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것'에 대하여
애덤 그랜트, <기브 앤 테이크>
애덤 그랜트는 <기브 앤 테이크>에서 인간의 유형을 셋으로 구분했다. '타인에게 주는 성향이 강한 사람(Giver 기버), 타인으로부터 받기만 하는 성향의 사람(Taker 테이커), 상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공평하게 기브 앤 테이크를 하려는 성향의 사람(Matcher 매처)‘로 구분해서 이야기를 했다. 이들 중 성공의 사다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남에게서 이득을 잘 취하는 테이커일까? 눈눈이이 전략과 유사한 행동을 하는 매쳐일까? 테이커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성공의 사다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람은 기버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도 기버이다. 왜 똑같이 주는 사람인데 이런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나는 것일까?
그냥 무작정 주는 게 아니라 ‘잘’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잘 주려면 왜 주고 싶은지, 무엇을 줄 것인지, 어떻게 줄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요기부턴 책 내용과 별로 상관이 없다. 책을 읽으면서 평소 ‘주는 행위’에 대해 했던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본 거.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주고 싶은 이유나 목적이 있는지, 있다면 그게 뭔지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주고싶으니까 주는 건데? 라고 할수도 있고, 정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 안에 숨겨진 다른 욕구가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른 의도가 있다고 해서 그게 꼭 나쁜 것도 아니다. 회사원이 거래처에 잘 보이고 계약을 따내고 싶어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건 아무 문제가 없다. (대신 상대방도 내 의도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겠지, 생각하는 거다ㅡ 아예 대놓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더 좋을 수 있다. 은밀하게 조종당하는 느낌이 더 싫으니깐.) 늘 그렇듯, 자신의 숨겨진 의도와 욕구를 모르는 게 더 문제가 된다. 그 경우 자신은 아낌없이 준 좋은 사람이 되고 상대방은 받기만 하는 나쁜 사람으로 치부하기 쉽다.
또 ‘잘’ 주려면 자신의 능력치와 한계를 알아야 한다. 즉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 능력을 모른채 계속 주다보면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힌다. 주는 게 물질이면 파산하거나 곤궁해지기도 하고, 시간이면 제 할일을 등한시하거나 체력이 떨어지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처음엔 그저 좋아서 주었던 상대에 대한 원망과 보상 심리가 크게 발동할 가능성이 크다. 나는 이렇게나 많이 주었잖아, 이렇게나 잘 해줬는데 너는 왜…? !!! 재밌게도 이 경우 받는 사람은 받는 데 익숙해지기 쉽다.(그 상대가 특별히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보통 그렇게 되기 쉽단 것) 그러니 스스로가 상대에게 뭔가 희생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보상심리가 발동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무리하고 있는 건 아닌지 체크해보자^^
주는 것이 진짜 주는 행위가 되려면 그냥 내가 기꺼이 할 수 있는만큼, 상대로부터 아무런 보답이 없어도 서운해하지 않고 줄수 있는 정도로, 또 가능한 상대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법으로 줘야 한다. 주는 사람이 이런 마음일 때 받는 사람은 그 노력과 마음을 충분히 알아주려 노력하면 완벽하겠지^^
무엇을 줄 것인가와 관련해 ’잘’ 주려면 상대의 필요와 욕구를 알아야 한다. 많은 경우 상대는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자기가 좋아서 주고 그에게서 그만큼의 보상(칭찬, 감사, 물질적 보상, 시간과 애정 등등등)이 오지 않으면 또 상대를 원망하거나 서운함을 느끼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몰아부치기 쉽다. 이런 때 상대가 “내가 언제 그렇게 해달라고 했어?”라며 냉정하게 나오는 것은 표현이 냉정해서 가슴 아프지만, 더 가슴이 아픈건 그게 진실이라는 것이다. 내가 ‘주는 것’이 사실 상대에게는 원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을 수 있다. 물론 우리 모두가 필요치 않는 것을 받고도 준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 적절한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넉넉함을 가진 사람이라면 정말 좋겠지. 하지만 그건 받는 쪽의 인품과 선택인 것이고, 주는 사람이 이런 것을 지나치게 기대하거나 강요하면 안된다. 받는 사람은 원치도 않는 것을 받고 부담을 느끼게 되니까.
그럼 어떻게 주는 게 좋을까? 사실 정답은 없을 것이다.
