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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outjina Dec 22. 2022

이토록 사적인 독서모임이라니_Ep.13

김훈 - 하얼빈

2022년 11월 28일(월) BnJ의 제13회 독서모임.

이날은 2022 카타르 월드컵, 대한민국 VS 가나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추적추적 비가 온 이날,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독서모임의 장소로 광화문을 선택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생각해 놓았던 독서모임의 장소는 이 날따라 모두 문을 닫았고,

겨우 겨우 찾은 카페에서 마침내 독서모임을 할 수 있었다.





※ 본 글에는 일부 스포가 포함돼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J: 이번 책 어땠어요?


B: 재미있었어. 나는 김훈 작가님 소설 여러 편 읽었는데, 이번 책은 더 업그레이드된 느낌이었어.


J: 맞아요. 언니가 읽으면서 중간에 그 이야기했었죠? 나는 창피하게도 김훈 작가님 소설이 처음이거든요. 사실 김훈 작가님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유명한 작가들의 책을 거의 안 읽었다고 봐야죠. 한국 소설 자체를 워낙 안 읽었으니까... 그래서 난 김훈 작가님이 늘 이렇게 글을 쓰신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B: 아. 늘 이렇게 독보적인 문체를 보여주시긴 했었는데 어쩐지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들이 더 섬세하고 풍부해진 것 같다고 느꼈어. 글에는 느낌 있잖아. 어떤 작가의 글은 말랑말랑하고, 어떤 작가의 글은 날카롭고 하는 식의 것. 김훈 작가님이 지닌 고유의 색이나 느낌은 여전한 것 같아.


J: 김훈 작가님의 문체가 이렇게 좋은 줄 알았다면 이전부터 작가님의 책을 읽어볼걸 하는 아쉬움이 좀 있었어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작가님이라는 생각을 이번 책을 읽고 느꼈어요.


B: 살아 있는 한국의 거장 중 한 분이시지.


J: 내가 국내 작가들한테 관심이 너무 없는 것 같아. 매번 독서 모임을 할 때마다 새로운 다짐이 생기는데, 특히 이 책을 읽고 나서 국내에 유명한 작가님들의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난 아직 황석영 선생님 작품도 안 읽어봤잖아요. 황석영 선생님 것도 읽어봐야겠어요.


B: 내가 이전에 그렇게 한국 작가의 책을 읽자고 할 때는 말 안 듣더니.


J: 이제 읽잖아요! 예전의 나였다면 '하얼빈'도 선택하지 않았을 거예요.


B: 너와 이런 재밌는 책을 읽기까지나 너무 힘들었어. 지난한 시간을 보낸 후에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안타깝다. 황석영 작가님 책도 진짜 꼭 읽어봐야 해.


J: 하지만 난 여전히 이런 재미있는 책 사이사이에 난해함이 필요해요.


B: 나는 오랜만에 김훈 작가님 책을 읽었거든. 고등학교 입시 끝나고 읽고 20살 초반에 『칼의 노래』 『현의 노래』『남한산성』, 이렇게 김훈 작가님 책을 열심히 읽었던 시기가 있었어. 그 이후로는 전공책 읽는다, 일한다, 또 국내 작가는 취급하지 않겠다는 이상한 애랑 독서모임을 해가지고 못 읽었지.


J: 아니...ㅎㅎㅎ 취급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읽고 싶은 해외 작품들이 많았던 거죠~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대표적인 작가가 헤밍웨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헤밍웨이의 글을 번역체로 보니깐 하드보일드의 느낌을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니깐 아! 이런 걸 말하는 거였구나라고 딱 알겠더라고요. 나는 그 문체가 너무 좋았어요. 이게 원래 김훈 작가님의 특유의 문체인 건지, 아니면 하얼빈을 쓰면서 더 담담하게 쓰신 건지 모르겠는데 이 문체가 책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을 했어요.


