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라면은 비행기에서 먹는 게 최고
간다. 0.5일 차-사육당한다 비행기
항상 비행기를 탈 때, 돈을 많이 벌어야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에도 장시간 비행이기 때문에 다리 걸이까지 사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앞 좌석 간의 간격이 좁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역시 돈 벌어서 좋은 좌석을 타야 하는데….
탑승 시 늘 거쳐가는 비싼 좌석들과 거기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항상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곤 했다.
철이 들고나서는 창문 쪽에 앉는 일이 없다.
오히려 화장실 가기 좋은 복도 쪽에 앉는다.
비행기에 있으면 누구랑 가도 대화를 많이 안 하게 된다.
비행기의 소음이 커서 대화도 잘 안될 뿐만 아니라, 다들 잘 때 속닥 속닥 대화도 좀 눈치 보인다.
비행기에서는 잠도 잘 못 잔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는 내내 좌석 앞쪽에 패드에 나오는 온갖 영화를 즐기면서 기꺼이 기내식에 사육을 당해준다.
입이 짧아서 다 먹지는 못하는데, 맛보는 것은 좋아한다.
계속 앉아 있어서 소화가 잘 안 되기 때문에 맛만 찔끔찔끔 보지만
모든 식사에 간식까지 빼놓지 않고 챙겨 먹는 편이다.
예전에는 영화를 보면서 땅콩을 먹는 재미도 있었다.
기내에서 주는 그 짭짤한 땅콩을 나중에 대형 마트에서 판다는 것을 알고 몇 번 사 먹었지만
왜인지 그 맛이 나지 않았다.
역시 비행기에서 먹어야 하나?
예전에는 땅콩을 달라고 이야기했는데, 왠지 내 나이 또래라면 누구나 아는 땅콩회항 그 사건 이후로는
그 항공사가 아니고 다른 항공사에서도 땅콩이 아니라 “간식”이 있는지 물어보게 된다.
앞에서 말한 동생(이 정도면 내 동생 출연료 줘야 할 것 같은데 ㅋㅋㅋ)이 승무원 출신이라,
최대한 승무원들을 괴롭히지 않는 조용한 승객이 되고 싶었다.
K-장녀의 특징인 걸까? 생각해 보면 나는 남에게 기대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민폐가 될 행동은 극도로 싫어한다.
누가 나 때문에 뭔가 일을 더해야 한다거나 하는 상황도 좋아하지 않는다.
이건 삶 전반적으로 그렇다.
일을 할 때도 누군가 도움을 주는 것도, 내가 도움을 받는 것도 선호하지 않는다.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스스로 해보고 싶어 한다.
집에서도 부모님이 뭔가 도움을 주시려고 하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정말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할게, 그전까지는 그냥 혼자 하게 놔둬줘.
지금 이렇게 하는 건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가 할 일을 방해하고 있어"
엄마는 이렇게 말하는 나를 보고, 정 없는 지지배, 부모 마음도 몰라준다.
이렇게 이야기하시지만 나는 어쨌든 스스로 해보고 부딪히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누군가 도와주는 것이 나의 짐을 덜어 주는 경우도 있지만,
길지 않은 인생에서 내가 직접 해볼 기회가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친한 선배가 “세나가 인디언 이름을 가진다면 저 거친 들판에 홀로 우뚝 선 일거야"라고 이야기를 한다.
오은영 선생님이 보면, 엄마의 육아 방식이나, 애정 결핍 등등 이야기를 하셨겠지만
나는 뭐든 스스로 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고, 상대나 주변에도 “성인인데 알아서 하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면 승무원들이 동생 같은 생각이 들어서 최대한 일거리를 만들어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불 꺼진 비행기에서 영화를 보며 컵라면을 참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서울에서는 컵라면 잘 사 먹지도 않는다. 6개들이 한 박스를 사두면 친구들이 와서 먹고 간다.
“3년 만의 여행인데, 다 누리고 갈 거야! 컵라면까지도” 그래서 기꺼이 이번 비행의 첫 번째 컵라면 주문 승객이 되었다.
다들 참고 있다가, 누군가 수줍게 첫 번째 라면을 주문하고, 냄새가 쫘악 하고 퍼지면
파란 불들이 깜깜한 비행기 안에 수놓아지고, 빨간 컵라면들이 줄지어 이동을 하게 된다.
내 좌석을 담당한 승무원도 집에 가서 언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아니, 어떤 여자가 비행기에서 간식이랑, 라면이랑, 음료를 계속 시켜서 앉아서 쉴 틈이 없었다니까? 이거 다리 부은 거 봐ㅠㅠ"
암튼 갑갑한 비행기 안에서 이것저것 먹고, 움직이지 않고 1kg쯤 살이 쪄서, 더 갑갑하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예쁘게 사진을 찍고 싶어 기껏 간헐적 단식해서 뺀 살, 비행기에서 이것 저것 먹고 부어서
다시 통통해진채로 여행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