사람이 조금 더 뒤에 태어났으면 더 많은 정신학적 이론이 정립되지 않았을까 싶어.


J: 역시나 이 책을 보면서도 사람은 많은 것을 알아야 된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책을 정말 많이 읽은 의사라는 것이 보였어요. 이 책을 계기로 이 사람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어요. '환각', '편두통', '색맹의 섬' 다 장바구니에 담아놨던 책들인데 이제는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B: 이 책의 확장판이겠지?


J: 제목으로 보아 왠지 그럴 것 같아요. 언니가 이 책 읽으면서 느낀 단점은 없었어요?


B: 중간중간 비유가 너무 많아서, 일부는 직관적으로 설명해 줬으면 좋겠다 싶었어. 하지만 그건 이 저자의 스타일이니까 단점이라고까지 할 건 아닌 것 같아. 너는 어땠어?


J: 개인적으로 이런 장르의 글이 얼마나 훌륭한가 아닌가의 기준은 '이 내용은 다음에서 설명한다', 혹은 '이 내용은 어떤 챕터를 참고해라'하는 식의 문장이 얼마나 포함됐느냐에 달렸다고 보는데요. 사전에 기승전결을 완벽하게 구상해놓고 만든 책인 것 같다고 얘기했던 '사피엔스'에는 그 문장이 거의 나오지 않거든요. 반면에 이 책에는 그런 표현이 너무 많았어요.  


B: 근데 이 책의 경우에는 반드시 참고하라는 건 아니었잖아요? 그냥 같은 맥락의 사례를 알려주는 정도 아니었어?


J: 맞아요. 근데 아직 서술하지 않은 이야기를 앞서 제시하기도 하고, 앞뒤로 꾸준히 참고할 사례들을 언급하니까 조금 부담스러웠어요. 물론 '사피엔스'와는 다르게 기고를 했던 글을 엮어서 책으로 출판한 거니깐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해요.


B: 그렇지. 나는 참고로 알려준 사례를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단 생각이 들어서 부담스럽게 느껴지진 않았어.


J: 너무 많은 사례가 있다 보니 누가 누구였는지 나중엔 기억이 잘 안 나더라고요. 거기다 책을 읽다가 중간에 잠깐 쉬었잖아요. 독서모임을 기간에 맞춰 천천히 읽어야겠단 생각에 쉰 거였는데 그때 쉬지 말았어야 했나 봐요. 쉬었다 읽으니 앞의 사례가 기억이 잘 안 나더라고요.


B: 그랬을 수 있겠다. 나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조금씩 읽어서, 흐름을 이해하기에 딱 좋았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한 편의 장편소설처럼 짜인 책인 줄 알았는데, 여러 사례가 나열된 단편집 같은 구성이라 틈이 생길 때마다 한두 편씩 읽기 좋았어.


J: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생각보다 이 책에서 엄청 임팩트가 큰 내용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이 작가에게도 그랬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왜 이 단락의 제목을 책 제목으로 했는지가 의아했는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모든 소제목 중에 가장 흥미를 가질만한 문장이란 생각이 들어요. '쌍둥이 형제', '사라짐' 이런 제목은 사실 그렇게까지 인상 깊지가 않잖아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문장이 가지고 있는 힘이 있어서 이걸로 했나 싶었어요. 사실 저도 이 문장에 사로잡혀서 이 책이 읽고 싶었거든요.


B: 응, 독자의 시선을 끌만한 제목이었어. 그리고 책 내용을 잘 보여주는 제목으로 느껴지기도 해. 제목부터 내용까지 여러모로 흥미로운 책이었어. 또, 최근 들은 몇 개의 강의에서 뇌 영역과 언어기능에 대한 내용이 있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새로 배웠던 내용이 나와서 개인적으로도 더 집중하게 됐던 것 같아.


J: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걸 매 독서 모임마다 느끼게 되는 것 같네요.


B: 올해 특히 그런 것 같아.


책의 표지를 포함해 책에 있는 모든 삽화는 일러스트레이터 이정호 작가의 작품이다. @이정호


J: 나는 '대통령 연설' 부분도 무척 기억에 남아요. 언어 기능 환자들이 대통령이 진지하게 연설하는 방송을 보면서 웃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들은 오히려 문장과 단어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교묘한 말솜씨에 넘어가지 않는 건데, 이것 또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더라고요.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되려 말에 숨겨져 있는 진심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 아이러니했어요.


B: 맞아. 같은 연설을 사람마다 다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점이 흥미로웠어.


J: 언어가 가지고 있는 힘이 정말 대단한 것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음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생각보다 말로 하는 언어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B: 맞아. 나도 그렇게 느꼈어.
그리고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그 모든 순간이 뇌 속에는 저장이 되어 있고 발현되지 않는 것일 뿐이라는 것도 놀라웠어. 신선한 충격이었달까. 나는 정해져 있는 뇌의 저장용량이 있어서 선택적으로 저장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내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까지 모두 다 저장되고 있다는 게 놀랍더라고. 그 많이 정보들이 다 어디로 가고, 나는 요즘 왜 이러는 걸까? ㅎㅎ


J: 살면서 흔히 사람들이 궁금할 법한 질문들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명쾌하게 답해주는 책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피엔스'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으면 인간의 0.1%는 알게 되는 것 같아요.


B: 나는 인간의 0.1%까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유익하고 즐거웠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적당히 지적이고, 재밌었어!


J: 이 정도라면 이 분야의 전문 분야가 아닌 사람에게는 유익한 정보를 쉽고 재미있고 천천히 알려주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올해 책 선정이 꽤 괜찮은 거 같네요?


B: 몹시 동의하는 바야!



B&J의 지극히 사적인 평점

B: 문장력 2.3점 + 구성력 2점 + 오락성 2.6점 + 보너스 1점 = 총 8.1점

J: 문장력 2점 + 구성력 1.5점 + 오락성 2.6점 + 보너스 1점  = 총 7.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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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베로니카 오킨 - 오래된 기억들의 방 : 올리버 색스의 책을 재밌게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미를 느낄 거라는 책 소개에 혹해서 넘겨보게 되는 책! 정말 그럴 수 있을지 도전해 보시길!
J: 오쿠다 히데요 - 공중그네 : 올리버 색스와 같은 좋은 의사를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의 '이라부'를 만나면 된다.

* 이 글은 B의 브런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bbonaw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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