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boutjina Feb 01. 2023

이토록 사적인 독서모임이라니_Ep.14

아니 에르노 - 단순한 열정

2022년 12월 12일(월) BnJ의 제14회 독서모임.

자유부인 B와 함께 한, 오랜만에 파티 같았던 독서모임.

늦은 밤까지 B의 집에서 이어졌던 이날의 모임은 12시가 돼서야 겨우 마무리되었다.

역시 모임에는 와인이 있어야 해.





※ 본 글에는 일부 스포가 포함돼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B: 이 책 제목과 표지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이 책 커버는 차분한 열정 같아.


J: 그래요? 나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열정은 불타오르는 건데 단순하다는 건 메말라 있는 듯한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단순한'과 '열정'이 역설법처럼 느껴졌어요. 마치 차분한 열정처럼요.


B: 나는 오히려 진짜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그 열정 하나에만 몰두하고 빠져드는, 말 그대로 정말 '단순한 열정'이라고 느껴졌거든.


J: 오~언니는 단순하게 열정적으로 빠지는 걸 생각했고, 나는 열정 자체가 단순하다는 것처럼 느낀 것 같네요.


B: 그랬나 봐. 너랑 '문학동네' 편집자들이랑 코드가 맞나 보다. 표지의 사진은 편집자가 고른 사진일 테니까.


J: ㅎㅎㅎ... 언니는 민음사 세계전집 스타일이에요?


B: 모르겠다 ㅎ 근데 문학동네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 뭐 표지는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를 수 있지. 그 속은 어땠어?


J: 우리가 '하얼빈'을 읽고 쉼 없이 바로 이 책을 읽었잖아요. 국내소설을 읽다가 해외소설을 바로 읽으니깐 번역 때문인지 초반에 몰입이 잘 안 됐어요. 전형적인 번역체의 세계문학 소설 문체인 것 같더라고요. 문체가 좀 이질적이었다고 해야 될까?


B: 아마도... 김훈작가님이 워낙 독보적인 문체를 가지고 계시는 분이니깐 그 책을 읽고 난 다음이라 더 두드러지게 그렇게 느낀 것 같아. 나는 오히려 이 작가의 문체는 평이했다고 생각했어. 특색 없이 그냥 무난하고 평범한. 그래서인지 이 작가만의 특출 난 문체보다는 평범한 것에 대한 '아니 에르노'의 풀이 방식이 주목된다고 할까. 사건이나 내용을 묘사하는 투는 덤덤하지만 세밀하게 표현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어. 실제로 몇 권의 책을 낼 동안 무명이었다가 '단순한 열정'을 내고 나서 반향을 일으켰다고 하더라고.


J: 그리고 또 초반에 몰입이 안된 이유가 있었는데, 책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완벽한 소설인지 아예 정보 없이 읽었잖아요. 그래서 소설인지 수필인지 좀 혼란스러워서 초반에 더 안 읽혔는데, 초반부를 지나니까 금방 읽혔어요.


B: 나도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완전히 100%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었거든, 그런데 화자가 계속 '나는'으로 문장을 시작하고 남한테 계속 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쓰여 있어서 그냥 누군가랑 만났던 그 시기를 회상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고. 자전적 에세이인가? 하고 말이야. 그래서 처음에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었을 때는 화자가 젊은 여자일 거라고 상상하며 읽었어. 그래서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져 있는 상대 남자가 기혼자라는 걸 보고서 '그래. 젊은 여자가 기혼자한테 매력을 느낄 수 있지.'라고 생각하기도 했지. 근데 나중에 애들이 나오고 어쩌고 어쩌고 하는 걸 보고서 이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에 소설처럼 살을 덧대거나 각색해 쓴 거 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화자를 중년의 여성으로 바꿔 상상하게 됐어. 마지막쯤 보니, 아니나 다를까, 본인의 이야기라고 밝히고 있더라고.
사회적 이슈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자기의 감정을 끝까지 써서 책으로 출간하는 용기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지. 근데 이걸 계기로 또 다른 젊은 남자와 5년간의 사랑을 나누고 그 사랑을 기반으로 한 책이 또 나왔다는 것을 보고(이번엔 남자가 씀), 또 다른 의미에서 이 여자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어.


J: 저는 다른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들과 비교해서 봤을 때 이 사람이 노벨 문학상을 받을 만한 작가인가?라는 생각이 좀 들었어요. 물론 내가 '아니 에르노'의 책을 이 책 한 권만 봤기 때문에 이런 평가가 적절하다고 할 순 없겠지만, 어떤 작가의 책은 대표작 한 권만 읽어도 '대단하다.', '노벨 문학상을 받을만하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아주 지극히 개인적으로 그렇게 느껴졌어요.


