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는 외롭다.
“우물을 파되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을 저는 꽤 오래 믿고 살았습니다. 깊이는 성실에서 나오고, 성실은 반복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한 우물이어야만 했습니다.
대학원과 첫 직장을 합쳐 10여 년을 제조업에 있었습니다.
하나의 제품이 완성되어 라인을 통과하는 장면을 보며, 생산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현장은 분명했고, 결과는 눈에 보였습니다. 생산 부서의 입김이 센 분위기 속에서 일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저 역시 그렇게 익숙해졌습니다.
저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 우물을 깊게 파면된다고 믿었습니다.
퇴사 이후 진로를 모색하며 뜻밖에 소프트웨어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그 후 십여 년을 IT 업계에서 일했습니다. 처음에는 낯설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제품 대신, 보이지 않는 코드와 시스템을 다루는 일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제가 알던 제조 현장보다 훨씬 넓었고, 디지털 인프라가 생산과 만나는 지점에서 또 다른 가치가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업종의 전환은 거창한 전략이 아니었습니다.
가볍게 알고 지내던 소프트웨어 공급업체 사람들과의 인연이 시작점이었습니다. 자주 연락하지는 않았지만, 완전히 끊어지지도 않았던 관계. 그 느슨한 연결이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사회학에서는 이를 ‘약한 연결의 힘’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 가끔 스치는 사람이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다리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제조라는 한 우물을 깊게 팠습니다.
그러나 그 우물이 디지털이라는 다른 우물과 연결되었을 때, 비로소 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생산과 소프트웨어는 대립하는 세계가 아니라, 서로를 확장하는 세계였습니다. 현장을 이해하는 시선은 디지털을 다르게 보게 했고, 디지털을 경험한 시간은 생산을 다시 해석하게 했습니다.
그제야 속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은 흔들리지 말라는 뜻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우물에 머물러 세상을 단정하라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깊이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연결이 없다면 깊이는 고립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이렇게 고쳐 말하고 싶습니다.
한 우물을 파되, 옆 우물과는 연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