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핑곗거리의 탄생
아빠는 또렷이 보이는 환부였다.
옛날 소설 중에 병신과 머저리라는 소설이 있었다. 학교 다닐 때 문학 시간에 읽었는데 그 소설 속에 형제가 나온다. 형은 전쟁의 트라우마로 인한 확실한 괴로움이 있었지만 동생은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이 괴로워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 소설을 읽으며 나 또한 너무나 또렷한 환부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아빠였다. 내가 좀 비뚤어지고 방황한다고 해도 그것의 이유는 아빠였다. 집안이 어수선하고, 말하자면 콩가루 같은 집안이 된 것도 이유는 아빠였다. 엄마가 마음을 못 잡는 것도, 고모들이 비밀이 많은 것도, 그 이유는 다 아빠로 귀결됐다.
원래 모든 것은 거리를 좀 두어야 제대로 보이는 것 같다. 아빠가 죽고 물리적으로 시간적으로 거리가 두어지니 사실은 그 모든 것의 이유는 아빠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치만 알 수 없다. 아빠가 알콜중독이 아니고 행패를 주기적으로 부리지 않고 바른 사람이었다면 그 모든 일이 있었을지 없었을지 우리는 평생 모를 일이다.
그치만 아빠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여전히 계속되는 것들이 있다. 또 사실은... 하고서는 새롭게 밝혀지는 비밀도 있다. 아빠의 그 모든 원망의 말들이, 모두가 피해망상은 아니고 그중에 몇 가지는 진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환부에 고름이 차면 구멍을 낸다. 그리고 그쪽으로 모든 고름을 흘려보낸다. 아빠는 마치 그 고름구멍 같았다.
이상한 말이지만, 방어기제일 수도 있지만, 진짜 가끔씩은 내가 주먹을 날리고, 소리를 지르며 싸웠던 실체가 되어준 아빠가 고마울 때도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병신과 머저리 소설 속 동생처럼 실체가 없는 것과 싸우며, 마치 허공에 유령이라도 보는 듯 헛 주먹질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빠는 진짜 죽었을까? 아직도 실체가 되어서 나는 이렇게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데... 어쩌면 아직도 살아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다. 어쩌면 내가 휘두르는 주먹의 상대는 유령일지도 모른다.