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컵 접기의 추억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웬일인지 우리 집에 어른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어떤 잔치 같은 상황이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른들은 비빔밥을 해서 나눠 드시고, 맥주도 한잔씩 하신 거 같았다. 어렴풋이 크고 길고 갈색의 병이 생각이 난다. 그리고 보리차 색깔의 무언가 담긴 컵들도 생각이 난다.
나는 구석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글자를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주 수월하게 읽고 있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나는 백과사전을 좋아했다. 일단 많은 그림과 다양한 소재들이 잔뜩 있는 그 구성이 맘에 들었던 것 같다. 물론 어린이용 백과사전이었다. 여기저기를 펼치면서 어른들의 잔치 속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종이 접기라는 항목이 눈에 띄었다. 종이를 접어서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하나의 예시가 있었는데, 그건 종이컵을 색종이로 접는 것이었다. 어렵지 않아 보였고, 마침 색종이도 있는 김에 하나 접어 보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완성이 되었다.
‘오. 컵이다 ‘
어린 눈으로 보기에 그건 진짜 컵 모양이었다. 물을 담아도 될 거 같았다. 나는 이내 재미가 들려서, 몇 개를 더 만들었다. 색깔별로 만들어진 컵들이 자랑스러웠다. 내심 어른들이 한번 봤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수줍기로 유명했던 나는 그런 말을 꺼내긴 쉽지 않았다. 때마침 한 어른이
‘아. 여기 컵이 부족한데, 컵 좀 더 줘요.’
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 조심스럽게 말했다.
‘컵 여기 있어요.‘
순간 어른들의 눈이 나에게 쏠렸다. 그리고 내 손에 들린 작은 종이컵을 발견했다.
‘오. 네가 종이로 만든 컵이야?’
‘오호. 이거 물이 담기겠는데.‘
‘책 보고 만들었어? 아이고 똑똑하네.’
어른들이 약간 취기가 있던 타임이라 그런지 여기저기서 칭찬의 반응들이 나왔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잘 만들어진 제품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기억이 생겼다. 그때 나는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좀 비약적이긴 하지만, 그 후로도 비슷한 경험들이 누적되었고, 결국 공학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 같다. 재미있는 점은 나중에 실제로 연구실에서 알루미늄 합금으로 컵을 만드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종이컵을 만들었던 날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한 것 보면 꽤나 인상적이었나 보다.
무언가 만들어지고, 무언가 정해지는 그 시작점은 항상 우연하고 무심한 듯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