B: 비슷한 맥락이긴 한데, 난 오히려 '그래서' 심박하다고 생각했어. 왜냐하면 이전에 우리가 노벨 문학상 수상작을 읽었을 때는 어렵고 잘 안 읽히거나, 난해하거나 어려운 주제였잖아. 좀 대중적이지 않았지. 그래서 '우리는 노벨 문학상이랑 안 맞나 봐.'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는데, '아니 에르노'의 책은 어렵지 않고 편안하게 소통하면서도 그 안에 섬세한 심리 묘사들이 들어가 있어서, 표현하고자 하는 모습이나 장면, 생각들이 어렵지 않게 잘 전달이 된 느낌이었어. 그래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책이 무조건 어려운 것만은 아니구나 생각하는 계기가 됐지. 또 어려운 게 꼭 문학의 질이 높고 낮음의 기준이 될 수는 없겠구나라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됐고. 나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수상작이 신박하게 느껴졌어.


J: 나도 노벨 문학상에 꼭 어려워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런데 이거 하나만으로는 이 작가가 어떤 작가인지 파악하기에는 좀 어려웠어요. 이 책 자체로만 평가한다면 좋았지만요.  


B: 응응, 나는 이 작가의 다음 책이 궁금해지더라.


J: 저도요. 이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었어요.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 / Ill. Niklas Elmehed  Nobel Prize Outreach


J: 이게 사랑이야기잖아요. 물론 쌍방의 사랑으로 나오긴 하지만, 저는 이 여자의 사랑이 짝사랑에 가깝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화자의 심정이 굉장히 공감 됐어요. 내가 어떤 사람을 짝사랑하는데 그 남자의 마음은 나와 같지 않을 때, 혼자 속앓이 하고 마음 아파하는 부분이 공감되더라고요. 그런데 이 사랑이 불륜이라는 점을 알게 되면서 시각이 좀 달라졌죠. 사실 불륜이라는 것도 기준이라는 것을 세우면서 금단의 영역이 되잖아요. 그렇다면 그냥 같은 사랑이라고 말해야 할지, 아니면 형태는 같은 사랑이지만 다르다고 말해야 할지... 참 어렵네요.


B: 어렵지. 나도 어렵다.


J: 그래서 이 여자의 사랑을 계속 부정하면서 읽고 싶었어요.


B: 남의 사랑을 부정하기까지...? 그런데 짝사랑이든 짝사랑이 아니든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되는 것 같아. 근데 상대방의 말을 들어보지 않아서 그가 얼마나 이 여자한테 빠져 있었는지 우리가 모를 뿐이니까. 혼자만 열렬히 사랑한 것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


B: 이건 좀 다른 얘긴데, 이것이 불륜이고 사회적 제약이 있다는 것을 여자도 알잖아. 그래서 정말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말하지만 남자가 곤란해질 수 있는 상황을 일체 만들지 않고. 와이프랑 마주친다든지, 따로 선물을 보낸다든지, 집으로 편지를 가져가게 한다든지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는 것. 그런 걸 봤을 때 온 마음을 다 드러내놓고 하지 못해서 이 사랑 안에 더 매몰돼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어. 사회적 제약이나 현실의 문제 따위를 논하지 않는 평범한(?) 관계였다면 더 감정을 드러내면서 관계를 이어갔을 텐데. 커플링을 하고, 커플룩을 입고 과시하면서 말이지.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분출되지 못한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래서 더 사랑이라는 감정이 집중하게 되지 않았나 싶더라고.


J: 프랑스는 불륜에 대한 생각이 우리나라랑은 조금 다르잖아요. 비교적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연애문화가 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처음 이 책이 프랑스에서 출간됐을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았을 것 같아요.


B: 작가가 이 책을 냈을 때는 사회적 지위라는 걸 갖추고 있을 때이기 때문에 조금은 파장이 일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명성에 흠이 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표했다는 것. 그래서 이슈였던 거 아닐까?


J: 맞아요. 내용보다는 이것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는 것에 파장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이런 글을 낼 수 있는 것을 보면 이 작가도 예술가이긴 한가 봐요.


B: 정말 용감한 사람이구나. 대~단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J: 이 부분은 예술의 영역인 것 같아요.

크리스마스를 만끽할 수 있었던 독서모임

J: 이 책 빨리 읽혔죠?


B: 맞아. 거기다 이 책 짧잖아. 100페이지가 채 안되던데?


J: 아! 그리고 읽으면서 궁금했었던 게 본문의 문단 사이의 간격이 일정하지 않은데, 이 간격이 의미하는 게 뭔지 궁금했어요.


B: 나는 시기적 차이에 따라서 나누거나 마음이 변화하는 그 단계로 구분한 거라고 생각했어.


J: 그래요? 뭔가 일정하지 않은 것 같은데, 원작을 그대로 반영한 건지 아니면 번역을 하면서 문학 동네에서 지정한 건지가 궁금해요.


B: 그러게. 원작이 궁금하긴 하다.


J: 인상 깊어서 메모해 놓았던 구절이 있었어요. '자기가 겪은 일을 글로 쓰는 사람을 노출증 환자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노출증이란 같은 시간대에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 하는 병적인 욕망이니까.' 여기서 말하는 노출증이 요즘 SNS를 하는 사람들의 심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B: 음~ 그럴 수 있겠다.


