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하여 고민했던 시절이 있다. 당시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실제 하는 것보다 의미 있으며 심오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삶의 의미를 찾는 건 자아를 갖고 있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습성이지만, 분명한 답을 정의하기 어려운 질문을 이어가면 반복되는 일상이 무용하게 여겨질 수 있다. (이때, 피상적인 감정에 사로잡히거나 회의주의가 팽배한다.)
정신이 건강할 때의 나는 원론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내 안에서 찾지 않았다.
창밖을 내다보면 별다른 이유 없이 해가 뜨고, 날이 따뜻하면 꽃이 핀다. 추위가 더해지면 나뭇잎의 푸른색은 채도 짙은 갈색으로 바뀐다. 내가 내 삶에 깊이 몰입할 때에는 저 꽃이나 나무처럼 시기마다 어여쁘게 피어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뚜렷한 까닭을 덧붙이지 않고도 일상의 바퀴는 원활히 구동되었다.
가령 연애 감정에 두근거릴 땐 그가 왜 좋은지, 근거를 찾지 않았고 우리의 미래에 어떤 건설적인 변화가 있을지 의미를 찾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때로는 하릴없이 밤하늘의 별을 보다가 태양이 역류하며 만든 새벽 장관을 눈에 담으며 날을 샜던 적도 있다. 손 놓고 탄성을 내뱉느라 시간을 낭비했지만 행복했고 그것으로 되었다고 여겼다. 그 풍경을 본 것에 뚜렷한 목적은 없었다.
문득 심해와 같은 감정에 매몰될 때는 현재에 충실한 것에 시선을 돌린다.
닫힌 문을 열고,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계절이 변화하면 깊어지는 하늘의 말간 자태에 시린 눈을 비벼가며 감탄이 나왔다. 대단한 명분 없이도 다채로운 빛으로 변하는 자연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왜,라는 의문에 사로잡혀 있느라 지금 시간을 손 놓고 흘려보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창밖 전경이 그러하듯 시기마다 나 자신에게 열중하여 충만한 색으로 물들어갔으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