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
회사에는 매년 몇 개의 무덤이 생깁니다.
접힌 프로젝트, 흐지부지된 전략, 조용히 사라진 팀.
우리는 그 앞에서 반드시 이유를 묻습니다.
왜 실패했는가.
누가 판단을 잘못했는가.
무엇이 결정적이었는가.
핑계 없는 무덤은 무섭기 때문입니다.
행동경제학자 Daniel Kahneman은 인간이 복잡한 사건을 단순한 이야기로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일수록 하나의 줄거리로 정리하려 합니다. 그래야 상황을 파악한 것 같고, 다시 예측할 수 있을 것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덤을 만나면 그 위에 이유를 얹고 싶어 집니다. 실패가 복합적이었을 가능성은 뒤로 밀리고 하나의 원인으로 정리됩니다. 사건은 다층적이었지만 설명은 단수형이 됩니다.
설명이 존재하면 우리는 덜 불안합니다.
설명이 완전한지는 다음 문제입니다.
조직에서는 실패가 생기면 곧바로 원인이 확정됩니다.
리더십의 문제였다고 합니다.
시장 판단이 틀렸다고 합니다.
실행력이 부족했다고 합니다.
때로는 더 단순해집니다.
누군가 한 사람의 이름으로 정리됩니다.
그 사람의 작은 실수는 구조적 결함의 증거가 되고,
애매했던 약점은 결정적 결함으로 확대됩니다.
과거의 선택들까지 실패의 전조였던 것처럼 재해석됩니다.
사건은 복합적이었지만 책임은 단수형이 됩니다.
이때 조직은 안도합니다.
원인이 명확해졌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통제 가능해졌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분석의 완성이 아니라
불안을 서둘러 닫아버린 결과일 때가 많습니다.
마녀사냥은 감정의 폭발이라기보다
설명을 서두르는 조직의 습관일지도 모릅니다.
대부분의 실패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타이밍, 외부 변수, 내부 역학, 우연.
원인은 겹겹이 얽혀 있습니다.
어떤 것은 시간이 지나야 만 드러납니다.
우리는 기다리지 못합니다.
설명이 늦어질수록 불안해지기 때문입니다.
서둘러 핑계를 붙입니다.
정확해서가 아니라 견디기 어려워서입니다.
당장 이유를 모른다고 해서
불완전한 설명으로 덮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설명을 붙이는 능력보다
보류하는 능력이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원인이 아직 열려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
누군가를 급히 원인으로 확정하지 않는 절제.
핑계 없는 무덤은 무섭지만,
성급한 핑계는 또 다른 무덤을 만듭니다.
사람이 묻히고 신뢰가 묻히고
다음 시도의 가능성이 묻힙니다.
설명은 우리를 안정되게 해 줍니다.
진짜 안정은 설명이 늦어질 때도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당장 이유를 알 수 없다면
잠시 그대로 둘 수 있는 용기가 성숙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