J: 이 글을 쓸 때는 SNS가 유행하기 훨씬 이전이니깐 그것을 겨냥하면서 쓴 것은 아닐 텐데, 표현이 마치 요즘 SNS를 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B: 그 얘기 들으니까 또 그렇게 보이네. 굿 포인트!


J: 그리고 또 하나가 있는데, 이건 정말 공감이 돼서 찍어서 친구들한테도 보내줬었거든요. 주인공이 남자와 헤어지고 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내가 마치 글을 쓰듯이 피렌체에 나의 열정을 세겨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면서 여행에서 했던 모든 것을 그 사람과 함께 했던 것 같다는 말을 하는데 내가 예전에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친구들과 미국 여행을 했을 때인데, 언니도 너무 잘 알겠지만 그때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잖아요. 친구들이 여행이 끝날 때쯤, 우리는 3명이 여행을 했는데 내가 그분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 마치 4명이서 여행한 기분이 든다는 말을 했어요. 그게 마치 이 상황과 너무 비슷하더라고요.


B: 그래서 네가 짝사랑했을 때 감정을 여기에 이입한 거구나?


J: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한 이야기를 읽으려면 그냥 피렌체로 가기만 하면 될 것 같다'는 말이 나오는데, 나도 뉴욕에 가면 그 사람을 좋아했던 내가 떠오를 것 같아요. 그래서 마치 나의 이야기 같았어요.


B: 되게 너한테 잘 맞는 책이었던 것 같아.


J: 아니... 꼭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공감이 되는 부분이 좀 있었어요. 나의 삶이 온통 그 남자로 가득 차 있는 듯한 느낌이 내가 겪었던 것과도 너무 비슷하니깐... 근데 이 감정은 누구나 겪어 본 감정 아닐까요? 이렇게 공감하면서 읽었는데, 노벨문학상 받은 건 공감을 못한다고 했네요...? ㅎㅎㅎ 나 이 책 좋았나 봐.


B: 만점 줘야 될 것 같은데? 올해 최고의 책이 되는 거 아니야? ㅎ
나는 이 부분이 되게 좋았어. 52페이지에 이 사람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서 써놨거든.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모든 일이 오로지 한 사람을 향해 이루어졌던 그때에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페이지부터 반과거 시제로 쓴 것도 그런 이유이고. 근데 이게 좋은 감정도 있겠지만 그때 내가 이제 경험했던 그 고통까지도 여기에 담고 싶어서 그런 것이라는 것을 읽으니깐 '그래 그런 마음으로 썼을 수 있겠다.'라고 공감이 가고 이 책의 본질이 여기 있구나라고 생각했어.


J: 제가 느낀 이 책이 좋았던 또 하나의 포인트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듯한 순수함이 보인다는 거였어요. 저는 누군가에게 보일 거라고 생각하고 쓰는 글과 나 혼자 비밀 일기장에 쓴다고 생각하는 쓰는 글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김한민 작가가 쓴 클래식 클라우드 '페소아'를 엄청 좋아하는데요. 페소아 연구에 몰두한 전문가이면서도 남에게 보일 것을 의식해서 과시하듯 글을 쓰지 않았다는 게 느껴져서요. 그런데 이번에 아니 에르노의 글을 읽을 때도 비슷한 것을 느꼈어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순수하게 감정을 써 내려간 것 같더라고요.


B: 그렇지만... 책에 보면, 대중의 반응을 굉장히 의식하고 윤문했다고 적혀있잖아 ㅎ


J: 대신, 이 책이 동시대에 이게 읽힐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잖아요.


B: 난 그 지점까지 철저히(?) 계산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ㅎ


J: 그렇죠... 그런데... ㅎ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게 느껴졌어요.


B: 그렇게 보이게끔 쓰는 것도 이 사람의 능력인거지 ㅎ 나는 윤문하기 전, 날것의 원고, 진짜 초고를 한 번 읽어보고 싶다. 적나라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해. 어쩐지 크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


J: 난 이미 많이 공감을 했어요...


B: 뭐지, 저 아련함은? 아! 마지막 문장도 너무 좋았어.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무척 공감하면서 읽었어. 그래서 이걸 책으로 남긴 게 아닐까? 이 사랑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사치이었으니까 그 사치의 순간을 남기고 싶어서.


J: 사실 이 책을 높은 점수를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이야기하다 보니깐 공감 가는 데가 많았네요?


B: ㅎㅎ 내가 언제 이런 사치를 해보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사치스럽게 평점을 줘 보자고.



B&J의 지극히 사적인 평점

B: 문장력 2.5점 + 구성력 2.1점 + 오락성 2.9점 + 보너스 1점 = 총 8.5점

J: 문장력 2.5점 + 구성력 2점 + 오락성 2점 + 보너스 1점  = 총 7.5점


함께 보면 좋을 작품 추천!

B: 필립 빌랭 - 포옹 : 그녀의 다음 사랑이 궁금하다면..!
J: 파울로 코엘료 - 불륜 : 노골적으로 쓰인 불륜의 또 다른 소설. 한 때 좋아했던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

* 이 글은 B의 브런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bbonawow)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