누구는 “오다 주웠다!”며 쓱 내미는 츤데레를 좋아한다지만, 나같은 사람은 아니다. 나는 사실은 알고보니 다정한 사람이었더라가 아니라 대놓고 다정한 사람을 좋아해서, 츤데레 타입의 사람에게서는 ’아니, 이렇게 할거면 처음부터 말하지!! 말 좀 이쁘게 하면 어디 덧나나‘ 이런 마음이 든다. 또 주면서 ”역시 나밖에 없지?“라는 식으로 생색내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이들이 있는데, 난 귀여운 생색 내기는 좋다. ”응, 진짜!! 너 아니면 누가 이런 거 해줘?“ 라고 말하면서 나 역시 친근하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주는 이가 무언가를 ‘준다’고 할 때 가장 위험한 것은 ‘보상심리’라고 생각했다. 인간적 한계로 그런 심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호의가 그냥 단순한 호의가 아닐 때,이건 일종의 ‘거래’가 된다. 이 때 주는 건 진짜 주는 게 아니라, 사실은 받으려는 것이다. 이렇게 거래를 하려는 상대에게 받는 것은 순수하게 기쁠 수 없다. 또 매처가 빠지기 쉬운 함정처럼 ”네가 먼저 해주면 나도 해주겠다.”는 태도는 조금도 손해보지 않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다들 이런 마음이면 언제 진짜 관계가 시작될 수 있을까? 누군가 그런저런 거 다 안따지고 먼저 주어야 그 다음이 있는 게 아닐까. 게다가 남이 먼저 해주기를 기다리고만 있다가 결국 기대한 대로 해주지 않는 상대를 탓하기엔, 그 자신도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잘 주는 것 이상으로 잘 받는 것도 중요하다. 난 내가 누군가의 호의, 그 마음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면서도 기쁘게 받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흔히 주고 받는 행위를 할 때, 주는 사람만 노력하고 애 쓰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상대에게 완벽하게 무심하거나 테이커형 인간이 아니라면,, 받는 사람도 그에 상응하는 마음을 쓰게 된다. 받는 쪽도 그 행위가 일방적으로 계속될 경우 고맙다거나 기쁘다는 마음 이상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도 이 쪽의 인간에 가깝다.) 참.. 인간 관계가 어려운 것은, 이 ’보답‘이라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예의인 것인 한편, 또 다른 이에게는 거리감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주는 행위 자체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행위가 되기도 한단 거다. 누구는 저 앤 받기만 하고 기브앤테이크 원칙도 모른다며 탓하고, 또 누구는 그냥 주는 걸 기쁘게 받았으면 좋겠는데 저 앤 칼같이 받은만큼 돌려주니까 그것도 뭔가 맘에 걸린다니. 마음을 주고받는 것은 정말 쉽지가 않다.
요즘 난 상대가 진심으로 주는 것이라면 그냥 기쁘게 받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잘 받을 수 없으면 잘 주기도 어렵다. 주고 받는 것에 대한 이 모든 고민은 이런저런 머리를 너무 굴려서 복잡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좀 더 단순하게 생각하자,
모든 것은 일단 ‘사심 없는 호의’와 ‘선의’를 기본값으로 한다. 그럼 고마움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그 후엔 기쁘게 받는다. 할수 있다면 기꺼이 보답한다.
재작년 생일에
친한 언니에게 목걸이를 선물받았다. 아니 이게 뭐야?
내 첫마디는 언니 제 정신이야? 대출금 갚아야지 이게 뭐야?? 그랬더니 앞으로 돈 없을 거라 미리 5년치 선물을 땡겨서 주는 거니 그냥 받으라고 했다. 그럼 10년동안 아무 것도 사지 마, 라고 하고 선물을 받았다. 그리곤 목이 훤한 옷을 입을 땐 종종 목에 걸고 이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언니는 아주 좋아했다^^) 비싼 선물이라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환불해줘!!“라고 하는 것보다 기쁘게 받는 걸 더 좋아할 거 같아서.
툴툴 잔소리를 해대면서도 이걸 받을 수 있었던 그냥 주고싶었다는 그녀의 마음을 아니까. 서로 알거 모를 거 다 아는 20년지기의 친밀감이랄까 ㅋㅋ
ㅡ(이거 읽고 있을 이모씨) 고마운데 이제 이런 선물 하지마, 오래 보고 싶고 나중에 파산하는 꼴 보고싶지 않다구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