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아얌 Feb 04. 2023

머피의 법칙 대신 '새옹지마'

마음 근력 키우기 1

새로 산 하이브리드 차가 방전됐다. 문을 열려하리모컨 키가 안 먹힌다. 열쇠 구멍도 어딨는지 안 보이고... 그러고 보니 열쇠도 본 적이 없다.


'내 손이 닿으면 오작동되는 것이 기계'라 불안이 있었다. 출신결혼을 한 이유 중 하나이다.


문송한(문과라 송구한) 나는 공손한(공대라서 지식 앞에 겸손한) 남편에게 전화해 카톡으로 서로 사진과 동영상을 주고받았다.


  "리모컨에서 열쇠를 빼내어서 핸들 아래쪽 구멍에 살짝 꽂아. 왼손으로 자동차 핸들 왼쪽을 앞으로 당기고 오른손으로는 핸들 오른쪽  껍질을 병뚜껑처럼 위로 따라고!"


가솔린 차에 비해 뭔가 복잡하다. 힘으로 막 하다가 뭐라도 부서질까 부들부들 조심조심해보고 또 해보다 딸칵, 소리와 함께 만세! 성공이다.



독서 모임에 읽고 갈 책을 빌리러 도서관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공간에 맞춰 책들을 기증하거나 나눠주거나 팔아야 했다. 그리고 또 책을 사고 정리하다 넘치면 또 책들과 이별했다. 그렇게 몇 번을 하다 언제부턴가 소장하고 싶은 책만 사기로 했다. 한 번 읽을 책은 빌리기로 했다.  읽고 소장하거나 지인에게 선물하고 싶어 진다. 그러면 또 산다.


도서관에서 대출 가능 싸인이 뜨자마자 달려간다. 인기 있는 책들은 늘 '대출 중'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영하의 날씨에 곱은 손을 호호 불며 남편이 알려준 매뉴얼을 따라 문을 열었다. 자동차 안에 뒀던 오리지널 매뉴얼 북은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핸들 아래 배터리 표시를 누르자 불이 들어온다.


가솔린 차에 비해 문을 따는 건 고생이지만 배터리 충전은 눈껌짝할 새이다. 고생한 보람과 하이브리드 차의 문제를 내 손으로 해결했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에 남편의 전화가 걸려온다. 안드로이드 연결이 돼서 핸들을 잡은 채 통화를 하니 편리하다.


"잘 가고 있어?"

"그러엄. 오늘 신기술 하나 배웠네. 땡큐."


'새옹지마. 그래, 방전 덕분에 솔루션을 알았잖아.'


이렇게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났기에 망정이지 문송한 내가 방전 차량을 어찌 생시켰겠는가.


즐거운 마음으로 도서관에 도착, 현관으로 씩씩하게 들어가는데 뭔가 이상하다. 열림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문이 안 열린다. 손을 눈 위에 올리고 안을 들여다본다. 불이 꺼져있다.


출처: 픽사베이, Tobias Heine



'아차! 월요일이지.'


관공서가 월요일 휴관이란  깜빡했다.


내가 좋아하는 A식당은 토요일에 쉰다. B식당은 일요일에 쉬고.  피부과는 목요일, 가정의학과는 금요일에 쉰다. 저마다 제각각의 휴일이 있다. 나의 뇌는 섬세해져만 가는 이 시대의 저마다 다른 규칙을 헷갈려한다.


양가 부모님께서는 본인들의 음력 생일에 축하를 받고 싶어 하시지만 그건 내게 제곱미터 표시를 평수로 환산하는 일처럼 번거롭다. 카톡을 아예 안 하는 지인도 있다. 문자로 보내야 답하는 이가 있고 문자도 질 안 보는 이도 있다. 카톡보다 전화를 해주길 좋아하는 이도 있고 누구는 카톡은 짧게 해야 좋아하고 누구는 상세 설명을 요하기고 한다. 도서관 월요일 휴관을 깜빡한 이유는 이처럼 기억해야 좋은 디테일이 너무 많아서....


그래도 그렇지. 차 문에 이어 도서관 문까지 머피의 법칙인가? 오늘은 두 번이나 닫힌 문 때문에 낭패를 봤으니....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기다 도서관 옆 하천을 따라 산책을 하게 됐다. 물소리에 귀를 씻으며 물오리들이 족욕을 하듯 발만 담그고 떠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책은 못 빌렸지만 겨울 산책의 맛이 혼자 먹는 군밤 맛처럼 쏠쏠했다.


'그래, 이것도 새옹지마라 치자!'


지난번에 도서관으로 갈 때는 신차 구입 후 첫 '아픔'을 겪었다. 주차장 통로의 차들을 피해 핸들을 돌리다 기둥에 내 차의 휠베이스가 살짝 찌그러진 것. 덕분에 '덴트'라는 용어를 알게 됐다. 며칠 후엔 친구가 미간에. 보톡스를 맞았다기에 이 용어를 한번 써먹기도 했다.


"으응, 이마를 덴트 했구나."




한때 나는 매일 밤 그날을 반성하고 나를 책망했다. 타인에게는 관대하고 내게는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미덕이고 수양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점점 작아지는 나를 발견하고 밤의 '일과'를 바꿨다. 내가 나를 위로해 주는 시간으로....


머피의 법칙이란 용어가 떠오르는 날, 새옹지마란 말로 그걸 대체한다. 모든 날이 완벽할 순 없다. 구겨지면 펴고 구겨지면 편다. 덴트 복구는 셀프로!

출처: 픽사베이, Janusz Walczak

작가의 이전글 멋진 루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