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잘 모르지만…
지난 스승의 날 무렵 지도 교수님을 만났을 때였다. 나는 다른 제자분들에게 연락해서 모임 날짜를 잡고 선물을 준비했다. 선물을 고를 땐 이런 게 선생님 취향에 맞을까 고민도 했지만, 레터링 케이크를 주문하면서는 신이 났다. 하지만 모임이 끝나고 헤어질 무렵 다같이 준비한 선물이라며 케이크와 종이 가방을 드리는 순간, 선생님은 뭘 두 개나 준비했냐며 한마디 하셨다.
아니, 하나는 케이크에요!!!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선생님은 선물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정말로 고마우면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열심히 공부해서 질문하고,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 좋아해주면
그게 제일 기쁘니까 쓸데 없는 거 사오지 말라고 하셨다. 그 말씀은 진심이었다.
나는 선생님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내가 그런 걸 좋아하니까 내 만족을 위해서 선물과 케이크를 준비한 것이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부담스러워 하는 마음보다 이런 욕심이 더 컸던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뭘 준비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인간이다. 이 점은 엄마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지금도 우리에게 뭔가를 계속 해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정말 하루가 멀다 하고 택배가 날아온다. 그리곤 전화도 이어졌다. 그거 먹었냐, 아직도 안 먹었냐, 엄마가 힘들게 만들어서 보낸 건데 버리지 않게 다 먹어라.
주위 친구들은 부러워하기도 했다.
동생의 시누이는 다음 생에는 우리 엄마 딸로 태어나 살고 싶다고도 했댄다. 동생이 결혼할 때도 엄마는 “내가 알아서 할게, 엄마 아무 것도 안해줘도 돼.“라는 말을 무척 서운해 하셨다. 내가 아무리 “아니, 엄마 대견하지 않아? 엄마한테 이거저거 해 달라고 안하고 알아서 하겠다는데, 딸 잘 키운 거지. 나 같으면 박수를 칠 거 같은데.”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엄마 말은 이제 자신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것 같아서 서운하단 거였다. 그래서 결국 다른 걸 못하게 되자 이모들까지 총동원해서 이바지 음식을 바리바리 해 보내 사돈 댁에선 우리 집을 지방 유지(?) 쯤 되는 걸로 오해하기도 했다니. 참.
남들이 들으면 전혀 이해 못할 택배 문제로 우리 모녀는 종종 다투었다. (나뿐 아니라 동생들까지도) 아니, 엄마가 반찬 해서 보내주면 좋은 거 아냐? 우리 엄마는 너무 나한테 무관심해서 문제야, 라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우리집은 너무 관심이 많아서 문제였다. 나랑 동생들은 늘, “아무 것도 안해줘도 돼요. 그냥 엄마 건강하고, 행복하면 돼. 그리고 차라리 우리한테 돈 달라고 하고 뭘 해달라고 하는 게 더 편해요.”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리 쉽게 달라지진 않았다.
오랜 택배 논쟁 끝에 이제 우리는 택배를 보내는 것이 엄마의 행복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택배를 뜯으며 스트레스를 받는 동생에게 어느날 제부가 그랬댄다. 그게 왜 그렇게 싫어? 좋아서 준다는데 그냥 고맙습니다, 하고 받아서 먹으면 되는 걸 왜 그렇게 스트레스 받아? 나쁜 것도 아니고 그게 장모님식의 사랑이고 행복이라면 그냥 받아주는 게 어때.
제부의 말이 맞았다.
우린 호강에 겨운 딸들인지도 몰랐다.
아빠는 동생이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걸 보면서도 니가 그 무거운 걸 어떻게 드냐면서 본인이 몇번이고 가져다 버렸다고 했다.(정작 아빠의 등이 너무 굽어서 더 힘든데 말이다.) 늘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는 우리 엄마 아빠에겐 그게 최선의 표현이었던 거겠지.
그 후 음식물 쓰레가 많아진다는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횟수와 양을 줄이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그런데 엄마의 택배는 우리를 왜 그리 힘들게 했던 걸까?
생각해보면 나는 택배 그 자체보다 그 이후의 기대가 부담스러웠던 거 같다. 제대로 챙겨넣었는지, 잘 먹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전화를 받을 때면 냉장고에서 시들어가고 있는 그 아이들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졌다. 결국 다 못 먹고 버릴 때면 그런 상황이 더 싫어졌다. 엄마는 애정의 표현이었지만, 내가 바라는 애정의 표현은 아니었고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봐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게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다른 여지가 없다. 그래서 더 미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이 없게
나는 나에게서도 그런 모습을 종종 본다.
상대방은 불편하고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데, 나는 나 좋자고 마음을 내 식대로 다 표현해버리는 것이다. (물론 나는 선생님에게 서운한 마음 같은 건 없다. 하지만 기뻐 하셨다면 더 좋았겠지^^;; 이것도 기대일 것이다. 기뻐하고 좋아하는 걸 보고 싶은 마음.)
그 날 저녁,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나는 내 중심적인 애정 표현 방식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자 엄마가 조금은 이해되기도 했다. 동시에 내가 느낀 부담을 떠올리자, 상대방의 필요나 마음을 생각하는 게 부족했다 싶었다. 또 뭔갈 하려고 하지 말자, 고 다짐하기도 했다. 좋은 관계가 유지되려면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게 중요하다니까.
아아아
인간이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기란 참 어려운 거였다.
겉으로 좋아보이는 것은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