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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냄새 Aug 15. 2023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갈 자유

유튜브에서 가끔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본다.

아니, 듣는다. 법륜 스님은 매우 유머러스하셔서  전국을 돌면서 하는 이 강연회에는 늘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곳에 오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스님.. 이러저러한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묻는다. 그 고민거리의 90퍼센트 정도는 가족 아니면 연인과 관련된 문제였다.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남이야 안보면 그만일텐데 가족은 그럴 수가 없으니 사실 인생의 많은 고민이 가족관계에서 빚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스님의 답변은 거의 비슷하다.


부모의 눈에 자식이 힘든 길을 가는 것처럼 보여도

스무살이 넘으면 자기 인생이니 관여하지 말 것.

무관심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인생은 자녀 본인의 것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고.


이런 답을 들으면 질문자들은 반문을 한다.

아니, 이런데도 가만히 있으라고요?

아니, 그럼 (헌신한) 제가 나쁜 사람이라는 말씀이시네요?

아니, 저는 그렇게나 잘 해줬는데 (자식, 며느리가) 저한테 이럴 수가 있나요?


글쎄...

누군가에게 "잘 해주었다."라는 것이 정말로 그 상대를 위한 것이었는지.. 나는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한 것이라는 스님의 말씀에 동의한다. (내가 선물을 고를 때 받을 상대도 생각하지만 그 이상으로 내가 기분 좋아서 준비하는 것처럼)


그냥 내가 좋아서 한 것이다.


내가 좋아서, 나를 위해서 했다고 생각해버리면(생각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러하다. 난 남들 눈에야 어떻게 보이든 보통의 사람은 스스로 생각할 때 자신에게 좋은 선택을 하려고 한다고 믿는다.), 상대방의 반응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반응이 좋으면 내 기분이 더 좋아지는 것도 맞고, 상대방에게 고맙기도 하지만, 안그렇다고 해도 크게 서운하지는 않다. 그냥 다음엔 취향을 좀 더 잘 맞춰보리라!! 다짐할 뿐.



부모님과의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사실 우리에게 가장 많은 것을 준 사람들이니 기대도 가장 클수밖에 없을 것이다. 며칠전에 읽은 책에 아무런 병명은 없는데 자꾸만 몸이 여기저기 아픈 여자의 이야기가 나왔다. 이유를 몰라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찾은 정신과에서 그녀는 마음의 병이란 진단을 받았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가난한 형편에 자신을 위해 고생하며 헌신한 어머니의 뜻에 맞춰 살았던 여자. 그 과정에서 자신의 욕구는 다 억압되어서 그 모든 것이 몸의 아픔으로 나타났던 것이었다. 엄마는 물론 그 딸도 아픈 이유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고, 딸은 열심히 공부해서 엄마에게 보답하려 노력하는 이른바 ‘착한’ 딸이었다. 그렇게 아픈 딸을 보는 엄마는 어땠을까? 차라리 중간에 적당히 반항해가며 내 인생 살겠다고 속을 좀 썩이더라도 딸이 건강하게 자기 인생을 사는 게 더 기쁘지 않았을까. (처음에야 서운할 수도 있지만, 결국 본인이 원하는대로 살면서 쌩쌩한 모습을 보길 원했을 거다.)


옛날에 강호동의 무릎팍도사에 정보석 배우가 나와서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자신이 배우가 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너무 화가 나서 옆에 있던 의자로 자신을 내리치려 할 정도였다고. 너무 무서웠지만 그 의자를 막으며 엄청 싸우고도 자신은 배우가 되겠다고 했고, 세월이 오래 흘러 모든 자식 중에(나머지 형제들은 모두 부모님의 뜻을 따랐다고 했다.) 자신이 부모님과 가장 사이 좋게, 편안하게 지낸다고 했다. 정보석씨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었다. 부모님이 원하는 길을 가서 자신이 불행해했다면 자기를 보면서 늘 마음이 무거웠을텐데, 속을 썩이든 말았든 본인이 원하는 길을 선택해서 갔고, 결과적으로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볼 때 아무런 마음의 짐이 없어서 서로 편안하게 잘 지낼 수 있는 거라고.


어, 그치 그치

어떤 관계든 좋은 상태로 오래 가려면 서로 죄책감이나 마음의 부담이 없어야 한다. 내가 너를 위해 희생했단 마음도, 네가 나를 위해 희생했단 마음도 없이, 그냥 다 각자 나 좋자고 한 일이었다고. 그러니까 누가 누굴 위해서 뭘 했느니 마느니 할 게 아니라, 그냥 편안하고 기쁜 시간을 보내는 거다.


부모가 원하는 대로 끌고 가서,

설령 그 길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좋은 길이었대도

상대(자녀)가 그것을 진심으로 기뻐하거나 즐기지 않는다면 그 불행을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 더 좋은 길, 더 나은 길이라고 하는 것 역시 사회나 부모의 잣대일 뿐이니까. 나 역시 부도덕하고 남한테 피해 끼치는 일이 아니라면, 좀 고생스럽고 후회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자신의 삶은 스스로 살 수 있게 놓아주는 것이 좋다고 믿는다.


옛날에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반박을 꽤 많이 들었다. 애들을 뭘 믿고 선택권을 주냐거나 네가 아직 자녀가 없어서 그렇다는 ㅎㅎ 음, 그럴수도 있다. 특별히 더 애착을 갖는 게 생기면 나도 또 다른 욕구가 생길지도^^ 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 생각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어릴 땐 나도 갈팡질팡 해서.. 그래도 믿고 줘보기라도 해야 나중에라도 그걸 제대로 누리지 않을까요? 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었다. 한번도 자신이 선택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선택을 잘 할 수 있나요? 19세의 마지막밤과 20세의 첫날은 얼마나 차이가 있는 건인가요?, 이렇게 더 말해줄 것을. ㅎㅎ)



이제  나이가 더 들고보니

앞서 인생을 살아본 부모님의 말씀이 딱히 틀린 것도 없고

애정에서 비롯된 그 마음도 더 이해가 된다.


하지만

육체적 고생이라거나 힘듦이라거나 이런 건 스스로 무의미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나 허무함과 비교하기 힘들 것 같다. 양귀자의 소설 <모순>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진 이모가 밑바닥에서 기를 쓰며 살아야 하는 엄마보다 더 불행할 수도 있다는 것을 어린 시절에도 어렴풋이 이해할수 있었다.

물론 상황과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조금 고생스러워도 소중한 것을 지키려고 아등바등하는 삶이 더 낫지 않을까. 적어도 내 고생은 내가 선택한, 더 가치 있는 무언가를 위한 과정이니까.


그러니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지켜봐주는 것

늘 그 자리에서 응원해주는 것

자신의 인생을 기쁘게 사는 것

이 이상 타인이 해줄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다.


(이러면 니가 고생을 안해봐서 몰라서 그렇다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말이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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