B: 김훈 작가님이 책 표지랑 서지 정보를 모두 떼어내고 안에 글만 읽어도 작가가 누군지 알 정도로 특유의 문체가 있다고 하잖아. 김훈 작가님 책을 오랜만에 읽었는데 그 사이에 칼을 벼리셨다는 느낌과 펜촉이 더 날카로워진 느낌이 들만큼 재밌게 읽었어. 작가님 이름이 몹시 반갑게 느껴질 정도였지.


김훈작가님의 작품들 『칼의 노래』 『현의 노래』『남한산성』

J: 총평을 어느 정도 했으니까 조금 더 세밀하게 들어가 본다면, 난 이 책이 중립적이어서 좋았어요. 독립투사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보면 우리가 당했던 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줘서 애국심을 자극하고 분노케 하잖아요. 그런데 일본을 악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중점이 아니었던 것 같아서 비교적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읽을 수 있었어요. 언니는 혹시 울컥했어요?


B: 나도 울컥하진 않았어. 나도 너와 비슷한 맥락인데, 보통은 이토를 악인으로 막 몰아가는데 이 책에서는 비범한 사람으로 그려지잖아. 문장 하나를 쓸 때도 긴 사색 끝에 나온 날카로운 문장을 쓰고, 모든 걸 다 간파하고, 말을 신중하게 내뱉고, 한 발 더 앞서서 내다보는 그런 비범한 사람으로 그려서 심중에 품고 있는 생각이 굉장히 장중해 보이기까지 했어. 그래서 그런 부분이 되게 의아했지만, 한편으로 신선하다고도 생각해. 반면에 안중근 의사는 평범한 사내인데 마치 이 업을 타고 태어난 것처럼 그려지는 게 오히려 좀 불편했다고 해야 되나? 그런 감정이 들었어. 그리고 나는 하얼빈에서 이토를 쏴서 쓰러지면 책이 딱 끝날 거라고 생각하면서 읽었거든. 안중근이 하얼빈에 가서 이토를 쏴 죽이기까지 일주일의 여정을 담고 있다고 홍보하기도 했고. 그래서 이야기의 정점이 이토가 죽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토가 죽었음에도 책이 되게 많이 남은 거야. ㅎ ㅎ 일단 거기서 조금 당황했어.


J: 무슨 이야기가 더 남았지? 이렇게요?


B: 응. 그런데 그 뒤의 이야기가 또, 재밌었어.(후에 알고 보니, 작가가 의도한 이 책의 정점은 이토를 쏘는 장면이 아니라, 그 이후 재판 부분이라고 한다.) 그리고 부록에서 안중근의 거사 이후에 남은 사람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객관적으로 풀어서 서술하잖아. 그 부분도 되게 좋았어. 짧게 기록된 사실을 기반으로 인물의 삶에 살을 붙여서 소설을 만들고, 그것을 현실로 다시 끌어와서 그 주변 인물이 실제로 어떻게 살았고 생을 마감했는지를 풀어주는 게 생각을 확장하게 해 주더라고. 그게 이 책의 진짜 핵심인 것 같아.


J: 나도 언니가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안중근과 이토를 우리가 추종해야 하는 인물이나 평생 증오해야 하는 인물로 나누지 않고, 그냥 그 시대 속에 있었던 두 인물처럼 보이게 하는 시각이 흥미로웠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안중근과 이토는 대척점에서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이 책에는 그 둘이 반대에 서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렇게 표현된 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더라고요.


B: 맞아. 나도 그렇게 느꼈어. 둘이 뭔가 좀 비슷한 분위기라고 해야 되나? 저 멀리서부터 같은 평행선을 향해서 달려오는 사람들처럼 보였어.


