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를 읽고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어떤 사건으로 A 팀의 동료들이 힘들어했고, 그들이 기운을 내면 좋겠다는 마음에 갖가지 케이크와 빙수를 한 아름 사 들고 갔었다. 갖가지 케이크와 빙수들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한 덕에 가져온 디저트가 바닥을 보일 때쯤엔 그들의 표정이 한결 즐거워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까지 덩달아 신나서 내 자리로 돌아왔었다.
일주일 후, 그날도 어김없이 회사에는 새로운 사건이 생겼고 그로 인해서 B 팀이 힘들어했다. 그러던 중 A 팀이 이전에 고마웠다며 보답할 겸 기운 내시라고 케이크를 사 왔다. 앗. 내가 사 간 케이크를 B 팀이 사간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 사실이 듣기 전에는 고생했던 동료가 기운을 냈다는 사실만으로 기분이 좋았는데, 이 소식을 듣고 나서 급격하게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이런 사실로 기분이 가라앉았다는 사실에 또다시 가라앉았다. 나는 분명 동료들이 힘을 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케이크를 사 갔던 것이고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는데. 엉뚱한 사람에게 고마워한다는 이유로 속상해하는 내가 계산적이고 속물 같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이 사실 때문에 한참을 괴로웠고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던 중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정말 꼼꼼히도 읽었다. 이타성의 본질이 인정 욕구에서 비롯한 것이라니? 어쩌면 나만 유별하게 이기적인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소리 아닌가? 괜한 오독으로 잘못된 위안을 받을까 참으로 꼼꼼히도 읽었다.
저자는 책의 첫머리에서 질문을 던진다. "어떤 이가 타인으로부터 인정과 평가를 얻기 위해 기부를 했다고 스스로 의식했다면, 과연 이 사람은 비난을 받아야 할까? 스스로 이러한 의도를 의식하지 않아야 그 사람의 행동이 진정 이타적 동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책의 끝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던진다. "이타적 동기에 대한 자기인식 과정은 오히려 더욱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이타적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최소의 비용과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이타적 선택을 찾으려 할 것이다.”
그렇다니. 내가 했던 이타적 행동이 인정 욕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마주했을 때 더 효율적인 이타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니. 위안을 받았다. 위안을 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마냥 괴로워하는 것에서 벗어나 인정 욕구를 잘 이용해서 더 효율적인 이타적 선택을 이끌어내는 행동은 뭐가 있을지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저자는 인정 욕구를 마주했을 때, 도덕적 박탈감에 의해 이타적 행동이 줄어드는 것을 방지하고, 더 효율적인 이타적 선택을 늘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나는 거기에 덧붙여 개인의 차원에서도 개선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이타적인 사람이 아닌 것에 대한 부질없는 자괴감의 감정을 벗은 채 나의 인정 욕구와 이타적 행동을 잘 연결하는 학습을 시도해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