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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재영 Jun 17. 2023

20. 과거와 이별했는가?

어떤 것은 그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

누구나 잊고 싶은 과거가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40년 가까이 살다 보니 인생의 불행이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 전까지에 대부분 포진해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 같은 타입은 과거와 이별하는 것이 안심이 되는 사건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 읽은 내용의 주인공도 비슷하다. 어린 시절 받은 상처로 인해 화가 나고 상처가 남아있다. 주인공은 잊고 싶은 과거에게 편지를 쓰고 그 편지를 불태움으로써 이별의식을 치른다. 그렇지만 그 의식 후 그녀가 쉽게 이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에게 이별을 가능하게 하는 건 어쨌든 흘러가는 시간인 것 같다. 살다 보면 예전에는 매일 악몽같이 따라다니던 어떤 과거의 사건도 더 이상 생각조차 나지 않는 시절이 온다. 심지어 기억을 하더라도 그 기억이 내게 미치는 영향이 적어지거나 아예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하는 때가 오고야 만다.


그래서 살아간다는 것은 아쉽기도 하지만 위안이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의 내가 이 글을 본다면 거짓말 같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시절이 정말 올까? 하고 의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근데 그런 시절이 왔다고 대답해주고 싶다. (그럴 수 없는 것이 참 아쉽다.)


그런 이별하고 싶은 과거를 애써 붙잡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근데 그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것은 내가 붙잡은 것이 아니라 그 과거가 나를 붙잡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별하지 못했더라도 그것은 과거의 너의 탓이 아니었다고도 얘기해주고 싶다.


아직도 끈덕지게 나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지는 과거들이 있지만 시간의 도움으로 그것들도 힘이 빠져가는 중이다. 나는 그저 시간과 함께 걸어가면 그만이다.


얼마 전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범죄심리학자 박지선 교수님의 시각으로 본 영상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이별대처방식에 대한 팁을 알려주셨는데 아마도 '조망확대'라는 팁이 내가 살아온 세월이 늘어나며 자연스럽게 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살짝 들기도 한다.


헤어지기 싫은 과거와 이별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겠지만 헤어지고 싶은 과거와 이별하는 것은 참으로 개운하고 설레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별 뒤에는 또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헤어지고, 만나고.  그것이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이야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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