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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빗ORBIT Mar 06. 2021

난기류


 쉬지 않는 가게를 만들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없어도 열려있는 시스템이 갖춰진 가게 말이다. 항상성이 유지되는 지속 가능한 가게. 결국 나의 가게는 연중무휴다. 검색창에 가게 이름을 입력하면 뜨는 연중무휴. 그것은 일종의 업적이자 지난한 업보다. 재능이 없어 다른 상은 근처도 못 가면서 개근상이라도 노려보는 열등한 모범생처럼 괴팍하고 미련한 성실. 힙하다거나 쿨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재료 소진'으로 일찍 문을 닫고, ‘개인 사정'으로 쉬고, 일주일에 주말만 운영한다거나 질병이 창궐하는 때에는 잠시 숨 고르기 하는 ‘멋진’ 여유가 나에게는 없다.


‘왜 그렇게 사니?’

‘촌스러워서 그렇지 뭐.’


촌스럽다는 말로 스스로를 정의해 보지만 거기에 얹어진 내밀한 책임, 무게, 의지 같은 것을 나는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 못난 뿌듯함이 촌스러움의 발로다. 장사라는 건 결국 오래 달리기 같은 거라서 지구력 싸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손마디의 화상 자국을 훈장처럼 여기고 노동을 신성하고 거룩한 무언가로 숭배하는 마음. 촌스럽다. 십 년을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가게는 제법 자리를 잡아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살가운 이들을 교체해 가며 굴러가는데 요사이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다.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 잠식당한 사람들이 2,3년 내에 사라지고 ‘비전 없음'이라는 낙인에 죄인처럼 고개를 조아리면서. 자동항법장치만 있으면 적확한 고도로 안전한 비행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코로나 시대라는 난기류를 만나 덜컹거리고 위협받는 일상. 요즈음은 이전의 낡은 걱정이나 푸념, 육체 피로가 오히려 고맙게 느껴질 지경이다. 시스템의 실패다. 


‘ 매일매일이 회전문이었으면 좋겠어. 똑같이, 변함없이, 안전하게 반복되고 싶어’


코로나 대유행으로 가게 문을 열 수도 그렇다고 닫을 수도 없을 때 처음으로 의문이 들었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 나날을 그저 고행자의 고뇌처럼 견디면서 불안으로 일상을 살고 더 큰 불안을 대비하는 궹한 눈. 거울에 비친 나는 검은 구덩이 같았다. 나는 어떤 의미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몸이 아플 수도, 힘듦을 토로할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었다. 가게를 지키고 사람을 지키고 그저 현상유지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늦게 문을 열고 일찍 문을 닫는 나날이 이어졌다.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고 애써 가꾸고 꾸민 가게는 휑했다. 도로를 나서면 배달 오토바이 사고를 거의 매일 마주쳐야 했다. 아스팔트에 흩뿌려진 배달 기사의 피가 온통 검었다. 삶은 장르로 이를테면 느와르가 아닐까 생각했다. 끊임없이 목구멍과 싸우고 있었다. 포도청은 너무 가까웠다. 폭력과 타격 없이도 사람은 충분히 신음할 수 있는 존재였다. 일상이 무너진다는 것은 폭력적인 불안이었다. 


이 시대의 불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짧지 않은 비행이 될 거라고 단단히 먹었던 마음은, 순진한 각오는, 촌스러운 의지는 이내 눅눅해지고 흔들리는 기체를 부여잡고 제 자리를 지켜달라는 안내방송이나 들으면서 불안을 음미할 밖에. 착륙 전에는 결코 예측할 수 없는 난해한 공포가 시작된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흔들리는 몸과 마음. 불안을 물리화하면 난기류가 되지 않을까. 불안은 사람을 저열하게 만든다. 표현해 버리면 더 약해질까 악문 턱이 얼얼하다. 나는 그저 쉬지 않는 가게를 만들고 싶었을 뿐인데. 고작 이만한 일로 문을 닫을 수는 없다며 부득부득 문을 열어젖히는 오늘, 나의 가게는 내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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