J: 사실 살다 보면 세상에는 완전한 악인도 완전한 선인도 없잖아요. 근데 여태 우리는 안중근과 이토를 악인과 선인의 대명사처럼 비교하면서 생각하는데, 완전한 악인도 완전한 선인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었는데, 안중근의 거사 이후에 안중근의 아내인 김아려가 잡혀서 조사를 받잖아요. 그때 안중근이 남편인 것을 계속 부정할 때 일본은 심증으로 김아려가 안중근의 아내인 것을 알잖아요. 그때 일본이 김아려에게 '문명한 나라의 법률은 범죄자의 혈족이라 하더라도 범행과 직접 관련이 없으면 처벌하지 않으므로, 안심하고 사실을 진술하라'라고 말하잖아요. 내가 생각했던 일제강점기 때는 만약 독립투사의 가족이 잡혔다고 하면 그 가족에게도 죄를 물어 고문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도 신기했어요.  


B: 이토는 온건파고 이토가 죽은 다음에 세력을 잡은 사람들이 강경파였기 때문에 오히려 그 이후에 물리적으로 핍박을 많이 받았지 않을까? 그래서 이토가 살아 있었더라면 오히려 그것에 맞춰서 일본에 동화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는 사람들도 있잖아. 어쨌든 이 시기는 이토가 집권하던 시기가 막 막을 내렸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


J: 그래서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었어요.


B: 요즘에 책 읽을 때마다 이 멘트가 계속 들어가네?


캐럴을 들으며 진행됐던 연말 느낌이 물씬 나는 독서모임


B: 안중근의 거사 이후에 현실과 연결되는 부분에서 장녀와 차남이 이토를 추모하는 위령제에 가서 사죄를 바란다고 참배를 하잖아. 그것이 일본 정부의 강압에 의한 쇼였는지 진짜 자발적인 거였는지도 모르겠으나 역사적으로는 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 자식들이 개인적으로 느꼈을 때는 어쨌든 나를 버리고 간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장녀 같은 경우는 수녀원에 들어가면서 엄마와도 떨어져서 살았고, 차남은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기억도 안 나는 사람일 텐데 아버지 때문에 계속 핍박당하면서 긴 시간을 보냈을 거잖아. 그런 상황에 진심으로 '그때 아버지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내가 사죄하고 죄를 인정을 하자.'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또 한편으로는 작은 아버지들이 계속 독립운동을 하잖아. 그것을 계속 지켜보면서 심지 굳게 마음을 이어가고 싶었으나 아버지가 한순간에 생을 마감하는 것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꼈을 수 도 있고. 그래서 일본이 원하는 대로 어쩔 수 없이 끌려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 진짜 그들의 진심을 알긴 어렵겠지만, 이런 상황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당대의 현실이 많이 안타까웠어.


J: 그리고 내용이 계속 종교와 맞물려서 이야기가 흘러가잖아요. 제가 느끼기엔 작가가 의도적으로 독립운동가 안중근과 천주교 신자 안중근을 대비시키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간 것 같아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리고 이 시대를 살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안중근의 행위를 '살인'이라고 말할 수 없잖아요. 하지만 유일하게 천주교에서 그를 죄인이라고 말했잖아요. 그리고 같은 천주교 안에서도 명동성당의 뮈텔 주교와 안중근에게 세례를 했던 빌렘 주교 사이에도 의견 대립이 있고. 결국 뮈텔 주교는 반대하지만 빌렘 주교가 마지막으로 안중근의 고해성사를 듣기도 했고요. 그래서 일부러 종교적인 이야기를 넣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종교적으로 안중근은 죄인이지만, 안중근을 죄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B: 그래서 여기 책에도 나오잖아. 종교인들 내부에는 아주 복잡한 사정이 있거나 아니면 아주 심플한 사정이 있는 것 같다고.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아.


J: 종교가 안중근의 행위를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보게 만든 것 같아요. 우리는 한 번도, 안중근이 살인을 했지만 살인자라고 생각한 적이 없잖아요. 하지만 종교적으로 그가 받아들일 수 없는 죄인이었다는 것이 참...


B: 한국 사람의 입장에서는 안중근을 우리의 동료라고 생각했을 때 바라는 시각인 거고, 종교라는 건 사실 어느 쪽의 시각으로 치우쳐 바라보지 않는 게 맞는 거니깐 아주 간단하게 본다면 종교의 법도에 따라서 죄인이라고 칭하는 게 그들에게는 맞는 거지. 근데 아주 복잡하게 생각을 한다면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거고. 그 내막의 사정을 누가 알 수 있겠어.


J: 이런 종교 이야기 덕분에 안중근이라는 사람과 안중근의 행위를 다른 시각으로도 볼 수 있겠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B: 맞아. 또 한 가지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있었어. 내가 최근 내 상황에 비춰, 아이 엄마들에게 조금 더 집중하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더라고. 그래서 김아려가 몹시 안타까운 거야. 또, 안중근도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면 셋째를 갖지 말았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 그런데, 그럼에도 안중근이 떠났으니 김아려가 느끼기에 그게 얼마나 모질고 가혹하게 느껴졌을지, 또 심문을 받으면서 남편은 죽었다고 이야기할 때 그 마음을 조금 더 가깝게 생각해보게 되더라고.  그런데 김아려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는 것이 아쉬웠어. 일부로 남기지 않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있다면 꼭 보고 싶더라.


J: 나는 특히 좋았던 부분을 표시해 놓았었는데, 275페이지부터 나오는 안중근의 처형 장면 있잖아요. 3월 25일 황제 순종의 생일날, 3월 26일 안중근 처형식 날, 3월 27일 부활절, 이 세 날이 모두 하루 차이로 일어난 일인데, 이 계절을 느끼는 그들의 감각이 너무 달라요. 안중근의 봄은 '안개비가 내리는 봄', 순종의 봄은 '산수유와 매화가 피어 화창한 봄', 뮈텔 주교의 봄은 '햇살이 비쳐서 스테인드글라스에 영롱한 빛이 나는 봄'으로... 이게 실제 이들의 봄이었겠죠? 이걸 보면서 가슴이 너무 아팠는데 대비되는 상황을 오열하고 화내면서 감정을 전하는 게 아니라 날씨를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극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이렇게 쓸 수 있어야 최고의 작가라는 칭호가 붙는 거겠죠?


B: 나도 그 부분이 몹시 좋았어. 좋았어.


대련의 봄은 바다 쪽에서 왔다. 봄의 발해만은 부풀어 보였다.
바다의 비린내가 안갯속에 풀려서 감방 안까지 스며들었다
- 하얼빈 중에서...


J: 이번 책은 '작가의 말'이 본문보다 더 좋았어요. 그리고 작가에 말에 쓴 작가가 의도했던 바를 내가 책을 읽으면서 다 느꼈던 것 같아요.


B:  맞아. '작가의 말' 좋았지. 그런데 나는 작가의 말에 대한 내용을 인터뷰에서 들어서, 책을 읽을 때는 후기가 더 인상 깊었어.


J: 안중근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었지만, 인물의 무게 때문에 오랜 시간 쓰지 못했던 것을 이제야 쓰신 이 무거운 마음도 느껴졌어요. 작가님은 독립운동가 안중근보다 그냥 안 씨 집안의 아들 안중근의 이야기를 쓰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B: 미술사학과 출신인 내 '남의 편'도 같은 말을 하더라. 참고로 그는 이 책의 결말을 보지 못했어...



B&J의 지극히 사적인 평점

B: 문장력 2.8점 + 구성력 2.8점 + 오락성 2.8점 + 보너스 1점 = 총 9.4점

J: 문장력 2.8점 + 구성력 2.9점 + 오락성 2.7점 + 보너스 1점  = 총 9.4점


함께 보면 좋을 작품 추천!

B: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 - 뮈텔 주교 일기 : 제삼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제강점기의 이야기
J:  영화 '동주' : 시인 윤동주에 대해 담담히 써 내려간 한 편의 시와 같은 작품

* 이 글은 B의 브런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bbonaw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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